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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패망의 교훈을 담고 있는 <참모본부와 육군대학교>의 현실진단

머린코341(mc341) 2015. 11. 7. 11:21

일본군 패망의 교훈을 담고 있는 <참모본부와 육군대학교>의 현실진단


일본은 왜 패망했는가?


 쿠로노 타에루의 <참모본부와 육군대학교>의 마지막 장을 덮고 한동안 상념에 잠기게 됩니다. 1937년에 지나사변이 일어났을 때 일본의 대본영이나 참모본부, 만주군은 국지적이고 신속하게 사태를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육군중앙부와 관동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 사변을 계기로 중국과 전면전에 돌입하게 됩니다. 그 해 12월에 남경(난징)을 공격함으로써 끝이 알 수 없는 전면전, 즉 중일전쟁이 발발합니다. 이 전쟁은 일본 대본영의 지침에 따라 사태를 국지적으로 마무리하려던 만주군과 달리 눈앞의 손쉬운 승리에 현혹된 관동군의 돌출행동으로 인해 시작된 것입니다. 문민통제가 붕괴되면서 소련과 은밀하게 강화를 도모하려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고 일본은 영국, 미국, 중국, 소련과 모두 적대 상태에 돌입하는 파탄의 길에 접어듭니다. 


  참모본부의 마지막 전략가라고 할 수 있던 이시하라 간지가 주축이 되어 작성한 1936년의 ‘국방국책대강’에서는 이와 같이 무모한 전쟁을 벌이지 말고 적어도 10년간 군비를 확충하면서 언젠가 있을지도 모를 미국과의 ‘대결승전’에 대비하는 것이 핵심정책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일전쟁에 이은 남지나전쟁, 그리고 진주만 공습을 필두로 ‘대동아전쟁’이라고 명명된 태평양전쟁을 연이어 감행하면서 일본은 자급자족적 생존체제, 즉 대동아공영권의 구상마저 스스로 붕괴시킵니다. 국가정책 기조가 왜 준수되지 않았는가? 바로 손쉬운 승리의 가능성에 도취된 군부의 공명심 때문입니다. 1차 대전에서 나타난 국가총력전과 지구전의 양상을 보고도 단기속결로 전쟁을 종결지으려는 육군대학 출신의 군 수뇌부의 고정관념을 일본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역사와 정치, 경제, 외교에 대한 대국적 식견을 갖추지 않고 오직 전술 작전지도에만 치우친 육군대학의 교육은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대국적(大局的) 판단과 지정학에 대한 군부의 통찰력을 허용치 않았던 것입니다. 저자는 이것이 바로 일본 패망의 원인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눈 앞의 전승만을 꿈꾸는 군부의 전략(戰略)에 대해 전쟁의 본질을 통찰하고 이를 관리하는 정략(政略)이 분열되는 나라는 파멸을 면치 못합니다. 


  최근 사드 배치 논쟁을 보면 바로 이런 일본의 육군대학 출신들을 상기하게 됩니다. 북한의 노동 미사일이 고각을 높여 한국을 타격한다는 건 가능성이 의심스러운 북한의 수천가지 대남도발 시나리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외교, 국방, 경제면에서의 종합적인 대책도 없는 나라가 오직 군사 시나리오 하나에만 극도로 흥분하면서 인기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듯이 사드에 열광하는 안보 포퓰리즘으로 가버렸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동아시아의 지정학과 장기적 안목에서 북한을 관리하는 대국적 식견이 없이 오직 전술 작전지도만 숙달하게 한 육군사관학교 교육이 오늘날 대한민국 안보관의 주류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의 잔재가 많은 한국군이라고 하지만 일본이 패망하는 행태까지 그대로 답습하는 건 또 뭡니까? 이런 절대적 안보주의자들한테서는 북한 핵에 대한 억제와 방어, 예방외교와 경제적 접근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장기 전략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이 위험한 이유입니다.


 대한민국 군 교육의 현실


  그런데 얼마 전 육군대학을 수료한 한 육군의 소령과 대화를 나누면서 “전략과 전술의 본질적인 측면은 등한시 한 채 공격과 방어, 전과 확대라는 전술적 작전지도에만 치중하는 교육이 불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건 쿠로노 타에루가 개탄한 과거 일본군 육군대학의 현실과 똑같지 않습니까? 대위급 장교들의 고등군사교육반 같은 교육과정도 마찬가지고 합동참모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차 대한민국 국방의 초석이 될 이 나라의 중견장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겁니까? 그것은 바로 일본이 패망하는 법을 우리 장교들에게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군의 작전 병과 장교들의 행태를 보면 돌파냐, 포위냐, 공격이냐 같은 용어문제로 밤새도록 토의를 하고 논쟁을 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들에게 지정학과 정전략(政戰略)에 대해 과연 무엇을 가르치고 있으며, 역사적 사실과 전쟁의 본질에 대한 어떤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습니까? 이런 교육체계는 전투에서는 이겨도 전쟁에서는 질 수 있는 아주 취약한 교육입니다.


  미군의 경우를 보면 장기적 안목에서 부대발전을 기획하는 기획참모(J-5)는 가장 파워가 있는 자리입니다. 작전장교는 여기에 비하면 현행 작전 정도나 하는 자리로 그 위상이 기획참모에 미치지 못합니다. 게다가 미군은 장성급 지휘관 직속으로 정무특보, 또는 정무보좌관 제도를 운영하면서 비군사적인 측면에서의 정세분석과 정전략을 융합하는 포괄적인 안목을 지휘관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군의 작전장교들의 면면을 보면 저희들끼리 현행작전 업무를 하는 엘리트 집단으로 군림하면서 정략(政略)에 대한 이해와 확대된 시야를 형성하지 못하는 폐쇄적 조직문화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국군 장교단의 이와 같은 운영 실태는 장기적 안목의 국가 전략에 대한 이해부족을 초래함은 물론이고 전쟁이 일어났을 때 패망하는 요인이 될 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더 나아가 국가 차원에서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 우리가 확보해야 할 이익, 우리가 가야할 방향과 그 지도로서의 전략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 없이 그저 현안에 대응하느라고 급급한 외교안보를 만들어 냅니다. 최근 정부가 사드 요격체계 배치 문제가 논란이 되자 ‘전략적 모호성’이란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원래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란 전략이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그 전략을 상대방이 너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최근 구사한 이 용어는 전략이 없기 때문에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한민구 국방장관이 이 용어를 사용하고 나서 중국으로부터 간섭을 당하는 등 상황이 더 악화되었습니다. 이쯤되면 전략이 없다는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명료한 지속적 정책(consistent policy)을 모색했어야 합니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비록 퇴행적인 외교안보정책을 하고는 있지만 명료하고 지속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평화번영 정책도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 명확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막상 엄중한 시험대에 오르니까 뭐가 뭔지 알 수 없습니다. 이걸 전략적 모호성으로 포장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눈치외교입니다. 아무런 비전도 철학도 없습니다.


전략부재가 초래할 비극
 
 그 원인은 대통령 주변에 안보를 육군사관학교 출신들로만 꽉 채워서 사고의 다양성과 전략적 지평을 넓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동안 이 정부에서는 국가의 핵심이익을 도모하면서 한반도 정세를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전략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 사실상 실패하였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나라의 안보 책임자들이 자신이 뭘 모르는지를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외교안보란 문제를 덮는 것, 주변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것, 적당주의로 당면한 문제만 관리하는 것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장기적 안목에서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그들도 모르고 우리도 모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과연 이 정도 실력으로 우리가 중견국가 대한민국의 꿈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분발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교육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투코리아] 2015.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