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미 해병대 전우들(2)
2. 디엔반에서 만난 도로 정찰대
구정 공세가 시작 된지 한 달이 지나서였다. 그래도 1번 도로는 아직도 적들이 지배하고 있어 모든 물자들이 낙하산으로 보급이 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던 중 광남성 중에 요지인 디엔반 군청만 적들이 점령을 완전히 못했기 때문에 대대적인 공세를 할 것이라는 정보가 있어 청룡부대 본부로부터 우리 중대에 명령이 하달 되었던 것이다.
나는 우리 소대 대원 40여명 중 20명을 차출 해 결사대를 만들고 중대 기지를 떠나 디엔반 군청의 외곽 방어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물론 밤이면 교전이 치열했으나 적들은 많은 병력으로 기습이나 공격은 하지 않았다. 약 1주일이 지나자 1번 도로가 개통이 되었다. 다낭으로부터 출발한 탄약을 실은 미 해병대 대형트럭들이 1번 도로를 통과 디엠반 네거리에서 좌회전을 한 뒤 바로 호이안 지역 청룡부대로 향하는 538번 도로를 통과했다. 우리는 승리감에 젖어 서로 손을 흔들며 눈물을 글썽이었다.
다음날 우리 중대 진지의 중대장으로부터 직접 무전으로 나에게 작전 지시가 왔다. 이것은 청룡부대 본부의 작전 명령이 5대대 본부를 통해 우리 중대까지 하달 된 것이니 명령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는 당부가 먼저였다.
즉 다낭으로부터 출발 해 1번 도로를 정찰하는 미 해병대 정찰조를 1번 도로와 538번 도로가 만나는 분기점에서 오전 08시에 만나 계속 1번 도로로 남진 해 약 6키로 떨어진 지점의 청룡 2대대본부로 들어가는 분기점까지 정찰을 한 후 다시 되돌아 우리가 있는 디엔반 군청까지 되돌아오라는 것이며 이는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계속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임무가 끝나야 모든 군용 차량들이 안전하게 1번 도로를 이용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우리 결사대의 병력 20명 중 10명을 인솔하고 예정대로 디엠반 군청 앞 538번 도로와의 분기점에서 약속대로 다낭으로부터 출발한 미 해병대 트럭 두 대를 만나 탑승했다.
물론 출발 전 두 대의 트럭에는 각 각 운전병을 포함한 3명씩의 미 해병대 대원들이 탑승 해 있는 것이 보였고 나는 지금부터는 내가 지휘를 하겠다는 말을 한 뒤 도로 상의 지뢰와 부비 트랩 그리고 양 길가로부터의 적의 습격에 대비하라는 말과 함께 상황이 벌어지면 트럭에 함께 타고 있는 지휘 책임자에게 즉시 보고를 하는 한 편 기습에 대해서는 보고 없이 바로 즉각 응사를 하라는 명령을 했다.
그리고 나는 선도차의 운전석 옆에 탑승을 하는 한 편 미 해병대 운전병에게는 너무 늦으면 시간 내에 모두 정찰을 마칠 수 없으니 5마일 보다는 조금 빨리 앞으로 전진을 하자고 했다.
계속 앞 방향의 도로를 천천히 응시하며 나아가는 것도 지루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내 옆에 있는 미 해병대 운전병은 흑인 중사였다.
먼저 고향을 물으니 미시간이라고 했다. 나는 지금 미국 미시건주의 엔 아버에 있는 이스턴 미시간 대학에 내 형님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말을 했더니 자기 남동생이 지금 그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말을 하면서 무척 반가워했다. 그는 남루한 내 신발을 눈여겨보았는지 내 신발의 사이즈를 물어 대충의 사이즈로만 얘기해 줄 수밖에는 없었다.
그것은 서로 사용하는 단위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했고 꼭 맞지 않더라도 우리는 눈은 움직이는 도로 위에 계속 머물면서도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기 때문에 지루함을 많이 없앨 수가 있었다.
출처 : 서울대동문카페, 구문굉 선배님 http://cafe.daum.net/snua10/6ITb/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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