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기(‘53년) - 동해부대에서 휴전을 맞이한 윤영준 장군
1946년 2월 창군기의 해방병단에 입대한 후 51년 1월 소령의 계급으로 해병대에 전입했던 윤영준(尹永俊) 장군은 49년 그가 중위의 계급으로 해군 묵호기지 작전과장으로 근무할 때 해군 내의 해상인민군 조직책를 일망타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반공투사와도 같은 인물로 기억되고 있으며, 도솔산 탈환작전 때 2대대를 지휘했던 그는 동해부대장 재임기간 중에는 해구신(海狗腎)을 획득하기 위해 물개가 출몰하는 섬에 특등사수를 배치하여 어렵게 수컷 한 마리를 사살했다는 보고를 받고 기뻐서 잠을 설치기까지 했으나 그 다음날 아침 누군가가 간밤에 그 해구신을 잘라 가버렸다는 보고를 받곤 원통하고 절통해서 며칠 간을 저기압에 빠져 있었다는 그런 일화를 남긴 전설적인 인물이다.
서울 출신(1924년생)으로 1946년 2월 창군기의 해방병단에 입대하여 준사관(병조장-상사)의 계급으로 신병교육대의 1중대 1소대장으로 임명되었던 윤영준 장군은 1951년 1월 소령의 계급으로 해병대에 전입할 때까지 해군헌병대의 총무주임, 2차에 걸친 묵호기지의 운용관, 정보관(헌병대장 겸임)․305정 부장 등을 거쳐 인천기지 참모장, 부산기지 참모장 등의 요직을 역임했는데, 특히 그의 일계급 특진을 가져오게 했던 작전과장 시절에 일망타진한 그 해상 인민군 조직책의 검거 비화는 이러했다.
즉 1949년 5월 11일 주문진 근해 해상에서 경비임무를 수행 중에 있던 제1특무정대의 기함(소해정 508호) 내에 침투해 있던 몇 몇 좌익분자들이 제1특무정대사령관 황운서 중령과 508호 정장 이기종 소령을 사살하고 월북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군산 경비부에 소속되어 있던 이항표 중위는 해상(海上)인민군을 조직하기 위한 강령을 만들어 비밀리에 프락치를 조직하고 있었는데 그 비밀조직이 거의 완료된 단계에서 이항표 중위가 과거 해방병단 시절의 같은 중대(1중대)의 2소대장이었던 윤영준 중위를 만나기 위해(이항표씨는 1소대장) 묵호기지를 방문, 그 강령과 포섭한 프락치의 명단을 제시하며 동조할 것을 은밀히 제의하자 윤영준 대위는 군의 안전과 국가 안보를 위해 그 강령과 프락치의 명단을 압수함과 동시에 그를 채포하고 해군분부에 보고하여 수사를 확대한 끝에 그들을 일망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 해 늦가을 진해 신병훈련소 사격장이 있는 그 산기슭에서 제일 먼저 공개 총살형에 처해졌던 그 이항표 중위는 일제 때 소만국경에 집결해 있던 일본 관동군 총검술 대회가 개최되었을 때 만군에서 선발한 총검술 대표 선수로 출전하여 결승전에서 관동군 최고의 실력자인 강용(姜勇) 군조(軍曹)와 겨루어 준우승을 차지한 그런 경력의 소유자로 알려지고 있었다.
1951년 6월 도솔산 탈환작전에 참가했던 윤영준 소령은 그 후 해병학교 교장을 거쳐 휴전이 될 때까지 동해부대장으로 근무했는데, 동해부대장으로 부임했던 윤 소령은 신도(薪島) 부근 해상에 물개들이 나타난다는 말에 구미가 당겨 사령부 장교보임과에 특별히 청을 넣어 특등사수로 알려져 있던 최성수 소위를 임관과 동시에 동해부대로 발령나게 하여 그를 부대본부(여도) 작전보좌관으로 임명한 다음 며칠 간 신도로 보내어 물개(수컷) 사냥작전을 벌이게 했던 것인데, 문제는 최성수 소위가 M1소총으로 사살하여 신도부대의 평행봉에 매달아 둔 그 물개의 신을 밤중에 누군가가 잘라가는 절취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원통하고 절통해서 저기압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개의 포획과 해구신의 도난과 관련된 이야기는 최성수씨 편에 상세히 언급되어 있다.
휴전이 될 때까지 동해부대장으로 재임했던 윤영준 장군은 그 후 전투단부단장, 사령부의 각 국장, 포항기지 및 진해지기사령관, 해병대 부사령관을 거쳐 1966년 소장의 계급으로 예편했다. 그리하여 그로부터 9년 간 조폐공사의 이사직과 부사장을 역임하며 조폐공사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인 기여를 했던 그는 1984년 숙환으로 타계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1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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