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사23기 김현기

인천상륙작전의 강의안

머린코341(mc341) 2016. 1. 29. 01:12

인천상륙작전의 강의안

 

序 論

 

1. 연구 배경

▲ 전장에서의 기습효과의 중요성

ㅇ 전장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주도권 확보에 결정적으로 기여

ㅇ 기습의 파급효과

- 물리적 효과, 심리적 효과

- 양대효과의 병행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한 쪽이 다른 쪽과 연계되어 영향

- 상승효과 : 어느 시점까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두 효과의 상호간 영향력 발휘

※기습의 대상과 결과에 따라 적과 아군 공히 전쟁지도에 동시적으로 영향을 주어 전쟁양상까지도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

․전쟁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목표에 지향

․적의 군사행동의 방향을 전환

․수세의 위치에서 공세이전을 위한 기회조성에 결정적으로 작용

 

▲ 인천상륙작전의 의의

2차대전 이후 상륙작전에 대한 가치와 재래식 수단에 의한 기습의 의미가 퇴색 되어 가던 시기에 상륙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천연적 장애요인을 극복 하고 성공하므로서 상륙작전의 가치와 기습의 의미를 일깨워준 대표적 작전

ㅇ 전략적 요소 + 맥아더의 전략적 안목 ⇒ 결정적 승리 달성

(취약한 공산군의 약점, 한반도의 지형적 특성)

 

▲ 인천상륙작전의 재조명 필요성

ㅇ 기존 연구 : 공산군측 자료 확보의 어려움으로 추정에 의존 불가피

ㅇ 최근 공산군측 자료의 공개 : 새로운 연구에 기폭제

 

2. 연구 목적

새롭게 연구되기 시작하고 있는 인천상륙작전의 가치와 수도서울 탈환작전이 한국 전쟁에 미친 영향을 재조명하므로서 기존 연구에 대한 발전과 앞으로의 연구활동에 보탬이 되기 위함

 

3. 연구 범위 및 방향

ㅇ 인천상륙작전 실시 배경과 계획의 발전과정

ㅇ 인천상륙작전 실시 및 결과, 교훈 도출

ㅇ 4가지 범주의 전쟁행위자(북한군, 중공군, 한국군, 미군)들의 전쟁지도와 작전 실시에 미친 영향 분석

 

 

本 論

 

1. 인천상륙작전의 배경

▲ 연합군의 효과적인 적 저지 실패와 낙동강 전선의 교착

ㅇ 초기 전쟁목적 달성을 위한 새로운 작전의 필요성 대두

※ 맥아더 원수의 최초 구상

전쟁발발후 한강변에서 전선시찰시 유엔군의 후퇴 예견과 서울을 연한 적의 병참선 중앙부를 타격하기 위해 인천에 대한 상륙작전 실시 복안 수립

 

▲ 블루하트 계획

ㅇ 미 제 24사단을 지상전에 투입하여 오산 - 차령산맥선에서 적을 저지하며, 미 제 1기병사단을 7. 22일 상륙시켜 남․북에서 북괴군을 협공

ㅇ 결과 : 미 제 24사단의 북괴군 저지 실패로 미 제 1기병사단의 지상전 투입 불가피 → 블루하트 계획의 최소

※ 상륙작전에 대한 맥아더의 확고한 신념

풀러 장군의 지적과 태평양전쟁 기간중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블루하트 계획의 취소에도 불구하고 크로마이트 계획을 수립하게 된 원동력이 됨

 

▲ 크로마이트 계획

ㅇ 미 해병대 제 1여단, 미 제 2사단을 9월중에 상륙시키는 계획

ㅇ 100-B 계획 : 인천상륙, 서울․수원지역 점령, 제 8군의 반격

ㅇ 100-C 계획 : 군산상륙, 대전방향 공격, 북괴군 우측 배후 장악

ㅇ 100-D 계획 : 동해안 주문진 상륙, 강릉․원주방향 공격, 북괴군 후방차단

※ 맥아더의 복안 : 인천상륙

 

▲ 상륙작전에 대한 미 국방부와 합참의 시각

ㅇ 상륙작전 자체 : 7월 하순부터 맥아더의 상륙작전 의도 / 소요물자의 요청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 / 조치

- 미 해병대 제 1사단의 동원명령(7. 25일)

- 상륙작전용 자료, 공수 전투단, 특별 공병여단 등의 재편성 및 증파

ㅇ 인천 상륙 : 회의적 반응(8. 25일 최종회의에서 반대사유 제시)

 

구 분

육 군(콜린스 참모총장)

해 군(셔먼 참모총장)

반대사유

ㅇ낙동강 방어선에서 상륙군을 전용시

낙동강 방어선 유지자체 곤란

ㅇ인천은 주전장과 과도히 이격되어

각개격파 당할 위험성 상존

ㅇ일본 주둔 제 7사단을 상륙군으로

투입시는 일본방어 공백 초래

ㅇ인천항 조수간만의 차 6.9-10m로

세계에서 두 번째

ㅇ간조시 개펄이 3.2km 까지 형성

ㅇ입.출항 수로 협소/빠른 유속(6kts)

ㅇ월미도로 인한 기습효과 상실

ㅇ5m이상의 인천항 석벽/시가지 인접

ㅇD일 H시의 만조시간 부족(2시간)

 

▲ 맥아더의 인천상륙 주장 이유(맥아더 연설문)

ㅇ 적의 최소 예상선과 최소 저항선

- 천연적인 난점으로 북괴군 지도부는 인천을 유엔군이 상륙장소로 선택할 것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 1759년 “퀘백”전투에서 영국 울프 장군의 승리처럼 기습달성이 가능

ㅇ 물리적 장애요인은 태평양 전쟁에서의 숙달된 미해군/해병대의 상륙작전 경험으로 극복이 가능.

ㅇ 군산은 물리적 난관의 상대적 감소에 비해 불충분한 포위가 되어 적의 병 참선과 보급시설 파괴 불가.

ㅇ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하여 지상 반격시 유엔군의 손실은 10만 이상의 병 력과 장비․물자 손실을 초래 결정적인 전과 달성 불가.

ㅇ 적의 약점은 병참선에 있으며,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을 탈취시 적의 병참선 차단 가능.

 

▲ 9. 15일을 상륙개시일로 선정한 이유

ㅇ 상륙함정이 접안시 충분한 수심(29ft)의 부족(9/15, 10/11, 11/3 세차례 가용)

ㅇ 상륙작전이 지연될 경우의 불리점

- 제 8군의 낙동강 방어선 유지곤란(피로와 혹서)

- 인천을 포함한 예상상륙지역에 대한 방어상태의 강화와 대량의 기뢰부설 시간을 부여하는 우를 초래

ㅇ 추수기인 10월 이전에 남한지역 회복 불가시 적에게 대량의 전쟁지속식량의 약탈 기회 제공과 한국 기후 고려시 동계작전 수행

 

2. 인천상륙작전 계획의 발전

▲ 상륙군 부대 편성

ㅇ 8. 15일 상륙군 사령부 편성 ․미 해병대 제 1사단, 육군 제 7사단, ․한국 해병대 제 1연대, 육군 제 17연대

※미 해병대 제1여단: 낙동강 방어선 유지위해 제외

ㅇ 8. 26일 제 10군단 편성(군단장 : 알몬드 장군)

- 임무 부여

․인천항만의 확보와 해안두보 점령

․가능한 신속히 진출하여 김포 비행장 확보

․한강도하 및 서울탈환

․미 8군과 연결작전이 이루어지기 까지 서울근교의 진지점령

 

▲ 크로마이트 작전단계간 지휘체계 : 표 1. 참조

 

▲ 상륙지역 주변의 적 전투력 평가(최대 총 9,000명 판단)

ㅇ 서울지역 : 5천명, ㅇ 김포지역 : 500명

ㅇ 인천지역 : 1천명의 해안경비부대(9월 초순 1800-2500명 증원 확인)

※ 추가적인 적 증원부대 : 제한 판단

 

▲ 합동 상륙기동부대(JATF)의 일반적 임무

ㅇ 청천강 이남지역의 한국해안 봉쇄

ㅇ D일 H시 인천지역 상륙돌격 실시, 해안두보 확보

ㅇ 의명 후속제대 및 전략예비대의 수송과 기타 부수적인 작전지원

※ 제한사항 : 함정/항공기의 소련/중공 국경으로 부터 12마일 이내 행동금지

 

▲ 상륙계획

ㅇ 작전방향 : 해안두보 확보 → 김포 비행장 탈환 → 한강도하 → 서울탈환

ㅇ 돌격제대(미 해병대 제 1사단(+))

- 월미도 : 5연대 3대대

- 월미도 북방 인천시가지 정면해안 : 5연대(-)

- 인천남방 해안 : 1연대(인천-서울간 도로망 차단)

※ 한국 해병대 : 대기파로 미 해병대 제 5연대(-) 지역 투입

ㅇ 후속제대 : 미 육군 제 7사단 및 한국 육군 제 17연대

 

▲ 작전보안 및 기만활동

ㅇ 계획수립과 관련된 일부인원 이외에는 세부계획의 통제

ㅇ 상륙군 자체내에서도 군산상륙에 대한 인식 허위조장

※ 실제 상륙지역인 인천지역의 지형설명 : 9. 14일 함상

ㅇ 언론을 역 이용한 기만활동

- 군산 상륙에 대한 허위첩보 노출

- 군산을 모형으로 한 상륙훈련

- 상륙작전 시기의 조작(10월경) 유포 / 대상지역(인천)의 공공연한 공표

※ 북괴 지도부의 오판 유도 : 서울 → 양공지역, 군산 → 실제 상륙지역

ㅇ 양공작전의 적극적 실시 : 정확한 상륙지역 판단 방해

- 군산지역

․주변 50km내의 도로, 교량, 철도시설에 대한 폭격

․영국 코만도 부대의 해안 상륙 및 위력수색

․상륙에 대비 주민의 내륙 대피 종용 전단 살포

- 삼척일대의 항공 및 함포포격

- 장사동(포항 북방 26km) 지역에 대한 한국군 1개대대 규모의 상륙기습

 

▲ 작전계획 및 실시제대에서의 도출된 문제점

ㅇ 군단급 상륙작전을 위한 준비기간의 부족

ㅇ 상륙을 위한 해병대의 전용으로 대체할 강력한 지상예비부대의 부족

ㅇ 수송선의 집결과 개조를 위한 충분한 시간의 부족

ㅇ 비밀유지의 어려움과 기만작전을 위한 대규모 양공부대의 부족

ㅇ 천연적 장애물의 극복 문제

※ 제 문제점들에 대한 극복 : 실전경험을 통해 축적된 미 해군과 해병대의 계 획수립능력으로 이를 극복, 9. 3일에는 모든 계획에 대한 협조와 조정 완료

 

3. 상륙작전의 실시

▲ 북괴군 상황

ㅇ 낙동강 전선 조기돌파 위한 전투력 집중

ㅇ 상륙지역의 정확한 판단에 대한 혼란

※ 당시 경인지역의 북괴군 부대배치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유추 가능

ㅇ 상륙지역으로 증원할 수 있는 예비병력 제한

ㅇ 낙동강 전선에서의 북괴군 전투력 : 작전 한계점 봉착

 

▲ 상륙작전 경과

ㅇ 작전명령 : 9. 9일 하달

ㅇ 선견부대 작전 : 교통 요충지 차단 / 상륙지역 고립 위한 항공폭격, 기만/양공작전 (9. 4-10일), 월미도 제압사격 (9. 13-15일)

ㅇ 상륙돌격(9. 15, 06:30)

- 월미도 포함 해안선 일대 장악(08:00시)

- 인천 북방 해안 / 인천 남방 해안 상륙(17:30분)

ㅇ 해안두보 확보 : 9. 16, 01:30 (인천 중심 48km)

ㅇ 상륙작전 종료 : 9. 21, 18:00 (제 10군단 지휘소 해안설치)

 

▲ 서울탈환작전

ㅇ 4개의 주요 공격방향 선정

- 행주방향 : 서울진입 / 탈환 (미 해병대 제 5연대 및 한국 해병대)

- 영등포와 여의도 방향 : 서울진입 / 탈환 (미 해병대 제 1연대)

- 서빙고 방향 : 서울 동측방 포위 (미 제 7사단)

- 안양․수원 방향 : 북괴군 증원/퇴로 차단, 미 8군과 연결 (미 제 7사단)

ㅇ 서울 서측방 방어선(연희고지 일대) 돌파 및 동측방의 적 퇴로 차단(9. 25)

ㅇ 북괴군 저항 : 서울 서측방 방어선 저지 실패 후 9. 25일 야간을 기해 실질 적으로 서울 포기 및 의정부 방향 주력 철수

ㅇ 중앙청 탈환 및 잔적 소탕(9. 27), 서울 수복(9. 28)

ㅇ 낙동강 전선 총 반격 / 연결 성공(오산 부근), 대 포위작전 종료

 

4. 상륙작전의 결과 및 교훈

▲ 상륙작전의 결과 및 의의

ㅇ 작전 결과 피․아 손실

제 10 군단

북 괴 군

약 4,000명

ㅇ 상륙작전을 통한 직접적 피해 : 약 2만명

ㅇ 동 작전과 관련 남한지역에서 입은 피해

- 포로 : 약 13만 5천명, 손실 : 약 20만명

※ 상륙작전 종료 후 북괴군의 전력은 실질적으로 격파되어 공격능력을 상실

ㅇ 인천상륙작전의 전쟁사적 의의

- 공세이전의 계기를 조성 전쟁의 주도권 전환

․우회기동을 통한 기습으로 적에게 물리적․심리적 교란효과를 달성, 적의 전투의지 파쇄

- 유엔군의 인적․물적․시간적 손실을 최소화

․지상반격작전 수행시 최소한 5개 지연진지상에서의 북괴군의 조직적인 저항으로 10만명 이상의 유엔군 및 민간인의 손실 예상 (표 2. 참조)

- 전략적 대 포위기동의 전례, 지휘관의 전략적 식견, 해군 및 해병대의 전 문화된 상륙전 수행능력의 중요성 제고

 

▲ 상륙작전의 교훈 (전쟁지도와 작전전략 위주 제시)

ㅇ 전쟁의 원칙을 적용한 군사적 승리

- 목표의 원칙 : 적의 군대를 격멸하고, 적의 전투의지를 파쇄하기 위한 궁극적인 전쟁 목표 달성을 위해 적 병참선 차단과 수도서울을 조기에 탈환하여 전쟁 을 조기에 종결시킬 수 있는 인천지역을 선정

- 공세의 원칙 : 적의 약점에 대해 적극적인 공세행동으로 아군의 의지를 적에게 강요, 국지적 우세를 전체로 확대하여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므로서 조기에 공세이전을 가능

- 집중의 원칙 : 결정적인 승리 달성을 위해 전략적․작전적 차원에서의 적절한 절약을 토대로 결정적인 시간과 장소에 상대적으로 압도적인 전투력을 집중

※피․아 대치된 지상전투에서 1개 사단의 부족과 이를 적의 측․후방 에 투사하는 것과의 효율성 차이

- 기습의 원칙 : 적의 최소저항선과 최소예상선에 대하여 예기치 못한 시간과 장소, 방 법으로 타격하므로서 적의 전투의지 파쇄효과를 달성

- 기동의 원칙 : 상대적으로 적보다 유리한 위치에 전투력을 이동하여 이를 집중, 기습 을 달성하므로서 결국 행동의 자유를 보장한 가운데 주도권을 확보하 여 작전성공을 보장

 

ㅇ 우수한 인력과 부대의 양성

- 우연성과 개연성이 존재하는 전장의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를 정확히 예측 ․판단할 수 있는 지휘자의 능력과 제반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부대의 능력이 승리의 원동력으로 작용

 

ㅇ 상륙작전간 제해권과 제공권의 중요성

- 언제든지 상륙작전을 가능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한 요인

- 작전 실시간 제공권의 보유는 작전 초기의 중요한 위협요인이 되는 해안 두보내로의 적 기갑/기계화 부대의 증원을 적절히 차단할 수 있으므로 상 륙작전의 성공을 보장

 

ㅇ 인천상륙작전 계획 자체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

- 작전배경과 수행과정, 지휘관의 혜안면에서는 우수한 특징을 보여주지만 계획자체는 지극히 위험하고 회의적이라 할 수 있음

- 전쟁전체의 판도를 좌우할 수 있는 대규모 작전에서의 불충분한 준비와 성공 가능성의 희박은 도박에 가까운 모험으로서 재 검토 필요

 

ㅇ 상륙작전의 수단과 방법의 문제

- 해상에서의 피해 최소화를 위한 해상제대 개념의 대두

- 헬기를 이용한 수직포위 개념의 필요성 제시

- 특수한 작전 환경(암벽등 부적합한 상륙해안) 극복을 위한 수단의 준비

- 장차 상륙가능지역에 대한 평시 전술정보 확보의 중요성

 

5. 상륙작전 및 서울탈환이 전쟁에 미친 영향

▲ 한국군에 미친 영향

ㅇ 긍정적인 측면

- 초기 한국군 상황 : 초기작전 대패로 사기저하와 전투력 손실/전투피로 등으로 효과적인 전투력 발휘 곤란 상태

- 한국 해병대 제 1연대 및 육군 17연대의 상륙작전 참가와 한국 해병대에 의한 중앙청 탈환은 반격작전간 고무적인 요소로 작용

- 유엔군의 최초 전쟁목적인 실지회복에서 북진통일로의 변경은 한국군 및 국민들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열망과 전투사기를 진작

 

ㅇ 부정적 측면

- 북진간 지역목표에 집착

․서울탈환이 북괴군 패퇴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인식이 평양이라는 지역목표에 집착케 하므로서 동부전선의 1군단을 제외한 나머지 부대들 의 평양으로의 경쟁적 진격으로 상호 연계된 작전 제한

- 한국군의 독자적인 38도선 돌파

*10/1, 10/6, 10/7에 제 1군단, 2군단 예하 6사단, 8사단이 각각 돌파(유엔군 : 10. 9일) *단독 돌파 이유 : 상륙작전/서울탈환작전으로 북괴군이 지리멸렬하여 패주하자 지금이 통일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는 인식과 유엔군의 북진결정 지연이 이를 더욱 가속화

․작전연계 및 협조 곤란(8군 내에서의 각 부대간 상이한 작전행동)

․한국군의 역할을 스스로 격하시키는 역할을 자청한 격

(38도선 돌파시 중공과 소련의 반응과 북괴군의 방어상태 확인 위한 전위부대 역할)

 

▲ 미군에 미친 영향

ㅇ 전쟁목적의 변경 : 최초 전쟁전의 상태로의 원상회복 → 북진통일

- 상륙작전의 성공 : 추가적인 작전행동 결정 딜레마 봉착

․미국의 한국전 개입성격 : 소련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봉쇄정책의 일환으로 제한전의 형태(미국의 주 관심 : 유럽 방호)

․소련의 안전보장이사회 복귀 및 중공의 개입의사 표명(주중 인도 대사)

․미국내의 북진에 대한 찬반의견 양분

․일부 중립국들의 북진 반대

- 트루만 대통령의 딜레마 : 최초의 전쟁개입 목적과 정치적 반대세력의 압력사이에서 명확한 결정 불가

- 유엔 총회의 유엔군 북진결정에 대한 결의안 통과(10. 7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역전과 유엔군 손실 최소화

․전쟁 재발 방지위한 북괴군 완전격멸 필요

․38도선에 대한 정치적 경계선 이상의 의미 부여 곤란

․전쟁기간중에도 해군과 공군의 작전은 38도선 이북에도 실시한 반면 지상전만 38도선 이남으로 제한시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

 

ㅇ 2개의 추가적인 상륙작전계획 수립의 계기

구 분

원산 상륙 작전

통천 상륙 작전(랑구라 계획)

계 획

수 립

맥아더(인천상륙작전 성공후 9월말)

밴프리트(51. 7월 휴전회담 결렬후)

이 유

․한반도의 지형적 여건(태백산맥)으로 산맥의

양쪽을 모두 확보 필요

-동․서간의 협조된 작전 곤란

-적 우회공격 방지 / 효과적인 지휘통일

․보급지원 문제해결

-도로 / 철로의 파괴: 육상지원 제한

-인천항 조수: 충분한 양의 보급품양륙 불가

-원산항 이용 일본으로 부터 직접지원 시도

․휴전 회담 결렬후 공산군을 휴전

회담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대규모의 하계공세 성과 미흡

․8군 내에서 강력한 공세작전 여론

․교섭의 성공을 위해 당시 8군

사령관이었던 밴프리트에 의해

랑구라 계획 입안

부정적

의 견

․제 8군에서의 회의적 반응 표명

-8군의 주력이 아직 서울 미도착

-북괴군 추격은 10군단의 현지 수행이 시간

및 보급지원 면에서 유리

-원산상륙작전을 위한 10군단의 승선 기간

(2주간) 동안은 보급품 양륙 제한

-현재의 한국군 1군단의 진격속도는 상륙군

보다 먼저 원산에 도착 가능

․유엔군 사령관인 리지웨이

장군의 반대로 미 실현

-강력한 펀치 보다는 작은 잽이 보다 유리하다고 판단

인천상륙작전 영 향

당시 전쟁지도부는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대한 영향으로 쉽게 맥아더의 계획에 반대할 여건이 형성되지 못함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한 상륙작전의 효과와 중요성을 인식한 것으로 분석

 

ㅇ 미국의 상륙작전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

- 노르망디 상륙작전 및 태평양 전쟁시의 상륙작전에 대한 효용성에도 불구 하고 대전 종료 후에는 핵무기의 위력에 도취되어 상륙전 중요성을 간과

※당시의 미국의 안보전략은 봉쇄전략으로 소련의 팽창로 상에 재래식 전 력의 전진기지를 추구하였으나 재래식 전투력에 의한 승리달성에 대해 서는 회의적인 분위기가 만연하여 상륙작전에 대한 전력은 상당히 저하 되어 있었슴

- 그러나,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최소한의 피해에 비해 최대한의 성과를 달성하므로서 상륙작전의 유용성에 대해 재인식하는 계기 제공

 

▲ 북괴군에 미친 영향

ㅇ 전투의지를 파쇄하여 전장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하므로서 조직적인 철수와 건제유지를 불가능하게 함

 

ㅇ 패주시 전투력의 와해로 인하여 독자적인 작전능력을 상실 중공군의 개입시 전쟁의 주체에서 이탈하여 주로 중공군 작전의 지원형태를 취함

 

ㅇ 패주시 유엔군의 진격속도에 비해 효과적인 철수가 불가하여 부대건제를 유 지한 가운데 오대산, 지리산, 태백산등으로 잠입하므로서 남한 내에서의 제 2전선 형성의 계기가 됨

※ 아군 병참선 차단/습격 등의 후방교란 임무를 수행, 중공군 개입 후 더욱 활발하여 아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까지도 지연시킬 정도가 되자, 결국 워커 중장에 의한 제 3군단을 창설, 후방작전 부대로 운용

 

ㅇ 기존의 소련 군사고문단에 의한 전쟁지원에서 전쟁수행주체가 중공으로 전 환 → 대 소련 의존에서 대 중공 의존으로의 정책노선 변화 초래

 

ㅇ 북괴군의 4대 군사노선에 대한 영향

- 50. 12. 21 별오리 작전실패분석 회의에서의 김일성의 8가지 전략적 반성 중 제해권과 제공권에 대한 중요성 인식

- 제해권과 제공권은 인천상륙작전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는 볼 수 없으나 그 인식의 강도를 더욱 강하게 하는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음

 

▲ 중공군에 미친 영향

중공군은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 이후에 개입하였으나 그들의 公刊史에 동 작전이 미친 영향이 비교적 자세히 기술되어 있음

ㅇ 중공군의 한국전 참전결정에 영향

- 중공의 한국전 참전 의사표명 : 인천상륙작전 성공후 유엔군이 전쟁목적 변경을 위한 의사결정과정중에 주중 인도대사를 통해 만약 유엔군이 38도 선을 돌파할 경우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공식적인 의사를 표명

- 중공의 한국전 참전결정 배경 : 안보문제 + 국내문제 + 소련과의 관련성

․소련의 의도 : 미국에 비해 전력 및 경제력의 부족으로 미국과의 전쟁 을 회피하고 전쟁을 38도선 일대에서 종결

․중공의 국내 상황

․․건국 1년된 신생정권으로서 정치적으로 불안정

․․국공 내전으로 인한 경제피폐, PLA내의 국부군 출신 병력 절반

․한국전 참전을 통한 중공의 의도

․․국내 불만세력 제거 및 군대 감축

․․국내 경제문제 해결 위한 소련으로 부터의 예산 확보

․․국제적 지위상승 : 미국과의 전쟁을 통한 아시아에서의 소련 영향 력 감소와 정치적인 주도권 장악

※ 한국전 발발 이전 김일성의 북경 방문시 만약 미군이 개입시는 중공군이 참전한다는 약속은 있었지만 유엔군이 전쟁목적을 변경시키지 않았을 경 우에는 중공군의 참전여부가 불투명해졌을 것으로 판단 가능

 

ㅇ 중공군 참전간 유엔군의 추가적인 상륙작전에 대비한 대상륙방어대책 강요

- 모택동의 유엔군 상륙작전에 대한 예견

․맥아더의 과거경력, 한반도의 지형적 특성 고려 유엔군이 인천-서울지 역이나, 진남포-평양지역으로 상륙작전을 실시할 가능성에 대해 예견

-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가 일거에 역전되자 추가적인 상륙작전에 대한 대비책 강구 불가피

 

ㅇ 중공군 1차 공세간 대상륙방어 대책

- 10. 19일 공식적으로 입북이후 유엔군이 박천-운산-온정리-희천 선 진출 시 유동적인 상태로 1차 공세 시작

- 제 13병단 예하 제 50군 150사단을 신의주에서 안주방향으로 진출시켜 유 엔군의 상륙작전으로 부터 신의주를 방호토록 배치

 

ㅇ 중공군 3차 공세(정월 공세)간 대상륙방어 대책

- 1950. 12. 31 유엔군이 임진강 하구-연천-춘천북방-양양 선 진출시의 공세

- 북괴군 1군단의 일부를 해주지역에, 북괴군 해군 4개여단을 동해안 방어에, 북괴군 3군단을 원산지역에, 4군단을 서해안 방어임무를 위해 배치하고, 중 공군 9병단은 동부전선에서 교대후 함흥으로 이동하여 재편성

 

ㅇ 1. 4 후퇴간 유엔군의 상륙작전에 대비한 작전행동

- 주력부대의 한강선 정지 / 추격중지

․유엔군 주력부대가 전투력을 유지한 가운데 강력한 저항과 심한 피해없 이 신속히 철수한 것은 추가적인 상륙작전을 실시하기 위해 중공군을 유 인한 것으로 판단

- 부대 운용

․중공군 주력부대의 한강선 정지, 제 50군만 추격부대로 운용

․북괴군 제1군단 1개사단 서울 잔류, 주력은 김포 비행장과 인천항구 점령

 

ㅇ 중공군 4차 공세 및 유엔군 1차 공세간 대상륙방어 대책

- 동해안에 9병단 예하의 2개군을 배치 해안방어 강화

 

ㅇ 5차 공세간 대상륙방어 대책

- 1951. 4월말 유엔군의 상륙기도를 조기에 분쇄하여 작전의 주도권을 장악 하기 위한 목적

- 중공군의 유엔군 작전기도 분석 : 유엔군이 공산군의 측․후방에 상륙을 실시하고 정면공격과 배합하여 원산에서 평양을 연하는 선에서 방어선을 구축할 계획인 것으로 판단

- 총 5개 군단을 대상륙 방어부대로 운용

 

ㅇ 휴전회담간의 대상륙방어 대책

- 지구전과 적극방어전략을 채택후 정면의 전선과 측․후방 해안선에 강력 한 진지구축

- 부대배치 : 보급지원과 유엔군의 상륙작전에 대비 총 18개군 중 9개 군을 전방, 나머지 9개 군은 후방에 배치하여 윤번제로 운용

- 동․서해안에 대한 북괴군과 중공군의 효과적인 작전지휘를 위한 연합 지 휘소 설치 및 동․서해안을 직접지원할 수 있는 군수지원부대 편성 운용

- 1953년도에는 대상륙방어 준비를 가장 활발하게 전개

․연합군의 작전계획 분석 : 청천강과 한강사이의 서해안에 대하여 상륙작 전을 개시 개성을 포위할 것으로 판단

․추가적인 병력 증강과 지휘통일, 보급지원체제 등의 개선에 노력 집중

 

結 論

1. 인천상륙작전의 전쟁사적 의의 재강조

인천상륙작전은 작전자체의 성과 보다는 그 작전으로 인한 경험적․상징적 학습 효과가 전쟁의 행위자와 전쟁전반에 파급되어 이후의 피․아 작전에 지대한 영향 을 미침으로서 더욱더 전쟁사적 의의를 지닌 작전으로 평가

▲ 이러한 이유

1. 기습효과 달성을 통한 적의 전투의지 파쇄

2. 상대국 전쟁지도부의 성향

3. 언제든지 상륙작전을 실시할 수 있고, 노출될 수 밖에 없는 해․공군

세력의 심한 불균형과 전장의 지리적 특성

※ 기습효과의 전례

ㅇ 2차 대전시 독일군 판져사단의 경이적인 돌파작전에 의한 프랑스군 붕괴

ㅇ 제 3차 중동전쟁에서의 이스라엘군에 의한 시나이 반도의 점령

ㅇ 한국전쟁 초기 북괴군의 T-34 전차를 이용한 기습공격

* 기습효과 → 심리적 마비 현상을 동반

- 심리적 충격(마비)은 전투력 상승의 기하하적인 효과 달성 가능

전투전의 1:1 병력손실 비율 → 기습달성후의 1:5 병력손실 비율로 급증

- 인천상륙작전에서의 심리적 충격 성공요인

․서울과 근거리에 위치하여 적의 병참선 및 퇴로 차단 용이

․인천의 지리적 난관은 북괴군으로 하여금 오히려 예상치 못하도록 한 요인으로 작용 → 리델하트의 최소예상선․최소저항선으로의 전투력 집중효과 달성 가능

 

2. 전투의지 파쇄 효과

ㅇ 심리적․물리적 교란을 통하여 달성

- 물리적 교란 : 아군의 기동에 의해 적의 배비와 조직을 교란시키고, 보급을 위기에 빠뜨리며, 적의 퇴로를 위협하므로서 적의 전투력 발 휘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

- 심리적 교란 : 물리적 교란 효과를 적 지휘관에게 인상시켜 준 결과로서 아 군의 행동에 대하여 대응의지를 상실하므로서 주도권을 박탈 당하는 것이며, 통상 물리적 교란을 당한 직후에 발생

ㅇ 북괴군의 패주와 패주시 나타났던 전투력의 와해 요인

-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한 1차적인 심리적 충격

- 수도서울 탈환이 주는 상징적 효과

- 병참선과 퇴로 차단에서 오는 물리적 교란으로 인한 2차적인 심리적 충격

※ 1차적 충격 + 상징적 효과 + 2차적인 심리적 충격이 기하학적으로 혼합 상승

ㅇ 중공군 참전간 대상륙방어 대책 강요 요인

- 재차 기습적인 상륙작전을 당할시 겪게될 전투의지 파쇄에 대한 우려

※ 미군과 한국군에 미친 긍정적․부정적 영향 또한 인천상륙작전과 수도서울 탈 환작전이 주는 심리적인 고무와 작전적 잇점에 기인

 

3. 지휘관의 성향

ㅇ 적의 방책수립에 영향을 미치는 한 요소로 작용

ㅇ 맥아더의 풍부한 상륙작전 경험과 지휘 능력은 중공군으로 하여금 대상륙방어 대책의 강구에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요인으로 작용

※ 모택동의 인천-서울지역, 진남포-평양지역으로의 상륙가능성에 대한 경고

 

4. 유엔군과 공산군의 해․공군 세력의 불균형과 전장의 지리적 특성

ㅇ 공산군 : 바다와 공중으로 부터의 공격에 취약

유엔군 : 언제든지 바다와 공중으로 부터의 전투력 투사가 가능한 잇점 제공

ㅇ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은 해․공군 세력의 불균형 강도를 더욱 심화

- 협소한 정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장된 종심

- 주요 도시나 전략목표, 또는 도로망 철로 등의 해안 인접

※ 바다로부터의 중무장한 전투력에 의한 차단 위험 상존

 

5. 결 론

▲ (인천상륙작전과 수도서울 탈환작전이) 피․아 작전에 미친 영향 요약

ㅇ 낙동강 방어선에서의 공세이전의 계기 조성 및 전세 역전

ㅇ 북괴군의 전투력 와해로 인한 전쟁주체로 부터의 이탈

ㅇ 유엔군의 전쟁목적 변경, 한국군 전투사기 고양 및 지역 목표 집착

ㅇ 중공군의 참전결정과 참전간 추가적인 상륙작전 위협에 대한 대상륙방어 대 책의 강요로 정면전선으로의 전투력 집중 방지 및 불필요한 노력 강요

▲ 기대 및 결언

ㅇ 최근 공개되기 시작하고 있는 공산군측 자료의 중요성과 한국전쟁 전반에 걸 친 재조명 필요

ㅇ 본고의 성격 및 제한사항

- 주로 전략적․작전적 관점에서의 인천상륙작전과 수도서울 탈환작전의 영 향을 중심으로 연구

- 세부적인 전술작전 분야와 각 작전간 한국군과 유엔군의 의사결정과정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활동이 필요

ㅇ 본 연구와 관련된 보다 깊이있는 연구활동과 이러한 연구활동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기대함


출처 : 해군사관학교 23기 예비역 해병대령 김현기 선배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hosanfor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