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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戰爭期 - 육군포병학교의 우등생 오원희 해병

머린코341(mc341) 2016. 3. 8. 00:03

6.25戰爭期 - 육군포병학교의 우등생 오원희 해병

 

1.4후퇴(51.1.4) 직후(1월 중순경) 진해 도천초등학교에 위치하고 있던 해병대사령부에서는 포병대대의 창설요원 확보를 위해 그 당시 진해에 집결해 있던 각 부대에 소속된 1·2·3기 및 해병대로 전입한 해군 11·14기생 등 모든 기수의 사병들을 응모대상으로 하여 진해여고 교정에서 지망자(약 1,300명)에 대한 공개 전형시험(출제과목 수학과 영어)을 치른 다음 45명의 합격자(4기생-40명, 1기생-1명, 2기생-2명, 해군 11기생-1명)를 선발하여 개별적으로 포병과를 지망한 고길훈(소령) 정만진(대위) 고상하(대위) 정광호(대위. 도중에 탈락) 차용윤(중위) 이응선(소위) 등과 함께 그 당시 진해중학교에 위치하고 있던 육군포병학교(그 후 경화초등학교로 이전) 특과 4기 과정에 입교시켜 약 100명의 육군 입교자들(수료 후 장교로 임관)과 함께 4주 간의 위탁교육을 받게 했는데, 기억력이 뛰어난 부태삼씨(해병4기)의 증언에 따르면 입교자는 51년 2월 5일(월요일)이었고, 그 전전날(土) 진해여고에 집결한 45명의 해병대 입교생들(사병들)은 정만진 대위의 인솔 하에 포병학교 교육대장 홍종철 소령(후일 청와대 경호실장 역임)에게 할 입교신고식을 했다고 하며, 약 50명의 해병대 장병들과 약 100명의 육군 입교자들이 함께 받은 그 특과 4기 교육과정에서 공동우등(1등)을 한 사람이 곧 오원희 해병(제주농고 출신)이었고, 위탁교육을 받은 그 45명의 사병들은 전원 1등 수병에서 하사로 특진했다고 한다.

 

또한 해병대사령부에서는 육군포병학교의 특과 4기 과정이 끝나기 전 해병 5기생들이 입대하자 그들(약 1,200명) 중 고등학교 재학 시 수학과 영어 성적이 우수한 자들(약 80명)을 선발하여 육군포병학교 하사관 교육대에 입교시켜 위탁교육을 받게 했고, 필요한 기간요원이 확보되자 그 해 2월 24일 진해에서 해포대를 편성한 데 이어 그 해 8월에는 1,2차에 걸쳐 포병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창설요원(하사관 및 병)을 중동부전선(펀치볼)에서 작전 중인 미 해병제1사단 11연대(포병연대)에 파견하여 장비가 도입되기 직전까지 실전에 적응하는 위탁교육을 받게 한 다음 18문의 포(105밀리)를 인수하게 된 51년 11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에서 마침내 해포대의 창설식을 거행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때 육군포병학교 특과4기 과정을 수료한 45명의 하사관들 중 41명은 전원 각 중대(3개 중대)별 기준포(3·4번)의 분대장으로 임명되었고 육군포병학교 특과 4기 교육대에서 공동1등을 차지했던 오원희 하사를 비롯한 4명의 4기생과 5기생 1명은 FDC(사격지휘본부)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2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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