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戰爭期 - 원통해서 중공군의 목을 자른 김인배 해병
51년 6월 초순경 월암리(月岩里. 개풍군)에 기지를 두고 월암리 전방 약 8키로 지점에 있는 외나무고개 쪽에 대한 수색을 벌이고 있던 권문경 소위가 지휘하는 5대대 23중대 2소대의 정찰대는 그 외나무다리 아랫마을 쪽으로 급히 달아나고 있는 중공군 한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는데, 첨병분대 대원으로서 그 중공군을 사살한 김인배 일병(해병4기)은 먼저 사격을 가한 후위 쪽 대원이 놓친 그 중공군을 M1소총으로 겨냥할 때 이제야 소원을 성취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자를 생포하기 위해 하퇴부를 겨냥하여 방아쇠를 당김으로써 주저앉게 했으나 주저앉은 그가 “무기를 버리고 두 손을 들지 않으면 사살하겠다고 소리를 쳤는데도 말을 듣지 않고 권총을 뽑아들고 저항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사살하고 말았고, 그 자가 숨을 거두자 어떻게나 원통하고 절통했던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던 그는 마을 사람에게 도끼를 가져오게 하여 직접 그 도끼로 그 자의 목을 잘라 가마니에 담아 소대본부로 가져갔다고 하는데, 그가 그처럼 원통하고 절통했던 까닭은 만약에 사살을 하지 않고 생포가 되었더라면, 다시 말해서 한쪽 발에 총상을 입은 그가 저항만 하지 않았더라면 포로를 획득한 유공자에게 주어지는 일 계급 특진과 20일 간의 포상 휴가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 그 일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계급장을 달고 있지 않아 군관인지 특수요원인지 신분은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그 자가 소지하고 있던 권총은 그 당시의 소대원들로서는 처음 본 20발의 실탄을 장전하는 총신에 덮개가 없는 권총이었다고 한다.
한편 전과를 거둔 그 소대에서는 그 전과를 확인시키기 위해 중공군의 목이 담긴 그 피 묻은 가마니를 중대본부로 운반해 갔고, 중대본부에서는 그것을 그 당시 양곡초등학교에 위치하고 있던 5대대 본부로 가져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2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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