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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戰爭期 - 독립42중대에서 활약했던 전초도서 파견대장들

머린코341(mc341) 2016. 8. 1. 22:12

6.25戰爭期 - 독립42중대에서 활약했던 전초도서 파견대장들

 
51년 2월 중순경에 여도에 상륙했던 독립42중대(장,심희택 대위)에서는 최전방 전초도서인 황토도(黃土島)의 점령과 방어 및 첩보공작 등을 위해 그 해 5월 초순경 김동광(金東光) 하사관(부사관)이 지휘하는 황토도 파견대를 설치, 운용 했는데 그 파견대에는 해군 동해지구첩보대(장,장경수 소령)에서 지원한 12명의 대원이 파견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김동광 하사관이 지휘했던 그 황토도 파견대는 5월 중순경 야음을 틈타 통천군 하장진면에 침투하여 비록 그들이 노렸던 인민군 장교는 생포하지 못했으나 1명의 장교와 여러 명의 병사를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5월 하순경에는 두 차례에 걸쳐 목선을 타고 황토도로 침투한 적 기습대를 미 해군 함정에서 발사한 조명탄(야간의 경우)과 함포의 지원 하에 치열한 교전 끝에 격퇴시키거나 전원 수장을 시키는 전과를 거두었다. 즉 5월 23일 밤 1척의 목선에 편승하여 황토도로 접근해 왔던 약 20명의 적 기습대는 진지 전방 약 500미터 지점에서 아군 보초병에 의해 조기 발견되어 미군 함정에서 발사한 조명탄과 함포의 지원사격으로 그 목선이 격침당함으로써 치열한 교전 끝에 전원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고, 그 다음날 오전 11시경 5척의 목선에 분승하여 황토도로 침투해 왔던 약 100명의 적도 맹렬한 함포의 지원사격으로 2척의 목선은 격침을 당하고 3척은 격파를 당한 상황 속에서 치러진 파견대 대원들과의 치열한 교전 끝에 거의 전원이 몰살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황토도에 배치된 1개 소대의 병력이 갈마반도의 남성리 해안에서 발진한 수척의 목선에 분승한 약 150명의 적에 의해 전멸을 당했던 날짜는 그 해(51년) 11월 29일이었다).

 
한편 김동광 대장이 지휘한 황토도 파견대가 황토도에 설치되기 전(51년 4월 중순경) 모도(茅島)에 파견되어 있던 모도 파견대장 윤 모 하사관은 문천(文川) 지구의 해안경비 책임자인 인민군 중좌를 생포하기 위해 독립42중대에 배속된 해군첩보공작대원들(6명)이 조직한 10여 명의 공작원들(북한 탈출 반공청년들)과 20여 명의 육군 HID 요원들을 지휘하여 3척의 목선에 분승, 문천군 고암리 해안에 은밀히 상륙하여 야음을 타고 목적지로 접근해 가던 중 적진으로부터 기습적인 집중사격이 가해지는 바람에 퇴로를 차단당한 상태에서 2명의 아군 첩보대원과 약 20명에 달하는 HID대원 거의 전원이 전사를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끝으로 김광식 소령이 동해부대(독립42중대의 후신)장으로 있을 때(51년 여름) 김광식 부대장의 각별한 지원 하에 부대본부가 위치한 여도에 대성학교를 세워 휴전이 될 때까지 피난민들과 원주민 자녀들을 가르쳤던 정태언(鄭泰彦)씨(함남 여흥군 출신)에 관한 얘기를 한 토막을 남겨두고자 한다.

 
해군첩보대(ONI) 1차 요원 중 독립42중대에 배속이 된 6명 중의 한 사람인 그는 51년 3월 하순경 독립42중대장으로부터 모도를 확보하여 영흥만 일대의 적정을 수집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5명의 대원들과 함께 신도(薪島)를 거쳐 모도에 상륙하여 저녁 8시경 부락이 있는 곳으로 진입하던 중 그 섬에 기착해 있던 육군 HID의 오인사격으로 왼쪽 폐와 팔에 관통상을 입었으나 용케도 목숨을 부지한 그런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과거 인민학교의 교사 경력을 지닌 그러한 그의 교육자적인 정성과 김광식 부대장의 지원 하에 세워졌던 그 대성학교(학교명은 그 당시 동해부대에서 군무한 홍성철 중위가 지었고, 학교사진은 본서 제1권에 수록된 김광식 대령편에 게재되어 있음)는 휴전이 될 때까지 약 1년 간 약 35명 정도의 초등반 수료자와 5명 가량의 중등반 졸업생을 배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울러 이 지면에 서해와 동해 도서부대의 전초도서에서 활약했던 전설적인 인물들의 사진을 실으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백방으로 수소문 해 보았으나 그들의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어 뜻을 이루지를 못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2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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