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병의 실록 (1)]입영통지서
빨간 명찰을 가슴에 품고 싶어 포항 땅을 밟았다. 친구들은 뭐하러 힘든 고생길을 가느냐 만류했지만 나름대로 계획은 있었기에 갈등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홀로 남게 되는 어머니 때문에 약간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시위대를 떠난 화살이었다.
포항 땅은 전날 내린 비로 인해 질퍽거렸다. 앞에선 어머니가 치마 자락을 훔쳐내시며 자식과의 생이별을 안타까워했다. 그 모습이 눈에 밟혀 뒤 돌아설 수가 없었다. 돌아서기만 하면 풀석 주저 앉아 통곡하실 것 같았다. 일찍부터 홀로되신 어머니....오로지 집안 살림 하시고 학처럼 곱게 사셔야 어머니가 이른 나이에 아버지 없이 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시장바닥을 삶의 터전으로 사신 어머니....그런 어머니였기에 발걸음이 더욱 떨어지질 않았다.
"야야 우짜든동 높은 사람 말 잘 듣고 몸 하나 건성 하거래이 이 엄마는 그거 하나면 더 바랄 것이 읍따"
잡은 손을 놓기만 하면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버릴 것 같다.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 집 떠나올 때부터 다짐 또 다짐하였건만 눈물은 왜 자꾸 흘러 마음 약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당신의 안이는 걱정않으시고 오로지 자식 걱정만 늘어놓으시는 어머니의 사랑에는 더 이상 버터 낼 재간이 없다.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미끄러져 고개를 빈 하늘로 돌려야만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맑고 화창한 하늘......차라리 비라도 내렸으면 눈물이라도 감출 수 있으련만.....바람이라도 불었으면 눈물을 말릴 수 있으련만....
"제 걱정 마세요....어머니 걱정이나 하세요"
빨간 모자를 쓰고 호르라기를 목에건 조교가 부대안으로 빨리 들어오라 재촉했다. 어머니를 멀리하고 서문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1미터....2미터.....거리가 멀어질수록 어머니의 흐느낌이 비수처럼 등 뒤를 꽂으며 발걸음을 붙잡았다. 하지만 한번 돌아선 이상 뒤 돌아 볼 수는 없었다.
뒤 돌아보면 마음이 더 아플것 같아서였다. 주위엔 온통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포옹 일색들이다. 웃고 헹가레치고 박수치고 다들 즐겁게 군복무를 받아 들이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들처럼 포옹이라도 해 드릴 껄.....손이라도 따스하게 잡아 드릴껄.....살 갑지 못한 못난 성품이 한없이 원망스럽다.
서문을 오르며 어머니가 가셨나 설핏 돌아봤다. 하지만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자식의 뒷모습을 더 보기 위해 그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이 길로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고 그로인해 가슴이 복 바쳤다.
눈물 한 방울 굴러 떨어지며 사물을 흐리게 만들었다. 불쌍하신 우리 어머니....금쪽 같은 자식 나라에 맡기고 밤마다 눈물로 지새울 할미꽃 같은 내 어머니.....남들 다 하는 대학 못 보내셨다 한을 안고 평생을 사셨던 종이학 같은 우리 어머니.......어머니....제발 몸 건강하세요.
"♬어머님에 손을 놓고 달아나는 이 자식은 천근만근 무거운 발길을 옮깁니다
기어이 전역하여 돌아갈 사나이가 울기는 왜 울어 왜 우냔 말이냐 이 못난 자식아♪"
-1부 끝-
※참조: 이 글은 필자와 함께 복무했던 어느 해병의 실록을 각색하여 소설 형식으로 빌어 쓴 것이며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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