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518기 전종권

[어느 해병의 실록(4)]조지나 건빵

머린코341(mc341) 2016. 8. 14. 17:12

[어느 해병의 실록(4)]조지나 건빵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한 정복은 다음 날부터 훈련에 재 합류했다. 교관으로부터 한방 먹은 복부가 움직일 때마다 시큰거리고 아팠지만 훈련받는데 지장 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움직임이었다. 선착순에도 평소보다 뒤 쳐졌고 구보훈련도 마찬가지로 남들보다 힘이 들었다. 종복은 교관에 대한 적개심은 별로 들지 않았다.


그들 또한 최강 해병을 만들어야하는 군인 신분이라 어쩔 수 없었을 것이고 또 많은 훈병을 가르쳐야하는 본분에 충실했을 뿐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복은 구보간에 쉬지 않고 호루라기 불며 힘들어하지 않는 강인한 체력을 가진 그들이 부러웠다. 뛰고 구르고 구령 붙이고 군가 부르고...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 놔도 돌아갔다.


동초근무를 교대자에게 넘긴 정복은 내무 실로 들어오자마자 피곤한 육신을 침구 속으로 밀어 넣었다. 칼 같이 정돈된 침구는 바깥 기온에 얼어붙은 몸을 따뜻하게 녹여 주기에 충분했다. 얼었던 몸이 녹자 홀로 주무실 어머니 생각이 났다.


홀로 계시는 어머니는 무얼 하고 계실까? 연탄 값 아끼려 냉방에서 주무시는 건 아닐까? 보고 싶은 아들 생각에 밤마다 우시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어머니 얼굴이 보고 싶었다. 외롭거나 힘들거나 슬플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오로지 자식만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는 사람, 종복은 그런 어머니가 그리웠다.


다른 초소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동기 종섭이가 엉거주춤 다가와서는 뭔가를 침구 속으로 밀어 넣었다. 점심 식사용으로 보급 받은 건빵을 해병창고에 숨겨 놨던 거라 속삭였다. 이게 왠 떡인가 싶었다. 건빵이 떡으로 보일 정도로 정복의 배는 이미 비참해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위험을 무릎쓰고 얻은 식량을 나눠주는 종섭이의 동기애에 가슴이 찡해왔다.


한없이 고마웠다. 고맙단 인사를 눈으로 하고 아무도 몰래 한 알을 입에 넣어 깨물었다. 달콤했다. 군용 건빵이 무에가 그리 달콤했겠냐만 허기진 정복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정복은 또 한 알을 입안에 넣어 깨물었다. 그런데 너무 심하게 깨무는 바람에 소리가 너무 컸다. 간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다행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듯 주위는 코 고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정복이는 마지막 남은 한 알의 건빵을 입안에 구겨 넣고는 서서히 서서히 잠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때 였다.


"제 2소대 총 기....사....앙  병사 떠나 5분 저~언"


듣기조차 싫은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야간 훈련 명령이 떨어졌다. 옷을 챙겨 입는 동기들의 입에서 불만 섞인 욕설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소대장 저 씹 새끼는 잠도 없나 맨 날 올빼미 훈련하고 지랄이야...."

"누가 아니래...저 새끼 앉은자리에는 풀도 안 날 꺼야"


연병장에 집합한 훈병들은 잠이 덜 깬 눈으로 오와 열을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단상에 오른 교관은 인원보고를 받은 후 훈병들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 아무 말 없이 없었다. 말이 없는 교관을 보자 훈병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평소 거품을 물며 일장 연설하기를 좋아하던 교관이 아무 말이 없다는 건 무슨 특별한 일이 벌어짐에 틀림없을 터였다. 피교육자의 삼대요소 즉 춥고 배고프고 졸리는 것이라도 떠들어야 할 교관이었다. 훈병들을 세워놓고 침묵으로 일관하던 교관이 조용하면서도 위엄 있게 입을 열었다.


"어떤 새끼야  빨랑 앞으로 튀엇!"


교관의 앞 뒤 꼬리를 잘라낸 명령에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훈병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 시폴넘들이 척하면 삼척이고 푸~욱하면 똥치년 아랫도리 뚫리는 소리이지 뭘 멀뚱멀뚱 거리고 있서.....야밤에 보급식량 축 낸 놈 나오란 말야 새끼들아"


-4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