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을 위해 산화해 간 어느 해병의 실록(2)] 오와 열
어머니를 뒤로하고 훈련소 안으로 들어가자 빨간 모자에 지휘봉을 잡고 있는 교관(DI)의 지글지글 쇳소리가 귓밥을 팠다.
"야 이 좆같은 새끼들아 귓구멍에 좆 박았나 일렬 종대로 서라는데 뭐하고 있어?"
정복이는 조교의 날카로운 육두문자를 들으니 이게 군대구나 싶었다. 총대 메고 완전군장 차고 화약 냄새 맡으며 생과 사를 다투는 군대....가고 싶으면 가고 말고 싶으면 말고 잠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는 민간인이 아니구나 싶었다. 교관의 칼날 같은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너희들은 해병대다. 해병대는 오와 열이 생명이고 그것이 동시에 이뤄져야만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옆을 돌아봐라 너희들은 한배를 탄 동기들이다. 동기는 피를 나눈 형제이며 형제끼리는 뭉쳐져만 산다. 살기 위해선 하나가 되어야 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선 훈련이 필요하다. 지금부터 하나 되기 위한 훈련을 실시한다 좌우 동기들과 어깨동무...실시!"
"실시!"
훈병들은 양옆에 선 동기들의 어깨에 신속하게 손을 얹었다. 신속하게 얹었다고 하지만 교관의 눈에는 그렇게 비춰지지 않았다.
"어쭈 임 개쒜이들 동작 봐라....그렇게 느려 터져 가지고 하나가 되겠어? 뒤로 지침!"
뒤로 지침이란 생소한 말에 동기들은 안절부절하며 머뭇거리자 교관은 손에 들려져 있던 지휘봉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지휘봉이 춤을 추자 동기들의 동작도 빨라졌다. 느려터진 고문관 녀석도 금방 말귀를 알아듣고 재빠르게 뒤로 자빠졌다.
기초 군사훈련을 받기 시작한지 1주일이 흘렀다. 낮에는 제식훈련, 밤에는 암기훈련이 이어졌다. 골치 아팠다. 군가는 곡에 맞춰 따라 부르기만 하면 저절로 익혀져 그래도 견딜만 했지만 "해병의 긍지"라던가 "군인의 길" "팔각모의 의미"나 "빨간 명찰의 의의"등 생다지로 외워야 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암기 과목에 약점을 가져 애를 먹었는데 군대까지 와서 그럴줄은 꿈에도 생각못했다. 거기다가 이름조차 거명하기 싫은 직속상관 관동성명은 왜 또 외라 하는지....그래도 외우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지휘봉을 들고 돌아다니며 수시로 암기 상태를 점검하는데는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한 단어라도 틀리면 꼴아박아는 기본이요 소이동은 보너스에 불과했기에 암기사항은 탈영이란 단어를 떠오르게 만드는 골치아픈 과업임에 틀임없었다.
훈련은 낮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시행되는 빵빠레 훈련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상상도 하지 못한 훈련이었다. 낮에 받은 훈련으로 몸은 소금에 저린 배추처럼 녹초되기 일보직전인데 교관은 5분대기조란 명목하에 훈병들을 볶아 댔다. 겨울 옥상의 밤바람은 이외로 차갑고 사나웠다. 바닷바람이라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4열 횡으로 늘어선 훈병들 옆에는 드럼통 몇 개가 밤하늘의 별빛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 씹팔놈들아 너희들이 군인이야? 군인이...그것도 大 해병대 5분 대기조가 집합하는 시간이 그것밖에 안돼 이 씹할놈들아......다들 옷 벗어.....팬티 한 장 남기지 말고 벗으란 말야 이 기압빠진 새끼들아.....각 분대장 총알같이 앞으로 튀엇!........"
정복이는 이 추운 겨울에 속옷까지 벗기는것과 분대장을 불러내는데는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꺼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마지막 남은 팬티를 내린 정복이는 생각했다. 옷을 벗긴다는 건 인간으로써의 자각을 없애고 생식기를 드러낸 수치심에 타인 앞에서 참담한 패배감을 안기기 위해 군 헌병대나 대공 취조실에서 행해지던 것인데 군대에서 무슨 효력을 얻겠다고 이런 훈련을 시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랫도리를 내려다 보니 생식기는 낮은 기온 만큼이나 번데기처럼 쭈그라져 허벅지와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부대원들 앞으로 나온 분대장들은 교관(DI)의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교관는 팬티바람의 대원들 앞에서 싸우면 이긴다/어려운 일에 앞장선다/명예를 위해 산다/믿고 돕고 뭉친다/아끼고 따른다 라는 해병대 정신과 기풍을 늘어놓으며 정신교육을 시켰다. 하지만 대원들은 그런 훈시가 귀에 들어올리가 없었다. 꾸벅 꾸벅 조는 놈도 있었고 옆으로 비틀거리는 놈도 있었고 가끔 넘어지는 놈도 있었다.
"어쭈 이 새끼들 봐라.....적이 코 앞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마당에 졸고 있단 말이지? 니 놈들은 진정한 해병이 될려면 아직 멀었어..... 훈련중에 절대 졸지 말라고 귓구멍에 좆이 박히도록 떠벌렸건만....내 말이 말 같지 않다 이거지? 내 오늘 니놈들 귓구멍에 박힌 좆대가리를 빼줄테니 각오들 해라. 분대장! 저 새끼들을 향해 뿌려~~~~~!"
분대장은 군인이었다. 동기들을 향해 물 고문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군대에서는 대꾸가 필요 없고 좆으로 밤송이를 까라하면 까야하는 곳이었기에 떨리는 손으로 물을 퍼내 동기들을 향해 뿌리기 시작했다.
-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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