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병의 실록(5)]사나이 눈물
"이 시폴넘들이 척하면 삼척이고 푸~욱하면 똥치년 아랫도리 뚫리는 소리이지 뭘 멀뚱멀뚱 거리고 있서 새끼들아.....야밤에 건빵 쳐 먹은 놈 나와"
정복은 교관의 "보급식품"이란 말에 가슴이 뜨금했다. 보급식품란 건빵이 분명할 터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명하지 않은 일 가지고 무조건 나요! 하고 자신 납세할 순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 말고도 누구나 몰래 먹을 수 있는 것이고 종섭이도 먹지 않았던가. 그리고 자신은 "해병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라는 완전범죄(?)를 실천 했었기에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종복은 일단 사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부동자세를 한 무리는 요동이 없었다. 누구하나 나요!하고 총대를 메려는 놈이 없었다. 자진납세를 않자 교관의 입은 더욱 거칠어져갔다.
"이 씨폴넘들이 지금 나하고 장난하자는거야 뭐야? 씹새들 오늘 뒤지도록 터져볼텨? 좋은 말 할 때 납세해라이....안 나오면 니놈들 지침과업은 없다. 지금부터 열을 센다 열 셀 동안 한놈도 안 나오면 너그들은 죽었다 복창해라이"
"하낫!"
"둘!........."
"여덟!"
교관의 카운트 타운을 셀 동안 대원들의 얼굴은 납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서로 옆 사람들을 동태를 살피며 누군가가 빨리 납세해 줬음 하는 눈치였다. 종복의 마음도 숫자 하나가 더 얹혀질 때마다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혹시 나중에라도 알게되면 동기들에게 욕을 먹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역시 동기들의 눈빛은 애사롭지 않았다. 범인이 잡히면 금방이라도 때려 눕힐 눈빛들이었다.
"아아......호옵!"
대원들은 아홉이란 숫자가 교관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포기하듯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빵빠레에 소이동 동태잡이와 한강철교 선착순과 나이론 지침 드럼통 굴리기에 제트기 포복까지 기합이란 기합은 모두 받아들일 듯 포기하고 있었다. 소대장은 월드컵 경기 때의 레드카드를 뽑아드는 주심처럼 마지막 한 숫자를 뱉어내며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여어~~~~어......ㄹ!"
마지막 숫자가 땅으로 떨어지기 전에 칼 같이 정돈된 대오를 이탈하는 이가 하나 있었다. 모두들 그가 누구일까 쳐다봤다. 정복도 그러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복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떡 벌어진 어깨에, 각지면서도 언제나 듬직해 보이는 등, 고된 훈련속에서도 불침번도 대신 써 주고 구보 훈련 중 낙오하는 동기의 총기도 들어 주는 그는 분명 종섭이가 틀림없다.
과오에서 튀어 나온 종섭을 향해 교관은 말 보다 주먹을 먼저 앞 세웠다. 이단 옆 차기에 체력으로 다져진 무쇠팔 세례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매질을 동원하며 종섭의 몸에 응징했다. 종섭의 몸이 한 여름의 소부랄처럼 늘어지자 교관의 기합은 종을 쳤다.
종섭을 부축하여 내무실로 들어온 정복은 우선 침구 위에 눕혔다. 그리고 맞은 부위를 살폈다. 종섭의 몸은 몸이 아니었다. 뻐굼한 구석하나 없이 온통 멍 투성이었다. 약이라도 발라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교관의 호출을 받고 갔다온 녀석이 종섭에게 치료해 주라더라며 안티프라민을 내 밀었다. 그는 종섭의 멍자욱들을 보자 "시팔...병주고 약주네" 라며 투덜거렸다.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가 지침 과업에 임하는 동안 정복은 종섭의 옆에 앉아 있었다.
"바보같이 끝까지 모른다고 하지 왜 나갔어? "
정복은 고통을 참으면서 끙끙 앓고 있는 종섭이를 나무랐다. 그 때 자는 줄만 알았던 한 놈이 벌떡 일어나며
"야 새끼야...너 아직도 모르겠어? 종섭이 이새끼는 건빵같은 것은 먹지도 않았어 새꺄. 니가 하도 비실데니까 위험을 부릎쓰고 긴빠이 해다가 너한테만 바친건데.......널 대신해 뒤 집어 써줬는데......쳐 먹을려면 제대로 쳐 먹든가 해병대가 흘리기나하고.....에이 시팔....동기가 뭔지"
정복은 갑자기 정신이 멍해져 옴을 느꼈다. 철봉하다 뒤로 떨어져 하늘이 노래보이는 느낌.....생각도 감정도 판단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어버린 두뇌 같은 느낌...초등학교 2학년 수업 중 멀쩡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물도 흘리지 못했던 바로 그 멍한 상태를 정복은 맛 보고 있었다.
"넌 어제 총기 떨어뜨렸다고 죽도록 터졌잖아....몸도 약하고......두 번 까무러치게 할 순 없었어...그리고 난 이렇게 맷집이 있잖아...봐..."
누운채 두 팔을 벌려 이두박근을 보이는 종섭의 얼굴 위에 정복의 눈물 한 방울이 뚜~~~~~~욱! 떨어지고 있었다.
-5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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