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병의 실록(7)]독사같은 교관과의 이별
어머니 은혜로 한바탕 눈물 바다를 이룬 후 2주가 흘러갔다. 기초 군사 훈련 즉 6주간의 전반기 신병 교육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메마랐던 훈병들의 가슴에는 겨울을 이겨낸 새싹처럼 생기가 돋기 시작했다. 포항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누겠다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훈병들도 포항 하늘이 새롭게 보였고 포항의 “포”자만 들어도 경끼 하던 것도 내 언제 그랬냐는 듯 포항 아가씨 어쩌고저쩌고를 떠벌렸다.
정복은 훈련소 생활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것 3가지를 꼽으라면 배고픔을 첫째로 꼽고 싶었다. 그리고 두 번 째로는 잠이 모자라는 것 세번째는 화장실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첫째로 꼽힌 배고품...훈련의 일종이라 하지만 한창 먹을 나이에 식사 시간10초를 주는 것은 사실 심하단 생각을 정복은 했었다. 교관의 “식사 시작!”이라는 명령과 동시에 “나는 가장 강하고 멋지고 질긴 해병이 되겠습니다. 악! 감사히 먹겠습니다” 을 외친 훈병들은 오른손에 숫가락을 쥠과 동시에 왼 손가락을 이용하여 밥을 퍼 국에 만 다음 씹지도 않고 입으로 퍼 넣기 바빴었다.
반찬으로 나오는 고추 가루 몇개 붙은 깍두기와 색바랜 다깡(단무지)은 먹을 엄두도 못낼 정도였다. 국에 만 밥을 반을 퍼 넣었나 싶을 즈음이면 어김없이 “식사 끄읏!” 명령이 떨어지고 그 명령과 동시에 훈병들은 숫가락을 놓아야만 했다. 게 중 한 둘은 교관의 눈을 피해 짠밥 통에 버려진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다 들켜 뒈지도록 얻어터지기도 했다. 하지만 얻어터지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짠밥통을 뒤질 수 밖에 없는 배고품이었다. 오직했으면 퇴소식 끝나자마자 PX로 선착순 하여 빵을 쌓아놓고 배 터지도록 먹었겠는가.
몸서리치도록 괴로웠던 6주가 대 연병장에서 퇴소식 하는 것으로 끝나가고 있었다. 퇴소식 하는 날의 하늘은 꽤나 맑고 화창했다. 언제나 골난 시어머니 상을 하던 포항 하늘이 그렇게 맑고 화창 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여러분들은 오늘 진정한 해병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동안 최강 해병으로 태어나느라 많이 힘들었을 줄 압니다만 해병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이곳 생활이 결코 헛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계 어디에 내 놔도 꿀릴게 없는 군인입니다. 최강으로 평가받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을 받았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필승의 훈련으로 단련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뼈를 깎는 아픔이 뒤 따랐지만 지나고 나면 다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작은 상처는 오래 기억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린다고 합니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빛이라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빛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을 그렇게 계산 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곳에서 받은 작은 상처는 잊어 버리셔야 합니다.
작은 상처는 빨리 잊어버리고 큰 은혜...즉 훌륭한 해병의 긍지를 보상 받았다 계산하셔야 합니다. 이곳은 많은 선배 해병들이 최강 해병 ,강인한 해병,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해병으로 태어난 곳입니다. 그리고 그 선배들을 이어 여러분도 그런 해병으로 태어 났습니다. 여러분도......이제껏 만들어진 선배 해병처럼 최강해병 강인한 해병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해병이 될 것을 믿으며 이것으로 퇴소식 인사를 가늠할까 합니다“
신병훈련 대대장의 인사를 끝으로 모든 일정을 마친 정복의 동기들은 춥지도 배고프지도 졸립지도 않았다. 피 교육자에서의 전역. 그것은 달콤한 사탕과도 같은 것이었고 병과 배정을 받으면 곧장 집으로 2박 3일간의 휴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후방기 교육과 실무 배정.....본격적인 군 생활이 호랑이 아가리처럼 대기하고 있었지만 훈병들은 그저 훈련이 끝난 것만이라도 즐겁고 기쁜일이었다.
피엑스에서 빵을 열 몇 개나 쌓아 놓고 배 터지도록 구겨 넣은 정복과 동기들은 병과 배정을 받기 위해 연병장에 집합했다. 병과 배정 발표 시간은 대학 입시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훈병들에겐 중요한 시간이었다.
정복은 속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보병보다는 차라리 기합이 빡신 운전병과나 골치 아픈 주파수를 외워야 하는 통신병이 되었으면 싶었다.
연병장에는 한 무리씩 병과별로 나뉘어져갔고 다 나뉘어진 병과는 그 병과 스케줄에 맞춰 집으로 또는 훈련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얀 바탕에 녹색 줄이 그려진 철모를 쓴 교관은 떠나가는 새끼들(훈병들)을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그 미소를 본 정복은 저런 독사 같은 사람에게도 저런 미소가 있었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훈련 받을 때 그렇게 지독하던 사람들이 떠날 때가 되자 아버지처럼...큰 형님처럼 온화한 얼굴을 하고 새끼들에게 격려의 말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눔들아 이 소대장이 너그들 미워서 그렇게 힘들게 했겠냐? 다 너그들 잘 되라고 그런거지. 남자는 말이다. 맞을 때 맞고 잊을 때 잊고 훈련받을 때 훈련 받고 놀 때 후회 없이 놀아야 하는 거야.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윗사람 눈치나 보고 어떻게하면 빠져 나갈까 요령 부리는거....그거 사회 나가도 절대 성공 못할 버릇이다. 난 너희들에게 그런 걸 가르치고 싶었다. 실무에 가서라도 내 말 명심하고 군대생활 열심히.....후회없이 마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너희들 많이 고롭혔지만 고롭힌 만큼 그래도 너희들 보고 싶을 꺼다 잘들 가라”
소대장에게 마지막 경례를 붙인 훈병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힘든 훈련시킬 때는 때려 죽이고 싶었지만 막상 끝나고 헤어지려니 미운정 고운정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훈병들을 싣고 갈 차량이 도착하자 훈병들은 차에 오르기 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대장 주위에 몰려와서 하늘 높이 던져 올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정복은 몇 해 전 애인 애경이와 본 영화 리차드기어 주연의 “사관과 신사”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 속 주인공 리차드 기어는 장교 피교육자였고 교관의 계급은 상사였었다. 훈련을 시킬 때는 이놈 저놈 때려죽일 놈 하며 괴롭히다가도 막상 교육을 수료하고 소위 계급을 달 때는 거수경례를 붙여 주며 예를 갖추는 교관.......바로 그 장면 생각이 났었다. 정복의 눈엔 어느새 눈물 한방울이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정복의 병과는 바램대로 17-1이었다. 체력이 약한 정복으로써는 천만 다행이었다. 큰 형님 같은 소대장과의 이별을 뒤로하고 집으로 2박3일의 휴가를 떠나는 정복의 머리엔 오로지 보고 싶은 어머니와 애인 애경 생각 뿐이었다.
-7부 끝-
출처 : 해병대인터넷전우회, 518기 전종권 후배님 http://www.rokmc.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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