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병의 실록(6)]화장실 사건과 이상한 군가
힘든 훈련소 생활을 동기 종섭의 동기애로 극복해가던 정복에게 한달이라는 복무기간이 흘러갈 무렵이었다.
그날은 해상에서 LVT를 타고 육지로 상륙훈련을 한 날이었고 LVT에 오르기 전 쪼그려 뛰기를 포함한 PT체조를 신물 나도록 실시하던 날이었다.
“상륙훈련 받느라 수고했어. 오늘은 근무자 외 모든 대원들 지침과업을 실시하도록..알았나?.”
그날따라 교관의 순검은 수월했다. 모두들 “빵빠레를 시킬 징조야 속지마!”라며 반신반의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래도 정복은 교관을 믿고 싶었다. 춥고 배고프고 졸리운 훈련소 생활에 체력이 고갈되가는 중이었던지라 교관의 말을 믿고 아침 해가 연병장을 지질 때까지 푹 자고 싶었다. 꿈속으로의 길은 수월한 순검 만큼 따뜻하고 포근했다. 하지만 해병대의 앞날은 며느리도 시어머니도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지막 동초 근무교대 하는 새벽4시경이었다.
2중대 총 기상 병사 떠나 5분~~저~~~언!”
보통 빵빠레 시간은 새벽2시 전에 시키는 것이 관례였다. 또 지침 전 반신 반의하는 대원들이 있긴했지만 분명 빵빠레가 없을꺼라 교관이 말했었기에 새벽 4시의 기상은 아닌 밤 중에 홍두깨였다. 좋지 않은 징조가 뱀처럼 정복의 몸을 칭칭 감았다. 교관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휘봉으로 손 바닥을 툭툭 두들기며 사열대 위에서 시계 추처럼 왔다 갔다를 반복하다 짧고 명료하게 입을 열었다.
“어떤 놈이야?”
대부분의 교관들은 앞 뒤 말을 자르고 윽박지르는 것이 특기인 모양이었다. 무슨일이....이러 이러한데 죽을래 살래? 라던가 이러 이러한 일이 어떻게 잘못되었는데 죽었다 복창할래 말래?...같은 최소한 상대방이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한 다음 고문을 하던가 말던가 해야 할 텐데 교관들은 남이야 알아 듣든 말든 도마뱀 꼬리 자르듯 부연 설명을 생략하고 대원들을 윽박지르곤 했다.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 걸이인 아주 편리한 저들의 작태에 정복은 거부감 마저 들었다.
“눈빛만 봐도 무슨 뜻인지 파악 못하는 꼴통 새끼들....야 이 새끼들아 아무리 해병대 역사가 밤에 이뤄진다고 해도 어떻게 교관만이 사용하는 화장실에 훈병 새끼가 똥을 싸 지를 수가 있어? 니 놈들이 훈병이야? 니 놈들 눈엔 교관이 개 좆같이 보이냐? 천하에 기압빠진 새끼들”
교관의 화는 상상 이상이었다. 악질 교관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야간 훈련은 30분 정도하고 지침을 시키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은 그렇지가 않았다. 내무실 복도에 비치된 시계 소리가 새벽 5시가 넘어가고 6시를 울려도 교관의 기합 주기는 멈추지 않았다.
PT 체조와 꼴아박아, 소이동과 한강철교는 보너스에 불과했다. 정복은 낮은 포복으로 선착순을 시키는데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낮 시간에 녹아 만들어진 워카 발자국이 밤이 되면서 얼어 유리조각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교관은 훈병들의 고통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범인이 나타날때까지 기합의 강도를 높여갔다.
“이래도 안 나온다 이 말이지? 독종 새끼들...천하에 기압빠진 좆 같은 새끼들....어디 끝까지 해보자 니놈들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교관도 훈병도 모두 지쳐갔다. 추위에 지쳐가고 졸음에 지쳐가고 수 많은 기합에 지쳐가고 속고 속이는데 지쳐갔다. 숨이 끊길것 같은 통증에 지쳐가고 고향에 계시는 보고 싶은 어머니와 가족 생각에 지쳐갔다. 입은 마르고 배는 고프고....물은 먹고 싶고 소변은 마렵고....대원들은 하나 둘씩 옆 동기들을 원망했다. 똥 싸질러 놓고 다른 동기들을 힘들게하는 대원을 원망했다.
교관은 기압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훈병들의 군화(워카)를 벗기고 옷도 벗기고 사람의 체온을 받지 못하게 오와 열도 넓혔다. 드넓은 연병장엔 한 줄기 바람이 대원들의 살을 베고 지나갔다. 겨울 바다의 정기를 먹은 바람은 정복의 가슴을 얼어붙게 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제발 자수했으면.....정복은 떨리는 가슴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래도 나오지 않으면 자신이라도 거짓 자백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바램은 늘 정복을 외면했고 실천은 늘 먼데 있었다..
교관은 맨발로 PT 체조를 명령했다. 얼어 붙은 군화 발자국 위에서의 PT 체조는 작두 위를 걷는 느낌일꺼라 정복은 생각했다. 10... 20....30......40..적은 숫자에 큰 숫자가 더해져 가자 추위는 조금 가시는 것 같았지만 발 바닥은 말이 아니었다.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았고 마취를 생략한 치과 치료를 받는 느낌이었다. 여기 저기서 탄식과 함께 쓰러져가는 훈병들이 생겨났다. 그들의 입에선 살기를 띈 욕설이 튀어 나왔다.
“시폴넘....언 놈인지 모르지만 내 손에 잡히기만 해 봐 똥구멍을 화악 찢어버릴텡께”
동기들의 살기 띤 원망이 하늘을 찔러가고 훈병의 5분의1일 쓰러져 가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훈병 한명이 교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자수한 훈병을 본 교관은 손이 움직이는데로 몸이 날아가는데로 범인을 향해 무차별 폭격했다. 범인은 굵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교관의 발길질에 비명 한번 지르지 못했다. 그리고 짓이겨진 파리처럼 목이 졸려 죽어가는 개처럼 최후의 살떨림을 했다.
교관으로부터 몰매를 맞은 훈병은 교관에 명령에 의해 실내 화장실로 끌려갔다. 끌려가서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정복은 들려오는 고성 소리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금방 알아 차릴 수 있었다.
“네 놈이 싸 질러 놓은 똥이니까 네 놈 혓바닥으로 치워 새꺄”
어둠을 뚫고 타 오르는 붉은 기운이 연병장을 가로질러 올 때 실내 화장실에서 나온 교관은 졸음과 배고픔과 추위에 그로기 상태가 된 훈병들을 향해 어깨 동무를 지시했다.
“오늘 네 놈들은 저 두 놈의 동기 때문에 미치고 환장할 기합을 받았다. 저 두 놈을 갈기 갈기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총기가 없고 허연 동공에는 핏줄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는 네 놈들 눈깔에 살아있는 광채가 생기게도 했다. 난 지금의 네 놈들 눈빛이 좋다. 살아있는 네 놈들 눈빛이 좋다. 하지만 지금 네 놈들 가슴은 아직 차다. 네 놈들 가슴은 너무 차다. 저 두 동기놈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 때 까지, 옆에 있는 동기 놈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을 때까지 네 놈들 가슴을 데펴 주겠다. 전부 뒤로 지침!”
뒤로 지침이란 명령에 훈병들은 예리한 칼로 목을 깊숙이 찔린 도살장의 돼지처럼 최후의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질렀다.
“씨팔! 어지간히도 지랄하네”
하지만 그 소리는 교관의 다음과 같은 명령에 파 묻혀 버렸다.
“그 동작에서 군가한다. 군가는 어머니의 마음....목소리 적은 놈은 뒤질 각오해라. 군가 시작 헛/둘/셋/넷..”
♬나 실제 괴~~로우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 낮으로 애 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 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연병장엔 뒤로 갈수록 울음소리로 변하는 군가가 울려 퍼졌고 끝까지 부르는 대원은 아무도 없었다. 또 목소리 작다고 기합을 주는 이도 없었다.
-6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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