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병의 실록(3)]뜻밖의 사고
빵빠레 훈련은 이틀에 한번 꼴로 실시되었다. 이틀에 한번 꼴이라곤 하지만 사실은 사흘에 한번 할 때도 있었고 연 이틀 할 때도 있어 언제 어느 날에 할지 몰라 늘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미리 매 맞으면 편하듯 불안에 떠는 것보다 차라리 빵빠레를 받고 지침 하는 게 훨씬 편했다. 수면 신경이 예민한 정복이도 그러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음날도 훈련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정복에게는 어젯밤 이루지 못한 수면 부족 때문에 온 몸이 찌뿌둥했다. 하지만 군발이가 몸 안 좋다고 훈련을 거부 할 순 없는 일이었다. 병기를 휴대하고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군인으로써 기본이라할 수 있는 총검술 중에 어젯밤의 수면 부족으로 졸다가 있어서는 안 될, 있을 수도 없는 총기를 떨어뜨리는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교관 몰래 얼른 주워 없었던 일로 하려했지만 눈치 빠른 교관은 그걸 허락지 않았다.
"너 이 씹새끼 일루 나와"
교관은 연병장 한가운데 정복을 꼴아박아 놓고 우두둑 우두둑 손마디를 꺾었다. 그 모습을 보자 등골이 오싹해 왔다. 며칠전 동기 중 한 명이 교관으로부터 저런 예비 동작을 받은 후 호된 기합 받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터였기에 공포처럼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것인지도 몰랐다. 정복은 그런 교관이 오직 때리기 위해 조립된 기계처럼 느껴졌다. 목을 빙글빙글 돌려 사전 준비운동을 마친 교관은 기압 줄 명분을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야 좆같은 새끼야 총기는 군인에게 있어 생명 줄이란 이야기 했어 안 했어? 니 놈에게는 작은 실수이겠지만 작은 실수 하나가 옆 전우의 생명을 앗아가고 소대 전체를 몰살시키며 나아가서는 나라를 말아먹는다고 귓구멍에 좆이 박히도록 이야기했건만 내 말을 홍어 좆으로 들었나 왜 총기를 떨어뜨리고 지랄이야...천하에 고문관 새끼!"
"아악!"
교관은 정복의 옆구리를 번개처럼 빠른 동작으로 걷어찼다. 정복의 몸뚱아린 바람 앞의 낙엽처럼 두어 뼘 떨어져 연병장 한가운데로 굴렀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은 통증을 느꼈지만 다시 원위치 했다.
원위치가 되자 교관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한번 전투화를 휘날리며 옆구리를 걷어찼다. 정복은 또 다시 나 뒹굴었다. 뱃속의 창자란 창자는 모두 뒤틀리는 듯 통증이 온몸으로 엄습해왔다. 다시 원위치 하려고 비틀거리며 일어서자 교관은 또 다시 카운터 펀치를 정복의 복부를 향해 날렸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왔다.
"정복아 이게 무슨 날 벼락이냐...너 없이 어떻게 살라고 이 죄 많은 어미를 두고 먼저 간단 말이냐? 정복아....정복아..."
어머니의 통곡은 계속 이어졌다.
"제대하면 맛깔 나게 살아 보려 모진 가시밭길 헤쳐 왔건만....꽃방석 깔아줘도 가지 않을 20년 세월을 너만 바라보며 살아왔건만...너 없으면 넋새가 되어 내가 울고 갈 세월인데...사무친 원한이 아직도 앞산인데 이제 누굴 의지하며 살아간단 말이더냐... 박정하신 하늘님은 저승꽃 군데군데 핀 이 늙은이를 데불고 가지 않고....왜 생떼 같은 자식 데불고 가노..왜 생떼 같은 내 자식을 훔쳐 가노...내 자식 살려내라...내 알토란같은 살점 살려내라...정복아....정복아...."
정복이는 그런 어머니의 슬픔을 다 느낄 수 있었다. 얼굴을 매만지며 살리려고 발버둥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느낌 뿐 눈으로 볼 수는 없었다. 눈을 떠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아 있다는 걸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은 맘처럼 쉽게 움직여 주질 않았다. 몸도 신경도 움직여 주질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어머니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아들의 가슴팍을 두들기며 계속 통곡했다. 때리기만 하면 죽었던 아들이 살아나기라도 하 듯 얼굴 가슴 심장 할 것 없이 마구 흔들며 통곡했다. 정복은 그런 어머니가 불쌍했다. 하루도 빤할 날 없이 자식 걱정만 하시는 어머니, 이제는 맘 편히 사셔야 할 연세인데 군대 와서까지 걱정 끼쳐 드리는 자신이 한 없이 원망스러웠다. 정복은 그런 어머니를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살아 있다는 것만이라도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턱밑에 막혔던 구멍을 열었다. 가슴의 심장도 두들겼다. 하지만 먹혔던 숨은 맘처럼 쉽게 열리지 않았고 심장도 쉽게 움직여 주질 않았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다시 한번 턱 밑에 힘을 모았다. 그리고 자신속에 남은 모든 영양분을 혈관을 통해 내 뱉기 시작했다.
"후~~~~~~~훅!"
정복은 초점을 잃은 눈을 살며시 떴다. 어머니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어머니는 파란색 하늘을 머리에 이고 국방색 퍼런 바지를 아랫도리에 걸치고 있었다. 많은 친지들도 정복을 중심으로 기쁜 마음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뻤다. 어머니를 다시 볼 수 있어 기뻤고 어머니에게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어서도 기뻤다. 고향집 안방에 온것같아서도 기뻤고 평소 내왕도 없던 친지들이 관심을 가져줘서도 기뻤다. 그런데 이상했다. 왜 가족들이 사복을 입지 않고 군복을 입었을까 의아했다. 차가운 바람이 흐릿한 눈꺼풀을 몰아내자 사람들의 모습들이 또렷해져왔다. 그 때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정복의 정신을 깨웠다.
"이 기압 빠진 새끼..... 해병대가 가슴 몇 방 얻어 맞았다고 기절을 해? 어이 분대장 이 새끼 심폐소생술 좀 더 시키고 내무실에 데려가 눕혀....어휴~~~! 십년감수하는 줄 알았네"
-3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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