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越南戰 - 30고지를 사수한 9중대 용사들

머린코341(mc341) 2016. 8. 28. 03:48

越南戰 - 30고지를 사수한 9중대 용사들

 
  용안작전 기간 중(66.11.20) 김윤형 대위가 지휘하는 3대대 9중대의 2개 소대(약 60명)는 그 10배가 넘는 압도적인 병력으로 푸옥록촌 뒷 고지인 30고지를 기습 공격한 적군과 사투를 벌인 끝에 확인사살 94명이란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는데, 이 전투는 3대대 11중대의 짜빈동 대첩에 가려져 제대로 그 빛을 발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월남전 사상 길이 빛날 승전으로 기억될 것이며, 따라서 본서에서는 전사에 기록된 내용을 중심으로 해서 초인적인 감투정신을 빛낸 9중대 장병들의 승전고를 재조명해 보기로 한다.

 
  그 날 1대대와 임무교대를 하기 위해 푸옥록마을 뒤편의 30고지에서 야간 방어를 하고 있던 9중대가 적의 기습공격을 받은 시각은 20일 새벽 4시경이었고, 공격에 투입이 된 적군은 수 문의 기관총과 자동화기로 무장한 수백 명의 월맹군과 지방게릴라의 혼성병력이었다.

 
  그 전날 밤 10시경부터 내려 퍼붓던 억수같은 비가 그친 뒤 희미하게 나타난 초승달이 서산마루로 넘어간 직후 돌연 압도적인 병력이 3면에서 포위공격을 감행하자 견고하게 구축되지 못한 9중대의 임시진지는 순식간에 위기에 직면하고 말았다.

 
  더구나 9중대는 대대본부(3대대) 방어를 위해 2소대를 떼놓고 왔기 때문에 그만큼 병력이 부족한 상태였다. 적의 주공은 전창우 중위가 지휘하는 우일선의 제3소대 정면이었으나 아군진지를 교란하고 주공방향을 기만하기 위해 그들은 좌일선의 1소대 정면에 조공부대를 먼저 투입했다.

 
  1소대장 김원식 소위가 새벽 3시40분경 순찰을 돌고 난 직후 느닷없이 조명지뢰 한 개가 터졌는데 이 때 그 불빛 속에 개미떼 같이 몰려오고 있는 적병들의 모습이 목격되었고, 언제 올라간 건지 전방의 나뭇가지 위에도 적병들이 보였다.

 
  이 때 오징어단지 같은 개인호 속에 들어 앉아 있던 포병관측장교 김세창 중위는 적이 전방에서 뿐 아니라 동남방 산기슭 쪽 후방에서도 기관총을 발사하고 있는 것을 알고 그 기관총을 침묵시키기 위해 즉시 화집점(火集点) 101에 중대1발을 때려 줄 것을 포대에 요청했는데, 그 화집점은 이틀 전 주간정찰을 통해 적의 예상접근로 일대에 구성해 놓은 9개 화집점 중의 하나였다.

 
  한편 화집점 101의 적 기관총이 침묵을 당한 사이 전방에서 몰려오고 있던 적병들 중에는 “따이한 타이꾸룩진(한국해병대 오라)”하며 소리치는 자들이 있었고, 그런 소리에 섞여 간혹 호각소리가 들렸는데, 호각소리가 난 다음에는 적의 박격포탄이나 수류탄이 날아와 폭발했다.

 
  적이 돌격거리 내로 접근해 오자 포병관측장교 김세창 중위는 포탄을 적 공격부대의 후미진 쪽부터 때려 들어오게 유도함으로써 적의 후속부대를 차단하고 공격부대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고, 어두운 밤하늘엔 아군 포대에서 발사한 대형 조명탄이 쉴 새 없이 명멸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던 한 순간 9중대의 81밀리 박격포진지에서는 수거하지 않은 판초가 조명탄의 섬광에 반사되는 바람에 그것이 표적이 되어 적병들의 방망이수류탄이 집중되어 사수 부사수 및 탄약수가 몰살당하는 참변이 빚어졌다.

 
  인해전을 구사한 적은 투입된 병력이 쓰러지자 계속 새로운 병력을 투입함으로써 중과부적한 아군 진지에서는 처절한 백병전이 벌어졌고, 그러한 상황 속에 우일선 진지의 일각을 돌파한 적병들은 공동묘지의 비석을 방패삼아 계속 약진을 해오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최후의 일각 최후의 일병까지 싸울 결심을 하고 있던 중대장 김윤형 대위는 “진지를 사수하라!” “후퇴하면 전멸한다!” “30분만 견디면 날이 샌다!”하며 다그쳤고, 소대장과 분대장들이 그 소리를 되받아 외침으로써 사투를 계속하고 있는 대원들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기어코 날이 샐 때까지 진지를 사수했으니 실로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승전이 아닐 수 없었다.

 
  약 2시간에 걸친 혈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뛰어난 전공을 세웠던 용사들은 분대장이 부상을 당하자 분대장의 유탄 발사기로 계속 적을 공격한 3소대 1분대의 김명환 해병과 머리에 적탄을 맞고서도 적과 육탄전을 벌인 1소대 1분대장 최동인 하사를 비롯하여, 대대본부 선임하사관으로 전속발령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9중대에 남아 중대본부 요원들로 특공대를 조직하여 응전분투 했을 뿐 아니라 중대장에게 돌격명령을 내리게 하여 적을 추격했던 9중대 선임하사관 이영구 상사와 육박전에서 초인적인 용맹을 과시했던 3소대 2분대의 김영수 해병, 그리고 또 한사람 아비규환의 생지옥 속에서도 무전기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끝까지 무전기를 안고 뒹굴면서 전술망의 통신기능을 유지했던 9중대 작전하사 이용규 하사 등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2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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