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越南戰 - 푸옥록 고지와 짜빈동 전투에서 용명떨친 포병관측장교 김세창 중위

머린코341(mc341) 2016. 8. 28. 03:49

越南戰 - 푸옥록 고지와 짜빈동 전투에서 용명떨친 포병관측장교 김세창 중위
 

  월남전에 참전했던 청룡부대 포병대대(해포대) 소속 FO(관측장교)들 가운데 푸옥록고지(30고지)전투 때는 3대대 9중대, 짜빈동기습방어전 때는 11중대에 파견되어 관측임무를 수행한 김세창 중위(해포대 7중대 소속)만큼 용감성을 발휘했고, 또 무운도 따른 포병장교는 드물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세창 중위가 치른 푸옥록의 30고지 전투와 짜빈동기습방어전은 청룡부대가 월남전에서 수행한 수많은 전투 중 가장 큰 전과를 거둔 전투라는 사실이 입증하듯 그 전투 때 청룡부대의 유일한 화력지원부대인 해포대의 FO로서 최선을 다했던 김 중위의 공적도 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3대대 9중대가 이 고지를 방어하게 되었을 때 포병관측장교인 김세창 중위(해간33기)는 위험을 무릅쓴 철저한 지형정찰을 통해 화집점(火集点)을 구성하기 위한 적군의 예상접근로를 파악한 다음 상황도 상에 9개의 화집점 번호(101~109)를 적어 무전기로 대대본부에 보고하여 유사시에 대비했고, 야음을 타고 적의 주공(主攻)이 빽빽한 관목이 우거진 협곡으로 침투하는 가운데 9중대를 포위 공격하자 즉각 이미 구성해 놓은 화집점의 번호를 대며 포대에 ‘포격사(砲擊射)’를 요청함으로써 아군의 조명탄 불빛 속에 노출된 베트콩들에게 불벼락을 안겨 보병들의 필사적인 방어전투를 지원했다고 하는데 당시의 일을 돌이켜 보며 김세창씨는 특히 자신이 산병호 속에 들어가 있지 않고 계속 진전으로 기동하고 있을 때 통신망을 통해 FO의 위치를 확인한 대대장이갑석 중령이 “귀관이 한발자욱 전진하게 되면 귀관을 보호하기 위해 귀관의 앞과 뒤쪽에 포탄을 날려 보내겠으니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시오”하며 격려를 해 준 그 말을 듣고 제갈공명과도 같은 지휘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한편 동이 터서 적이 퇴각을 할 때 김세창 중위는 청룡부대 소속 정찰기(L-19) 한 대가 저공비행으로 푸옥록고지 쪽으로 날아오기에 즉시 무전기의 주파수가 맞추어진 동기생 조종사 최석균 중위에게 “위험하니 빨리 올라가라”고 소리쳤더니 최 중위는 기체를 상승시키면서 “고무농원으로 많은 베트콩이 달아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적이 완전히 퇴각한 후 무심코 그 전날(주간) 파놓았던 자신의 네모꼴 산병호로 가본 김세창 중위는 그 산병호 안에 6개의 중공제 방망이 수류탄이 폭발하지 않은 채 뒹굴고 있는 것을 보고 아찔한 놀라움과 함께 필시 하늘이 나를 도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3개월 후 짜빈동전투를 치르게 되었던 김세창 중위는 동이 터서 적이 퇴각을 할 때 81밀리 빅격포진지가 있는 약간 높은 곳(2소대진지)에서 나는 총소리를 듣고 교통호를 따라 기어가 다소곳이 고개를 쳐드는 순간 머리에 저격을 당해 마치 야구방망이에 가격을 당한 충격을 느끼며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고 하는데 결국 철모와 내피(화이바)를 뚫고 머리를 다치게 한 그 납작한 총알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머리에 박히지 않고 화이바와 철모 사이에 끼어 있어 20일 간의 입원만으로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했던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다고 하니 무운을 타고난 사람이란 말을 들을만도 했을 것이다.

 
  이 지면에 게재된 사진이 그 당시 김세창씨가 쓰고 있었던 철모이며 화살표가 총알이 뚫고 들어간 흔적이다.


  그리고 겉봉에는 군우 151-501(주월청룡부대) 뒷면에는 군우209(해병제일상륙사단)가 표기된 군사우편은 김세창 중위의 부상소식을 전해 들은 해간33기 동기생 문대권 중위(해병제1사단 해안대대)가 청룡부대 의무중대에 입원해 있는 김세창 중위에게 보낸 서신이며, 훈훈한 동기애가 담긴 그 서신에는 쾌유와 개선의 날을 학수고대한다는 내용과 포항시내에 가서 아가씨(安子)를 만났다는 얘기도 곁들여져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월남전에서 김세창씨(1941년 충북 괴산군 청원면에서 출생)는 포병장교로는 드물게 충무훈장과 화랑훈장을 탄 수훈의 장교로 알려져 있으며, 서울대에서 농생물학을 전공한 데 이어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했던 그는 69년 대위의 계급으로 예편한 후 약 33년 간 한성고등학교와 인덕공고 및 연암대・인덕대학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다가 2000년 정년퇴직을 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2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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