越南戰 - 짜빈동 진지를 사수한 11중대 3소대 1분대 용사들
67년 2월 14일 밤부터 15일 아침 사이에 벌어졌던 그 짜빈동기습방어전, 3대대 11중대 장병들이 120밀리포 등 각종 포의 맹렬한 지원사격 하에 감행한 월맹군 대부대(1개 연대)의 기습공격을 격퇴시켜 혁혁한 전과를 거둠으로써 월남전 사상 유례없는 대첩을 거둔 그 짜빈동전투 때 가장 처절한 백병전이 벌어졌던 곳은 적의 주공(主攻)이 지향된 3소대 1분대 진지였으며, 적군의 강력한 충격으로 그 1분대 진지가 돌파당한 시각은 새벽 4시 40분경이었다.
한편 적이 진내로 쇄도하자 1분대장 배장춘 하사(155기)는 “육박전이다”하고 소리치기가 무섭게 손에 든 칼빈 M2를 휘두르며 돌진해 오는 수 명의 적병들을 닥치는대로 쓰러뜨리다가 끝내는 어깨와 팔과 다리에 중상을 입고 2소대 진지쪽으로 밀려났고, 1조장 이학현 상병은 목통이 터질 듯한 목소리로 “자기 진지는 자기의 무덤이다.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라!”고 외치며 난입해 오는 적에게 사격을 가하다가 수 명의 적이 약 20미터 전방의 똥통 속으로 뛰어 들자 질풍 같이 달려가 그 똥통 속에 수류탄을 집어 던져 그 적병들을 해치우고 말았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오른쪽 발목에 총상을 입고 주저앉게 되었던 그는 유혈이 낭자한 몸으로 소총에 실탄을 장진하여 옆에 있는 도성룡 일병에게 건네 주며 “적을 사살하라!”고 소리쳤고, 기력이 쇠진하여 더 이상 몸을 가누기가 어렵게 되자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지 이를 악물고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분대원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 처절한 교통호의 일각에서 그가 지니고 있던 마지막 한 발의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아 들고 쇄도해 오는 적병들을 와락 끌어 안으며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한편 전투가 끝난 뒤 이학현 상병의 이런 무용담과 최후를 전해 들은 여단장 김연상 장군은 고인에게 추서할 태극무공훈장을 내신하라고 지시했고, 또 진중에서는 그를 군신(軍神)으로 받들자는 여론도 있었으나 흘지훈장이 추서되었을 뿐 그러한 여론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본서의 제1권에는 ‘원문고개의 군신’이란 표제하에 고종석 해병에 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불굴의 투혼을 발휘한 고종석 해병과 이학현 조장의 초인적인 용맹성과 장렬한 최후는 불멸의 신화를 상징하는 해병혼의 정화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이 날 밤 처절한 백병전을 벌이며 사투를 했던 1분대 대원들 중 어깨와 팔과 다리에 중상을 입고 쓰러진 분대장을 부축하여 2소대 진지쪽으로 옮겨간 분대원 이영복 일병을 제외한 전 분대원들 가운데 장렬한 최후를 마친 이학현 조장(상병)과 도성룡 조정남 조중대 김동재 해병 등 5명의 분대원은 최후의 일각까지 용전분투하다가 장렬한 최후를 마쳤고, 윤창호 전수철 김명덕 방기장 해병과 배장춘 부대장은 중상을 당해 후송되고 말았으니 전분대원이 사상을 당한 셈이었다.
그리고 1분대와 거의 같은 시각에 진지를 돌파당한 3소대 화기반 대원들도 1분대 대원들과 마찬가지로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며 1분대를 엄호하다가 경기관총 사수 김낙성 상병은 적탄에 맞아 전사를 했고, 그가 변을 당하자 부사수 이내수 일병이 사수를 대신해서 결사적으로 기관총을 붙들고 방아쇠를 당기다가 부상을 입고 쓰러지자 1번 탄약수 오종태 일병이 총신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겼고, 그가 부상을 당하자 2번 탄약수 송영섭 일병이 악착 같이 기관총을 붙들고 불을 뿜다가 끝내는 적탄에 맞아 장렬한 최후를 맞았으니 모두가 최후의 일각까지 불굴의 해병정신을 불사른 해병혼의 화신들이었다.
그리고 적군의 강렬한 주공이 지향된 1분대(11중대 3소대)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최후의 일각 최후의 일병까지 용전분투했던 1분대 대원들 중 분대장 배장춘 하사와 1조장 이학현 상병 및 조정남 일병 등 수훈의 3용사에게는 을지훈장이 수여(또는 추서)되었는데 동일한 작전에서 한(같은) 분대에 3개의 을지훈장이 주어진 상훈기록은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전무후무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편 94년 준위의 계급으로 예편했던 왕년의 3대대 11중대 3소대 1분대장 배장춘(裵莊春. 1944년 경남 진해에서 출생)씨는 예편 후 그가 현역에 있을 때부터 부인(반순희씨)이 경영해 왔던 음식점을 확장하여 약 10년 전 인천에 ‘명동보리밥’이란 옥호가 붙은 대형음식점을 개업하여 사업운을 타고난 성공적인 사업가라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는데, 150평 규모의 총본점과 가족이 경영하는 3개의 직영점 외에 서울과 경기지역에 30개의 명동보리밥 체인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2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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