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越南戰 - 짜빈동 진지 제2선 방어의 수훈자 신원배 장군

머린코341(mc341) 2016. 8. 28. 03:53

越南戰 - 짜빈동 진지 제2선 방어의 수훈자 신원배 장군

 
  짜빈동기습방어전 때 월맹군의 조공(助攻)이 지향된 11중대 1소대의 진지를 방어했던 신원배(申元培) 장군(해사20기)은 특히 월맹군의 주공이 지향된 3소대 1분대의 진지와 함께 돌파를 당한 1소대의 제2선 방어전에서 수립한 혁혁한 전공으로 태극무공훈장을 탄 용감한 지휘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 날 3소대 정면에 2개 대대의 주공부대를 투입할 때 아군진지를 포위했던 적의 강력한 조공부대는 신원배 소위가 지휘하는 11중대 1소대 진지를 동시에 공격함으로써 1소대의 3소대 지원을 견제하는 한편 아군장병들로 하여금 사면초가라는 절박한 상황의식 속에서 악전고투케 했는데 그 때 1소대는 소대장의 진두지휘 하에 결사적인 최후저지사격을 감행했으나 3소대 1분대와 거의 같은 시각에 일부 진지가 돌파를 당해 처절한 백병전이 전개되었고, 그러한 와중에 소대장 신원배 소위는 2분대장 이준재 하사와 함께 적의 화염방사기 사수들을 공격하여 2문의 소련제 화염방사기를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을 뿐 아니라 2선으로 후퇴한 뒤 아군의 결사적인 저지로 적의 공세가 주춤해진 06시경 1소대 진지 전방 약 100미터 지점의 바위 뒤에 10여 명의 적이 대전차 유탄포와 로켓포 등을 가지고 아군진지를 공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즉시 이를 노획하기 위해 소대 선임하사관 김용길 중사와 이진 병장, 통신병 조용구 상병과 함께 수류탄 6개씩으로 무장하여 그 바위쪽으로 접근, 그 적병들을 해치우고 3문의 유탄포를 노획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거둠으로써 특히 제2선 방어에서 세운 혁혁한 전공으로 태극무공훈장을 타게 되었던 것이며, 소대 선임하사관 김용길 중사는 을지훈장을 탔다.

 
  추라이지구에서 뛰어난 전공을 세우고 귀국한 뒤 69년 2차로 파월되어 중대장 근무를 마쳤던 신 장군은 그 후 89년 준장의 계급으로 승진할 때까지 해병학교 기초반중대장, 육대 졸업, 국방부장관 부관, 주미대사관 해병무관, 8연대장, 합참훈련과장 등을 역임했는데, 특히 그 기간 중 자신의 주미대사관 무관시절을 돌이켜 보며 그는, 81년 2월 3일 전두환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여 레이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때 백악관 연락업무를 담당했던 일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후 신 장군은 97년 12월 소장의 계급으로 예편할 때까지 2사단 부사단장, 합참민심처장, 제방사령관, 제2사단장, 해군본부 총장보좌관, 합참전비태세검열실장 등의 주요 직책을 역임했으나 그 이상의 관운을 타고나지 못했기 때문인지 대한민국 최고의 무공훈장인 태극훈장을 타고서도 사령관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한편 2000년부터 5년 간 해병대 출신 장교로서는 처음으로 재향군인회 조직국장으로 임명되었던 신원배 장군은 특히 군인연금법의 개정과 재향군인회의 전국 조직망 정비, 안보구심적 역할 증대 등을 위해 노력한 그 조직국장 재임기간 중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해병전우회중앙회(당시총재 오윤진 장군)를 향군회관에 입주시키는 공로를 쌓았었다.


  그리고 한반도 전쟁방지국민협의회 운영위원, 베트남참전전우회의 이사직을 맡고 있는 신원배 장군은 작년 10월 4일 시청앞 광장에서 국보법(國保法) 사수 국민대회가 열렸을 때 대회본부가 설치된 단상에서 대(對)국민 호소문을 낭독하여 그 대회장에 참집한 30만(대회본부측 추산인원) 시민들로부터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 날 신원배 장군을 소개할 때 사회자는 두 차례나 “살아서는 받을 수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무공훈장을 탄 전쟁영웅 신원배 해병소장”이라는 말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2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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