越南戰 - 짜빈둥 승전보도의 유공자 정기인 박사
한양대학교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인 정기인 박사. 오래 전부터 칼럼 집필과 TV특강을 통해서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정 박사는 다음과 같은 사연으로 3대대 11중대에 의해 수행된 짜빈동 기습방어전의 고무적인 승전 보도를 그 어느 누구 보다도 신속하게 보도하는데 기여한 유공자로 기억되고 있는 인물이다.
서울 출신(1941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해간 33기로 입대, 임관(64년)했던 정 박사는 해병제1연대에서 소대장 근무를 마친 연후에 66년 9월 청룡부대의 제1진 보충 병력의 일원으로 파월되어 여단본부 기동타격소대장 겸 정훈참모실 보좌관(권혁조 중위의 후임)으로 임명되어 정 박사 자신이 증언하고 있듯 1인 1건 주의로 보도기사를 작성하여 주월사 보도실로 송고하고 있는 속기 능력을 갖춘 유능한 공보하사관 김지현 중사와 호흡을 같이 하며 때로는 능숙한 영어 회화 실력으로 미 해병대의 종군기자를 부대본부로 초치하여 취재를 하게 하는 등 부대의 보도업무를 위해 열정을 다해 노력하는 한편 명령이 내릴 경우 즉각 기동타격소대를 지휘하여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67.2.14) 그는 여단장(김연상 준장)의 지시에 따라 거룡작전(한·미·월 합동작전)을 취재할 사이공 주재 특파원들을 여단본부로 조치하기 위해 추라이 비행장으로 가서 미 해병대의 수송기 한 대를 특별히 지원받아 그 비행기를 타고 사이공으로 가서 한국 특파원들에게 용건을 설명하고 동행을 요청했으나 다들 위험한 지역인 추라이지구로 가기를 꺼려하는 바람에 입장이 난처했으나 오직 한사람 고교선배인 목사균 특파원(조선일보)이 초청에 응하게 되어 그와 함께 추라이로 간 결과 뜻밖에도 여단본부에 도착한 바로 그 다음 날(2.15) 새벽 짜빈동에 배치된 11중대 장병들이 기습전을 감행한 1개 연대의 월맹군을 격파하여 대승을 거두게 되자 그 날 이른 아침 여단장 전용헬기에 여단장과 목사균 특파원과 함께 동승하여 엄청난 전과를 기록한 그 혈전의 현장으로 가서 목사균 특파원으로 하여금 그 특종기사를 단독으로 취재하여 본사로 송고토록 지원했을 뿐 아니라 자신도 그 현장에서 인터뷰 기사를 포함, A4용지 2매 분량의 기사를 작성하여 여단본부 정훈에서 각자(刻字)로 등사한 것을 김지현 중사로 하여금 사이공으로 가서 동아일보와 서울, 경향신문사의 특파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그 3사에서도 조선일보에 뒤지지 않는 시간대에 특종기사로 대서특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줄곧 같은 직책을 수행하며 2년 간 월남전선에서 근무하고 귀국했던 정 박사는 69년 2월 대위의 계급으로 예편할 때까지 국방부 군인연금연구위원회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예편 후 경제학을 전공하기 위해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 진학, 석사과정을 거쳐 80년 ‘상사중재(商事仲裁)의 발전방향’이란 연구논문으로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는데 성공했던 정 박사는 81년 한양대학교 경제학 교수로 임명됨과 동시에 휴직원을 제출하고 미국으로 유학, 뉴욕대학에서 3년 간 GBA 과정(경제학)을 이수한 후 1년 간 동 대학에서 국제기업론을 강의하는 객원교수로 근무하는 이력을 쌓았다,
그 후 87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양대학교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정기인 박사는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현), 사단법인 학국중재학회장(현), 유엔 국제무역법위원회 정부대표단원, IBRD(세계은행)객원연구원, 한양대 중소기업연구소소장,경상대학장,사회교육원원장,신라문화장학재단이사(현), 국무총리실 공공기술연구회이사(현) 등의 직책과 명예직을 역임하는 등 화려한 경륜을 쌓았다.
또한 ‘국제화시대의 기업경영’‘기(氣) 골프 건강법’을 비롯하여, ‘무역학세미나’‘중소기업론’‘국제무역 정책’‘해병대 경영’‘기업붕괴’등의 저서를 집필했던 정 박사는 66년 후반기부터 작금에 이르기까지 조선일보 칼럼에 연재된(66.9~7.1) ‘기(氣)테크 경영’을 비롯해서 월간지 ‘삶과 꿈’의 칼럼 란에는 ‘정기인 교수의 남편기살리기’, 한국경제신문 칼럼에는 2년째 ‘정기인의 기골프’를 연재 중에 있다.
이밖에도 정기인 박사는 수차에 걸친 SBS TV특강에 출연한 것을 비롯하여 MBC 라디오(싱싱한 아침), MBC-ESPN, 임국희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교통방송 프로그램에 10여 차례 출영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전개해 왔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2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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