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越南戰 - 용머리2호작전을 지휘한 이승일 소대장

머린코341(mc341) 2016. 10. 8. 23:19

越南戰 - 용머리2호작전을 지휘한 이승일 소대장
 

66년 12월 20일 초대 청룡부대장 이봉출 준장과 임무를 교대한 제2대 청룡부대장 김연상 준장은 여단 수색소대가 안호아관측소(△141)와 누이트론관측소를 미 해병대의 정찰소대로부터 인수하여 운용하고 있는 상황 하에서 특공중대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나머지 사단 수색중대장 출신인 여단본부 비서실장 김진옥 대위를 특공중대장으로 임명하여 특공중대의 편성을 서두르게 했고, 그러한 명령을 받은 김진옥 대위는 인원과 장비의 획득을 서두는 한편 비상한 노력으로 사단 수색중대에서 근무 중인 이승일(李勝一) 중위를 급히 청룡부대로 발령나게 하여 특공중대 편성요원들에 대한 특수교육을 실시했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을 거쳐 약 3개월 후 실전에 투입이 된 특공중대는 그 해 7월 중순경 월남전 사상 극히 드문 작전(용머리2호작전)을 수행하게 되었는데, 그 때 중대장으로부터 오직 한마디 ‘출동준비를 감추라’는 극비명령을 받은 특공중대 화기소대장(선임소대장) 이승일 중위는 20여 명의 정예요원을 직접 선발하여 출동명령을 대기하던 중 필시 위험하고 중요한 작전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부중대장 이병철 중위(해간33기 동기생)에게 “만약 내가 출동한 후 한 시간이 경과해도 소식이 없을 때는 죽은 줄 알고 우리 부모님에게 멋있게 싸우다가 전사했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출동 명령과 함께 수 대의 헬기에 분승하여 09시경 데사키 강구 오른쪽 돌출부의 돌섬에 착륙, 일부 병력으로 자체 경계와 엄호를 담당하게 하는 가운데 송일수 조은호 오해순 하사 등으로 편성된 수영돌격조를 그 전날 밤 미 해군봉쇄함대의 추적을 받아 격침을 당해 수중에서 연소 중인 월맹군의 보급선(철선)으로 접근시킨 다음 계속 잔류병력을 투입하여 09시 40분경 로프를 타고 보급선에 도착한 수영돌격조와 그 후속병력이 진화작전을 계속하는 가운데 선실을 수색한 끝에 그 속에 적재되어 있는 엄청난 양의 무기를 발견, 그것을 보급선과 돌섬 간을 밧줄로 연결하여 특공중대장이 인솔해서 출동한 다른 1개 소대와 합세하여 돌섬으로 인양하는 작업을 진행했는데, 975정의 AK44호소총과 185정의 AK56소충, 20여 정의 유탄포 및 200파운드의 TNT 등 중국본토로부터 밀송한 것으로 판명된 그 막대한 양의 중공제 무기와 폭약은 7월 19일 월남정부 당국에 의해 ‘다낭시’에 노획품으로 전시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특공중대 화기소대장으로서 이러한 임무를 수행했던 이승일 중위는 70년 2차로 파월이 되어 특공중대의 제5대(김진옥, 장덕, 지순하, 신종철 대위 순) 중대장으로 임명되어 용명을 떨쳤는데 초급장교 때 수색중대 요원으로서 UDT 및 스쿠버 훈련과 산악지 훈련 등 특수훈련 과정을 두루 이수했던 그는 특히 특공중대에서 근무할 때 적이 매설해 놓은 지뢰가 발견되었을 경우에는 자신이 직접 그 지뢰를 제거함으로써 대원들에게 실습교육을 시켰다고 하는데 월남전에서 이러한 화제를 남긴 용감한 지휘관도 드물 것이다.

 
한편 군복무기간 중 모교(성대 상과졸)의 무역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하여 외자부계통의 건설 면허를 취득했던 이승일씨는 예편(73년 10월) 후 남광토건 해외지사(필리핀) 파견근무에 이어 80년도부터서는 자재과장, 차장, 부장으로 승진하는 가운데 수년 간 라이프주택 중동지사와 구라파를 총괄하는 런던지사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간33기 동기회의 회장으로 추대되어 있는 이승일 회장은 10년 전부터 해병수색전우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수색전우회의 상징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2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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