越南戰 - 테로이 매복작전을 지휘한 박종환 소대장
충남 아산에 소재하는 대한냉열(冷熱)공업주식회사 박종환(朴鍾環) 사장, 그는 청룡부대가 월남전에서 수행한 매복작전 가운데 가장 큰 전과를 거둔 작전으로 기록되고 있는 테로이매복작전을 지휘한 수훈의 소대장이다.
평북 선천출신(1940년생)으로 1.4후퇴 때 10세의 나이로 가족과 함께 월남했던 박종환 사장은 인천 송도의 빈 집에 피난을 하다가 9.28 수복 후 철도공무원으로 복직을 하게 된 부친의 뒷받침으로 양정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법과를 졸업한 66년 3월 해간 35기로 입대 임관함과 동시에 청룡부대의 소대장 보충요원으로 자원하여 월남으로 출동, 추라이지구에서 작전 중인 1대대 2중대 3소대장으로 임명되어 연일 매복작전을 벌이고 있던 중 67년 7월 19일 자신이 직접 지휘한 테로이부락(4부락) 매복작전에서 1개 중대의 베트콩을 섬멸하는 혁혁한 전과를 거둠으로써 내외신 기자들에 의해 그 전투공적이 대서특필되었었다.
쾅나이 북방 약 10키로 지점에 위치한 1번도로변의 그 테로이 4부락은 월맹이나 중공으로부터 해상으로 수송되어 바탄칸반도에 양웃된 군수물자나 증원병력을 서부 산악지대로 이송할 때 반드시 통과해야 할 길목이었으므로 아군 측에서는 그 전에 3차례나 매복전을 벌여 적군의 소수부대를 섬멸한 적이 있었지만 행운의 날이었던 그 날(7.19) 밤의 매복전은 월남민병대장으로부터 입수한 다음과 같은 제보, 즉 1개 중대의 베트콩이 테로이 4부락을 거쳐 해변쪽으로부터 산쪽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제보가 적중이됨으로써 그와 같은 전과를 거둘 수가 있었다.
그 날 일몰시를 기해 2개 분대의 병력을 이끌고 현장으로 출동했던 2중대(장, 유현태 대위) 3소대장 박종환 소위는 전 병력을 물이 마른 개울에 일열로 배치하는 한편 앞과 뒤쪽에 각 각 2개의 크레모어 지뢰를 매설해 놓고 은밀히 매복해 있다가 별이 총총한 한밤중에 이르러 훤히 트인 도로 위에 전혀 눈에 띄지 않던 야자수 나무가 생겨나듯 나뭇가지로 위장을 한 적병들이 더부럭 더부럭 무리를 지어 나타나 그 매복지점으로 접근해 오자 적군의 첨병분대가 불과 10미터 전방까지 접근했을 때 터뜨린 크레모어지뢰와 함께 일제히 적을 요격함으로써 순식간에 절반가량을 쓰러뜨린 다음 새벽 5시경 중대방석에 잔류시켜 놓았던 1개 분대까지 투입하여 60밀리와 81밀리박격포 등 중대 방석의 화력과 포병대대 및 4.2인치 포대의 지원 하에 패주하는 적을 조명탄의 불빛아래 2키로 지점까지 추격하여 전과를 확대한 끝에 확인사살 32, 추정사살 45, 포로 4(여자간호장교 3, 소대장 1), 60밀리 박격포 1문, M1 7정, BAR 2정, 기관단총 4정을 노획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고, 특히 사살된 그 32구의 적 시체는 민심수습을 위해 일단 가매장을 해 두었다가 21일 그 마을 촌장을 비롯한 수백 명의 동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숙히 장례를 치러주었다고 하는데, 아군의 매복에 걸려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베트콩들은 용머리2호 작전 때 미 해군에 의해 격침을 당한 그 중공제 보급선(철선)에 선적되어 있는 무기를 인수하기 위해 동원된 병력으로 판명이 되었다.
그리고 그 테로이 매복전을 가리켜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월남전에서 보포(步砲)협동이 가장 잘 이루어진 작전으로 기억되고 있다고 말한 당시의 청룡부대 포병대대장 이갑석씨(예비역 대령, 해간8기)의 증언에 따르면 그 날 1대대장 김명환 중령의 요청에 따라 포병대대에서는 특히 적의 퇴로와 접근로 차단을 위해 20여 개 소의 화집점(火集点)을 도면상에 구성해 놓고 실병지휘관이 무전기로 화집점의 번호를 대기만하면 즉시 조명탄과 함께 포탄을 그 지점으로 발사하여 보병부대의 작전을 지원했다고 하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그 날 밤 보병들이 2키로 지점까지 추격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포병대대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했다.
한편 그 날 밤 실병을 지휘했던 수훈의 소대장이었던 왕년의 1대대 2중대 3소대장 박종환 사장의 말에 따르면 그 이튿날 아침 상황이 종료된 그 현장에는(그 전날 밤 작전의 결과를 보고받은)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중장이 어느 누구 보다도 먼저 헬기를 타고 비래하여 수집해 놓은 전과(노획무기와 시체)를 직접 확인한 다음 작전을 지휘한 박종환 소대장에게 악수를 청하며 “귀관 정말 수고했오. 성공적인 매복작전이었오”하며 극구 치하했다고 하는데, 채명신 사령관이 그 후에도 그런 언급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그 테로이매복작전은 월남전 사상 한국군이 수행한 대소 매복작전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매복작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월남에서 약 1년 간 소대장과 작전관으로 근무했던 박 사장은 귀국 후 2년 간 상남훈련대에서 교관으로 근무한 데 이어 김포 여단본부 군수참모실과 중대장 근무를 마치고 71년 2월 중위의 계급으로 예편했다.
한편 예편 후 보훈처장 비서실에서 약 3년 간 근무한 데 이어 74년부터 10년 간 삼성그룹(중공업부문) 관리부장으로 재직했던 박종환 사장은 84년부터 88년까지 중소기업체의 상무이사, 공장장으로 재직하다가 88년 8월 현직으로 발탁 기용되어 금일에 이르고 있는데, 무인불승(無忍不勝-참을성이 없는 사람은 자신과의 싸움이나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라는 뜻)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그는 중소기업체의 사장이 골프장에 출입하게 되면 하루를 까먹는다고 말할 정도로 성실 일변도의 기업인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경영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종환 사장의 말에 따르면 일본과의 기술제휴(합작회사)로 자동차부품을 제작하고 있는 대한냉열공업(주)에서는 경영난으로 작년부터 중국에 별도의 공장을 세워 가동하고 있다고 한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2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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