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병의 실록(11)] 호랑이 굴로 들어가다
미스김과 관계를 끝낸 정복은 담배를 물고 길게 한 모금을 빨았다. 담배연기는 천정을 향해 곡예를 하며 애경이 모습을 그렸다가 산산히 부서졌다. 미스김과의 관계가 마음 한구석이 깔끔하진 않았지만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애경이가 돈 많은 남자의 품으로 배신했듯 정복 또한 다른 여자를 품으므로 셈셈이 되는 거였다. 정복은 여자에게서 진정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오로지 해병 복무에 충실하고 싶었다. 하룻밤 풋사랑을 나눈 술집을 벗어나자 어둠이 마중 나와 휘파바람을 불고 있었다. 정복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진해 종합 기술학교에서 후방기 교육을 수료한 정복은 2박 3일의 휴가를 마치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었다. 기차는 정복의 몸과 마음을 다 가둔채 달리고 또 달렸다. 속도를 가늠할 수 없는 기차가 영등포역에 도착하자 신병 호송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정복은 후방기 교육 수료 후 훈련이 빡신 포항으로 떨어지느냐 아니면 빠따(기합 또은 군기) 가 쎈 김포로 떨어지느냐를 놓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초조해 했었다.
정복은 어디라도 상관없었지만 이왕이면 고향땅과 멀리 떨어진 곳이였으면 싶었다. 고향이 가까우면 병영생활이 힘들것 같기도 했고 또 애경이를 잊는데 도움이 될것도 같기도 했다. 영등포 역 부근에서 신병수송 차량에 오른 정복은 김포로 배정된게 다행이다 싶었다.
신병들을 실은 차량은 도심을 벗어나는가 싶더니 금새 시원한 외각을 달리고 있었다. 외각은 5월의 푸르름으로 꿈틀대는 중인지 사방이 녹색천지였다. 모두가 생기에 차 있었다.차량에 실린 신병들은 그런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두가 초조한 듯 긴장하며 침묵하고 있었다.
정복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영원히 실무에 도착할 동안 3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면 좋겠다는 무질없는 생각까지 했다. 그것도 아니면 실무라는 곳이 아주 멀고 멀어서 몇 날 며칠을 가야 닿을 수 있는 곳이였으면 좋겠다는생각도 했다. 하지만 국방부 시계는 꺼꾸로 돌아가지 않았고 그렇다고 빨리 가지도 않았다.
정복을 실은 차량은 붉은 바탕에 노랑색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어느 부대인지 알 수 없는 위문소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위문소엔 상병 계급장을 단 근무자가 거수 경례를 올리며 차량을 반겼다. 정복은 이제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실무요 본격적인 군 생활이겠구나 싶었다. 정복은 그 선임이 달고 있는 계급장이 한 없이 부러웠다. 난 언제쯤 저런 계급장 다나....아무리 국방부 시계를 꺼꾸로 달아 놔도 돌아간다지만....그날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많은 동기들이 각 부대에서 온 차량에 실려가고 정복 또한 일병 계급장과 상사 계급장을 단 분들의 안내에 따라 차량에 올라탔다. 일병 계급장을 단 선임의 명찰엔 이 승엽이란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자기는 대대장 운짝이며 너무 쫄지말라고 위로도 해 줬다. 정복은 말이나마 위로해 주는 이 승엽이란 선임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정복이 탄 차량이 도착한 곳은 사단본부를 끼고 있는 통신대대라는 곳이었다. 부대 주위의 산새가 뛰어나고 누워있는 용의 형태를 한 산들이 부대 주위를 엄호해 주며 군부대로써는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었다. 정복은 앞으로 3년간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주위의 풍경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대대본부에 도착한 정복은 대대장을 앞에 두고 신고식을 거행했다. 짤딱막한 키에 적당히 오른 살집, 그러면서 당당한 체구의 그는 약간 벗겨진 대머리를 자랑하듯 모자를 벗어 책상 위에 놓고는 악수를 청해왔다.
그리고 아무 말이 없었다. 정복은 대대장의 침묵과 이글거리는 눈빛이 앞으로의 군생활이 어떨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대대장은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귀관! 애인있나?"
-11부 끝-
출처 : 해병대인터넷전우회, 518기 전종권 후배님 http://www.rokmc.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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