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병의 실록(14)]춤추는 5파운드 곡갱이 자루
"본부소대 김해병이라고 내 동기놈...지난번 후임 소개로 만난 여자랑 휴가 때 임신 시켜가지고는 탈영하고 싶네 어쩌네 하며 고민하는 척 자랑을 해 샀는데 미치고 환장하겠더라고 시팔 누구는 초소 벽에다 영역표시하고 누군 기압든 후임 만나 임신이나 시키고...난 언제 똥기압든 후임 만나나"
정복은 정해병의 넋두리를 들으니 안 됐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때였다.
정해병의 눈빛이 어둠속에서 반짝거리며 정복 곁으로 밀착시켜왔다.
정복의 몸은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정복은 그런 정해병이 싫었지만 싫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 이러십니까 정해병님!"
"쉿 조용해 새꺄"
정해병은 정복을 꼼짝 못하게 해 놓곤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정복을 향해 올 것 같던 발걸음은 정복을 지나 어둠이 잠들어있는 전방을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둠 속에서 거뭇 거뭇한 움직임과 작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정복은 "간첩" 이란 단어를 떠 올리며 늘어졌던 몸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정해병은 긴장하면서도 노련하게 상황 대처를 잘도 해나갔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청룡!"
정해병은 암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상대의 반응을 기다렸다.
"당직사관이다"
"당직사관이 누구냐 관등성명과 암구호를 대라 청룡!"
"괜히 기압든척하네 새끼...나라니까 부대!"
"필승! 근무중 이상무"
"아무 이상 없는 것이 확실하지? 신병 교육시킨다고 사고친거 아냐?"
"아닙니다"
"그래 아직 부대 적응도 못한 신병이니까 정해병이 특별히 신경 써 줘"
"예 알겠습니다"
"오늘은 신병이 보초 서는 관계로 근무 교대를 앞 당겼어. 빨리 교대하고 곧 바로 지침하도록"
첫 초소 근무 후 정복의 실무 생활은 세월에 미끄럼타고 팔각모에 작데기 하나가 얹혀졌다. 그러는 동안 후임 둘이 달을 건너 연속으로 정복 밑으로 들어왔고 막내를 졸업하자 쫄다구 생활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정복의 일병 생활은 아침에 기상하여 선임들 꼬투리 잡히기 전에 쫄병 둘과 내무실 청소와 선임들 세무워카를 닦아두는 거였다. 바닦은 윤이 나도록 세번 네번을 반복해서 닦아야했고 세무워카는 먼지 한톨 안 나도록 문지르도 또 문질러야했다. 혹여 먼지 한톨이라도 났다간 통신대대 하리마우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상병 김 해병에게 5파운드 곡갱이자루 줄를 하사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리마우 김해병은 입대하기 전 건설현장에서 곡갱이 자루로 땅을 파 먹고 살던 인사였다. 곡갱이 자루 다루는데는 남다른 기술이 있었고 팔뚝의 근육은 부디빌더가 보고 10리는 줄행랑 칠 정도로 발달되어 있었다.
몸이 좋으면 성격도 좋은게 정석이거늘 그는 그렇질 못했다. 입만 열었다 하면 육두문자요 눈만 부라렸다하면 후임들 불알이 쪼그라 들 정도의 더러운 성질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바로 밑 쫄인 정복을 유독 괴롭혔다. 명분은 쫄병들 기압을 드리지 못해 기강이 안 선다는 거였고 그래서 늘 기압 빠진 행동을 한다는 거였다. 순검을 끝낸 그날 밤에도 그랬다.
"어이 이정복 뭐 먹을만한게 없냐 고참 배고파 순직하겠다"
가장 자리에 앉은 최 고참 박대기 해병의 부드러운 질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없습다"
"그래? 고참이 배고파 잠이 안오는데 먹을게 없다? 이제 하리마우 곡갱이 약발도 맛이 갔나 보다. 얘들 패라는 말은 아니다"
하리마우 김해병의 눈길이 어둠속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병사 뒤 보급 창고 앞으로 집합하라는 눈짓을 보내왔다. 정복과 두 쫄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보급 창고 뒤쪽은 어둠만이 또아리를 틀며 네 사람을 반기고 있었다.
김해병은 세명을 일렬로 세워놓고 곡갱이 자루 대신 주먹으로 가슴팍을 한방씩 먹이고 꼴아박아를 지시했다.
"내가 시팔놈들아 니놈들 때문에 고참들에게 욕 먹어야겠어? 야 막내....너 일어나 쫄병 내무실 수칙 발사해 봐"
"잘 모르겠습니다. 시정하겠슴돠"
"잘 모른다? 시정하겠다? 이 새끼봐라.....야 이 정복! 너 이새끼 쫄병들 교육 어떻게 시켰어? 어떻게 시켰길래 내무 수칙도 모르냐구 시팔놈아... 그러니 이 하늘 같은 선임이 때 고참 새끼들에게 고롬을 당하지....햐 이 꼴통 새끼들 당장 확~~~너 쫄병들 보는 앞에서 시범적으로 한번 맞아 줘야겠다"
"시정하겠습니다"
"시정 시정 시정....맨날 시정이래 쫄다구 새끼들은. 시정은 시장들이나 하는 거고 니 놈들은 고참 말만 잘 들으면 돼 빨리 엎드려 뻐쳐"
"맞을 때 마다 숫자를 센다"
"퍽!"
"하나..."
"퍽!"
"두울..."
20이란 숫자를 외친 정복은 땅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정복의 엉덩엔 끈끈한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일어나 새꺄....사내 새끼가 겨우 스무대 가지고 쓰러지고 지랄이야?"
".........."
"쫄들 보는 앞에서 얻어 터지니까 어때? 견딜만 하지?"
".........."
"쫄들 교육 차원에서 쫄병 내무 수칙 발사한다 실시!"
"-쫄병 내무실 수칙- 일/선임보다 언제나 일을 신속히 끝낼것 이/보안철저 삼/행해진 일은 이유 불문 사/식사는 늦게 시작해서 빨리 끝낼것 오/대답은 무조건 "예" 육/늦어도 총기상 15분전에 일어나 청소 실시 칠/한가지 특기는 반드시 가질것 팔/성냥 담배는 항상 휴대 구/짜리는 출세의 지름길 십/선임의 입과 귀와 눈을 항상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할것. 이상입니다"
"머리 하난 좋구만...하긴 머리만 좋으면 뭐해 실천을 해야지....오늘은 열번째가 오발된거 알지? 얘들 패지말고 교육 잘 시켜"
정복과 두 쫄을 남겨두고 하리마우 김해병이 내무실로 떠난 후 정복은 두 쫄을 바라보면서 팬티가 떨어지지 않은 엉덩이를 만졌다.
손바닥에 붉은 선혈이 묻어났다. 훈련소에 빵빠레가 있었다면 실무엔 5파운드 타작이 있다는 해병대 출신 사회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정복은 그 선배를 생각하며 시를 쓰고 싶었다. 그리고 노래도 하고 싶었다.
-몸서리 처지는 5파운드 곡갱이 자루여!-
해병대란 두 글자에 청춘은 맨발이고
훈련소를 떠날 때엔 마치
큰 임무를 마치고 집에가는 기분이었소
실무에 도착하니
굶주린 이리 때 속에 들어온 기본이고
차라리
훈련소 시절이 간절하였소
하지만 어쩌랴
이 처참한 비극을
이 운명의 장난을
사나이 한번 태어나
나라에 몸 바친것을
무적해병
신화를 창조하는 해병 되길 다짐한 것을
아!
밤마다 춤을 추는
몸서리 처지는 5파운드 곡갱이자루여!
-14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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