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병의 실록(15)]포상휴가(上)
그날은 대대 사격이 있는 날이었다. 몇 달 전부터 쓰다 남은 드럼통에 까만 타켓을 그려 놓고 대대원들 전부 엎드려 쏴를 수도 없이 되풀이 했었다. 이번 야간 사격에는 70%이하의 적중률을 기록하는 대원에겐 완전군장 구보를 특등사수에겐 포상이 대기하고 있었다.
대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휴가를 타 먹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어떤 후임은 애인과의 잠자리를 떠 벌리며 김치국부터 마셔댔고 어떤 선임은 펜팔로 사귀고 있는 여자 만나러 가야 한다고도 휴가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정복은 며칠 전 받았던 어머니로부터의 편지가 맘에 걸렸다. 지병인 심장병이 최근들어 부쩍 심해졌다는 거였다. 당장 달려가 병원으로 모셔가고 싶었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편지 말미에 너무 걱정말고 군복무에 충실하라 하셨지만 정복의 마음은 영 찜찜했다. 심장병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병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 사격에라도 재능이 있었다면 희망을 가져 볼텐데 정복에겐 그런 재능이 없었다. 주간 사격에도 20발 중 12발이 최고였고 야간 사격은 0발인 경우도 허다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최선을 다 해 보기로했다. 완전군장구보든 고향행 열차를 타든 그건 하늘의 운명의 선택할 몫이였다.
조별 과업을 마치고 사격장으로 가는 차량에 몸을 실은 정복은 두 눈을 감고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도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어이 이정복! 지금 완전무장 구보냐 포상휴가냐가 달려있는 상황에 잠이오냐. 기압빠진 지랄 그만하고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노래 자동 발사해라이...."
맞은 편에 앉은 하리마우 김해병의 명령이었다. 정복은 그런 김해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난데없이 노래나 부르라고 시키는 것도 그랬지만 밑으로 쫄들도 여럿 있는데 유독 자신을 지목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정복은 자대 배치받고 일병 계급장 달기 전까지 작업을 다니면서 질리도록 고참들로부터 이런 명령을 받았었다. 작업 중 휴식 시간이면 고참들은 어김 없이 정복에게 그런 행위를 강요했다. 그럴 때마다 정복은 난감했다. 노래를 잘 부르지도 못하고 남앞에 나서는 재주도 없는데 고참들은 노래나 장기 자랑이 시원찮으면 어김없이 단죄하였다. 그들은 정복의 단죄하는 의식을 즐기면서 휴식 시간을 보냈다.
"내말 안 들려? 노래 못해도 까라면 까는거지....지금 개기는 거야?"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좋아 어디 한번 해 봐"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서는 이 자식은 천근만근 무거운 발길을 돌립......♬"
"야야야 됐다 됐어...시팔 분위기 띄우라니깐 분위기 망치고 있어 썅....어이 그쪽 막내 니가 함 해바라 이새끼는 텃다 텃어"
"악!...............지금 나의 곁에 있는 사람은 누구 진정날 사아랑하실 사람인가요? 그대 사아랑 영원하다 약속하지만......이별 뒤에...."
최소 근무자를 뺀 대원들은 소대별로 줄을 섰다. 10열 횡대로 선 줄 대로 맨 앞 사람이 사선에 나서면 그 다음 줄의 대원은 자신이 쓰고있던 팔각모를 탄피 구먹 입구를 대고 탄피의 이탈을 막았다. 군대에선 실탄 관리가 가장 중요하였다. 총기 사건과 자살 사건 때문이었는데 만일 탄피 하나라도 찾지 못하는 날에는 단체 기합이 기다리고 있었고 찾을 때까지 부대 복귀를 시키지 않았었다. 정복은 두번 째 줄에 서서 앞 사람의 탄피를 받기 위해 팔각모를 벗어 탄피 배출 구멍을 막았다.
첫번째 줄 사격이 끝나고 두번째 줄 차례였다. 정복의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정복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긴 한숨을 들이 마셨다가 내 뱉었다. 그리고 조용히 실탄을 탄창에 꼽았다. 한알 한알 꼽으면서 제발 타킷에 관통되길 바랬다. 달빛 어스름한 전방의 타킷을 총구로 겨냥해 봤다.
타킷은 보일 듯 말듯하여 정복의 동공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정신을 집중하려 노력했다. 잠금 장치를 확인하고 탄창을 꽂으며 조교의 명령을 기다렸다. 대원들의 준비가 완료됨과 동시에 조교의 사격 실시 명령이 떨어졌다. 정복은 잠금장치를 반자동으로 풀고 전방 타킷을 확인한 다음 애인 젖 가슴 만지 듯 방아쇠를 부드럽게 잡아 당겼다.
"탕!"
10발의 총성이 어둠을 깨웠다. 총기를 땅에 놓고 뒤로 세 발짝 물러서서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정복은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는 오늘밤도 죄여오는 혈관과 싸우며 밤을 지새울 것이다. 근처 병원에서 탄 약으로 급한 위기 상황시 응급 처치는 되겠지만 본디 심장병이라는게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질병이기에 늘 불안에 떨며 사실게 분명했다. 정복은 그런 어머니의 얼굴을 그리며 후레쉬를 들고 결과를 통보하는 조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1번 5발"
"2번 2발"
"3번 7발"
"4번1발"
"5번....."
정복의 사선은 5번이었다. 4번의 결과가 통보되고 5번의 결과를 통보하는데 조교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5번......5번...........어?...... 잠시 대기"
정복의 결과를 통보하던 조교는 뭔가 이상한지 잠시 대기를 외쳤다.
"이거 이상하네? 이거 몇발이 맞는거야?..........................하여튼 10발!"
정복은 조교의 통보가 실수일꺼라 생각했다. 아니면 자신이 잘못 들은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옆 사선에 있는 다른 대원들의 모두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자 확실히 꿈은 아니었다. 가슴이 벅차 오르고 두 다리가 떨려왔다.
어머니의 웃는 모습도 떠올랐다.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실까 생각하니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멍하니 서 있는 정복에게 최 고참 병장 박해병이 다가와서 믿기지 않는 다는 듯 한마디를 던졌다.
"너 옆 사선에서 쏜 놈이 누구였지?"
-15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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