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518기 전종권

[어느 해병의 실록(18)]불길한 징조(中)

머린코341(mc341) 2016. 10. 9. 07:04

[어느 해병의 실록(18)]불길한 징조(中)

 

부대 복귀하자 마자 정복의 대대에는 구타 금지령이 내려졌다. 군 내부에 만연한 사건들로 많은 문제들이 불거져 졸병들을 함부로 때리지 말라는 상부로부터 내려온 지령이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각 소대별 구타금지 연극대회를 개최하였다. 연극을 통해 고참과 졸병의 문제점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개선하자는 취지였다. 정복의 소대에는 울산에 사는 상병 진해병이 있었고 그는 학창시절부터 연극에 관심이 많았으며 평소에도 대본 쓰는 것을 취미로 하고 있었다.


단풍이 산야를 뒤 덮던 어느 가을 날 대대 연병장엔 최소한의 근무자를 뺀 대원들이 각 소대별로 집합해 자기 소대 연극을 위해 정신을 쏟고 있었다. 연극은 1소대를 스타트로 2소대 3소대....순서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복과 하리마우 김해병이 주연을 맡은 5소대 차례였다.


이번 연극엔 최고 점수를 받는 소대에서 연기를 가장 잘한 한명의 포상자가 걸려있었다. 무대 위에 작대기 4개를 단 정복이 거만한 포즈로 나타났다.


이정복(병장): 야 김정준! 너 이 새끼 지금 뭐하는거야? 새카만 쫄다구 새끼가 청소는 안하고 뒤집어 자고 있어? 그리고 이건 뭐야? 정리 정돈 한거야 만거야?

하리마우 김해병(일병):청소 다 했습니다

이정복(병장): 뭐라고? 이 씨팔놈이 엉망인 거 눈으로 보면서도 고참 희롱하네?

하리마우 김해병(일병):정말 했다는데 왜 이러십니까?

이정복(병장):어쭈….이 새끼봐라 내가 누군 줄 알고.....하여튼 쫄다구 새끼들은 좋게 대해 주면 대가리에 올라탄다니까

이정복(병장):퍽!


정복의 실감하는 구타에 진짜 선임인 김해병이 연병장 뒤 막사 쪽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는 다시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일병인 정복이 진짜 상병인 하리마우 김해병 가슴을 강타하며 상병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하고 상병인 하리마우 김해병도 쫄병 역할을 기가 막히게 연기해대자 관객들은 재미있는지 연신 웃음보를 터트렸다.


대대장도 작전 장교도 군수 장교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실감나는 연기에 연시 박수를 쳐댔다. 그리고 다른 소대에선 병장은 병장 역할을 일병은 일병 역할을 했는데 반해 무선 소대는 그 반대로 졸병은 고참 역을 진짜 고참은 쫄병 역을 맡긴 것도 적중했다. 그 의도는 많은 부대원들에게 대단한 호응을 얻고 있었다. 


진짜 쫄병이 고참 가면을 쓰고 진짜 고참에게 욕설을 하고 진짜 고참은 또 가짜 고참에게 욕설을 얻어 먹고 궁지에 몰리는 역할을 하는 모습에 졸병들은 대리 만족을 고참은 고참대로  신선한 느낌을 받은 듯 했다.


다른 역할을 통해 각자의 입장이 되어 봄으로써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취지는 정확하게 대대장의 마음을 움직였다. 정복이 속한 소대가 대대장 포상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 인지도 몰랐다.


고참 역할을 완벽하게 해 낸 정복이가 포상자로 발표되었다. 하지만 정복은 휴가 다녀 온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며 포상 휴가자를 다시 뽑을 것을 소대장에게 건의했다. 소대장은 추천자를 말하라 했고 정복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하리마우 김해병을 추천했다. 


“김해병님!”


대대장에게 휴가 신고를 마치고 소대원들에게 인사하러 온 하리마우 김해병을 정복이 불렀다.


“김해병님은 어째 못하시는 게 없습니다?"

“짜샤 내가 뭘…..그리고 임마 해병대 1년 짬밥이면 누구나 다  그렇게 되는 거야. 잘 들어 봐  3보이상 구보 하다 보니 마라톤 선수 되지, 식사당번 하다 보니 식순이 되지, 기합을 받다 보니 튼튼한 체력 길렀지, 쫄병 때 말이 없다 보니 입이 무거워졌지, 군가를 부르다 보니 가수가 되지, 사격을 하다 보니 총잽이가 되지, 구두를 닦다 보니 구두닦이 되지, 유격 훈련 받다 보니 산악인 되지, 빳다를 치다 보니 야구 선수 되지, 완전무장 하다 보니 지게질 배우지, 참고 견디다 보니 인내심 기르지, 한잔 두잔 먹다 보니 술고래가 되지, 수색훈련 받다 보니 깜둥이가 되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니 무적해병 되지”

“하여튼 김해병님은 대단 하십니다. 그리고 저번 사격 감사했습니다. 저희 어머님께 김해병님 말씀드렸더니 언제 한번 휴가 나오면 모시고 오라 하셨습니다”

“이 새끼…난 아냐…..내가 쏜게 아니란 말야. 난 야간 사격엔 약해. 다른 사람이겠지”

“알겠습니다. 하여튼 고맙습니다. 휴가 잘 다녀 오십시오 필 승!”

“셔!”


칼같이 다린 휴가 복을 차려 입은 하리마우 김해병의 뒷 모습이 정복의 눈에는 늠름하게만 보였다. 그리고 끝까지 자신의 선행을 숨기려는 그 마음에 진한 감동을 느꼈다.  가을 하늘도 김해병의 마음처럼 맑고 토실 토실하게 살찌고 있었다.

-18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