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병의 실록(최종회)]조국을 위해 산화하다.
"그것이 뭐....그것이 뭐 새꺄....이 새끼 동작보소? 고참 목 조르는데 일가견이 있구만 . 빨리 말 안해?"
"마눌이 아파서 비명을 지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제 깃대가 젖과 꿀이 흐르는 꿀단지가 아니라 그 밑에 있는 똥구녕에다가 꽂혔기 때문이었슴다"
신병 이야기에 촉각을 곤두 세웠던 모든 대원들이 신병의 "똥구녕"이란 마지막 말에 배꼽을 잡고 나뒹굴었다. 어떤 대원은 땅을 파던 곡갱이자루를 꺼꾸로 들고 땅을 치며 웃을 정도였다. 정복도 그의 입담에 다른 대원들처럼 유쾌하게 웃었지만 그건 분명 여러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70%는 구라 일꺼라 생각했다.
귀하디 귀한 사랑하는 아내와의 첫 날밤 추억을 과감없이 고참들에게 상납할 이유가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구라였던 아니였던 힘겹고 지겨운 국방부 시계를 조금이라도 빨리 돌려 놓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10분 휴식이 끝나자 각 소대별 CP구축 작업이 재개됐다. 정복이 속한 무선소대는 무전기가 설치된 차량을 위장막으로 덮는 것부터 시작됐다. 소대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주워진 임무에 충실했다. 위장망을 펼치는 대원 지주대를 챙기는 대원 땅을 파는 대원등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힘을 모으니 위장망 설치는 쉽게 끝났다. 해는 서산 마루에 걸려 하루의 일을 마무리 하고 있었다. 위장망 설치 후 또 다른 작업이 이어였다. 정복과 신병 권오진 해병의 임무는 안테나 설치였다. 둘은 다른 대원들과 떨어져 전파가 잘 탈 수 있는 산 꼭대기 쪽으로 갔다. 그곳엔 활렵수와 침엽수가 서로 어울려 서 있었다.
"오진이형이 안테나 조립해요 내가 땅 팔께"
정복은 3살이나 위이고 고등하교 선배이며 친구 형인 후임 권해병에게 형이란 존칭을 썼다.
"왜 이러십니까 이해병님!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둘만 있을 때만 형이라 그럴께요"
"안 됩니다. 습관은 무서운 겁니다. 남들 들으면 제 입장이 더 곤란합니다. 제발 쫄병으로 취급해 주십시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껍니다. 곤란하지 않게 처신하면 됩니다"
"그래도 군대는 군댑니다. 쫄병에게 형이라 칭하는 건 말도 안됩니다. 그것도 해병대가....."
"알아서 할테니 너무 걱정 하지 마이소"
권오진 해병은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지만 속으로는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정복의 인간 됨됨이가 좋았다. 비록 정복보다 나이가 많고 고등학교 선배지만 군대라는 특수한 여건을 등에 업고 나이 많은 후임을 고롭히는 선임들과 비교해보면 정복의 인간됨됨이는 더욱 빛나 보였다. 그렇다고 군대라는 특수 상황을 원망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럼 저도 알아서 하겠습니다. 둘만 있다고 하대를 하란 말은 말아 주십시오"
정복은 힘든 땅파기를 자신이 하고 비교적 쉬운 안테나 설치는 권해병이 했으면 했다. 하지만 신병 권해병은 그걸 받아 들일 수 없다며 자신이 땅파겠다고 곡갱이와 삽을 챙겼다.
남쪽부터 3개의 안테나가 나란히 설치된 다음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담배를 빼 물었다.
"형수님하고 조카 보고 싶지 않습니까?"
"왜 안 보고 싶겠습니까. 순검 끝나고 지침 과업 들어가면 보고 싶어 미치겠습니다"
"군대 좆 같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을 시키니 말입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죄인걸....받아 들여야지...."
"그러게 말입니다. 빨리 정기 휴가를 받아야겠습니다"
두 사람은 피던 담배를 비벼 끄고 남은 두개의 안테나를 설치하기 위해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정복은 안테나 조립을 계속했고 권해병은 나머지 두개의 구덩이를 팠다. 4번째 안테나가 세워지고 5번째 안테나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이해병님 바위가 있는 듯 합니다. 다른 곳을 파는게 어떻겠습니까?"
정복은 안테나 조립을 멈추고 권해병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권해병으로 부터 삽을 건네 받아 땅에다 대고 힘차게 밟았다. 반쯤 들어가던 삽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길까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30센티나 판 것이 아까웠다. 정복은 권해병을 돌아봤다. 그의 얼굴엔 구슬 같은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다. 정복은 힘든 일을 떠 맡긴것 같아 미안했다.
"이제 형이 안테나 조립하십시오 제가 땅을 파겠습니다"
"아닙니다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하는게 작업의능률이 오릅니다. 제가 계속 파겠습니다"
"제가 한번 파 보고 싶어서 그럽니다. 형은 저쪽으로 가서 안테나나 조립하이소"
정복이는 권해병을 밀다시피 안테나 조립하는 곳까지 밀어내고 파다 만 구덩이에다 삽을 대고 힘껏 밟았다.
역시 들어가지 않았다. 반대편을 찔러 보았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정복은 삽을 놓고 곡갱이를 들었다. 곡갱이라면 파질것도 같았다. 손 바닥에 침을 뱉어 비비고 곡갱이를 어깨 뒤로 힘차게 들어 땅으로 냅다 찍었다.
콰아아아쾅~~~~~~~~~~!!
거대한 폭발음이 온 산하를 뒤 덮었고 쓰러진 4번째 북쪽 안테나 위로 기러기 한마리가 슬피 울며 날아가고 있었다.
-20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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