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782기 이경선

<해병이 되기까지>42부 잠수함과 황장엽 귀순,,

머린코341(mc341) 2017. 1. 15. 13:12

<해병이 되기까지>42부 잠수함과 황장엽 귀순,,


정확한 시기를 모르기에 순서에 관계없이 적을까 한다..
일병떄쯤 두번의 북한과의 심각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첫째는 96년 강릉무장공비침투,,,그때 당시 전군에 비상에 내렸지만 동해와 서해라는 차이점때문에
솔직히 크게 몸으로 느껴지는것이 없었다..가령 티비의 뉴스를 통해 들었을뿐,,


96년 11월쯤이었나?암튼내가 일병을 갓 달았을때고 그때 당시 고스톱이 한창 인기라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동해지 서해는 아니잔어,,"


뭐 이런 생각을 주로 했었던 같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무장공비침투사건은 참 많은것을 남겼다..


얼핏 듣기론 이 사건이 기네스에 올랐다는 말도 있었다...


최장기간의 작전시간,최대의 인원동원,최첨단 장비의 투입을 하고도 실패한 작전이었다고,,


또 다른 말로는 해병이 중대규모인가? 대대규모가 투입될거라는 말도 있었는데 육군에서 거절했다는 후문도,,,


최대의 인원이 투입되어 공비를 모두 소탕하지 못한 상태에서 해병이 투입되어 혹여 소탕이라도 한다면 육군의 위상이 땅에 곤두박질치기에 거절했다는 소문도 있었다,,,물론 이런 얘기들은 간간히 떠돌던 이야기므로 신빙성은 없다..


혹여 이글을 선,후배님및 타부대 분들이 읽는다면 오해없길 바란다..그냥 당시 떠돌던 이야기일뿐이니까..
내가 실제로 긴박한 상황을 느꼈던건 북한에서 황장엽씨가 귀순했을때이다..


실탄을 대체로 야간 근무를나갈시 지급되었는데 그당시 대한민국을 불바다로 만든다는 이야기때문에 분위기가 무지 살벌했었다...


내 기억으로는 한달가량 가면상태로 병기를안고 잤으며 항상 실탄을150발씩 휴대하고 다녔었다...처음 황장엽에 대한 대남방송이 나오고 그걸 맨 처음 청취하고 보고를 했던 선임은 휴가를 나갔다,,근무 잘섰다고^^


완전무장은 항상 꾸려진체 내무실중간에 오와열을 맞쳐 대기했으며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전투배치가 붙었었다...전투배치가 붙었을시 같은 교통호에 배치붙은 선임이 한마디한다..


"야,,경선아,,만약 전쟁이 났다고 치자,,지금 앞에서 총알이 날아오는데 너라면 앞으로 달려나갈수있겠나?"
"옛,,그렇습니다.."
"피~식,,지랄하네,,니같은새끼들이 총구 뒤로 돌릴놈이야.."
"아닙니다..달려 나갈수있습니다.."
"전쟁나면 위장복 지급이 되게?안되게?"
"잘 모르겠습니다."
"지급된다..대대에 가면 개인 위장복 전부 있다..전쟁시에만 지급하지.."
"처음 들어봅니다.."
"왜 전쟁시에 지급되는줄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해병은 땅개복 입고 싸울때랑 위장복 입고 싸울때 다른거덩^^,, 총알을 피하려고 대가리 처박고
있다가도 위장복 입히면 거의 미쳐서 달려나가지...ㅎㅎㅎ"
".......???"


이것 역시 근거있는 얘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황장엽씨 귀순하고 한달가량이 지난후 다시 부대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150발의 실탄을 탄창에 넣으면 무게가 상당하다,,,탄창꼿이에 넣으면 엑스반도가 밑으로 추욱~ 처졌으니^^


실탄을 다시 반납하기 위해 주말에 연병장에 판쵸우의를 깔고 소대장님과 일수선임의 선도하에 실탄 반납이 이루어졌다...소대원 전부가 실탄을 반납하니 판쵸우의에 실탄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거린다...


몇번의 실탄수량 확인이 끝난후 가면상태로 지내던 일을 회상하며 계속 신고있던 워커끈을 풀었다...이렇게 실무에서의 전쟁 분위기를 접하게 되었다..

4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