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전<2편> - 군예대의 활약
청룡부대를 파월할 때 해병대에서는 장병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봉사할 연예대의 필요성을 느꼈던 나머지 청룡부대에 종군할 연예인들을 급히 모집(신병자격으로)하여 제1진으로서 .5·6명의 가수와 10명 남짓한 뺀드맨을 여단본부 경비중대 병력의 일부로 편성하여 파월했는데, 그것을 효시로 하여 매년 교체병력을 파월할 때마다 새로운 군예대 요원을 모집하여 파월했다.
월남에 도착한 군예대 요원들은 주간에는 위문공연에 동원이 되고 야간에는 경비근무를 서느라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말이 위문공연이지 그들의 공연활동은 전투행위나 다를 바가 없었다. 소총과 악기를 휴대하고 철모와 방탄자켓을 착용한 몸으로 헬기를 타고 찾아갔던 곳은 사면초가와도 같은 소대진지나 중대본부였다.
그러한 곳에서 상병들의 향수를 달래며 노래도 부르고 신나는 연주로 흥을 돋구며 즉석 불고기식 노래자랑판을 열기도 했던 그들은, 때로는 갑자기 날아온 박격포탄이나 직격탄 때문에 목숨을 잃을 번한 위기를 맞기도 했고, 특히 월맹군의 구정공세가 있기 하루 전날 다낭 해변가에 위치한 장병휴양소에 도착했던 제3진 요원들은 다낭시와의 교통이 단절되고 식량이 떨어져 이틀 간을 전전긍긍한 상황 속에서 밀가루로 수재비를 끓여 먹으며 지내는 쓰라린 고초를 겪었다.
호이안지구로 이동한 후 전투부대 장병들의 단기(3박4일) 휴양을 위해 설치했던 그 다낭 해병휴양소는 약 30동의 대형천막과 주보(酒保) 및 매점 등을 갖춘 것 외에 영화상영과 연예 및 스포츠 등의 특별봉사활동을 제공할 수 있는 시설과 기재 기구 등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휴양소에는 10여 명의 군예대 요원들 외에 약간명의 해상구조요원들(특공대소속)과 공병, 통신, 수송병과 요원들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관리운영 주체는 특별봉사활동의 주역을 맡은 군예대 요원들이었다. 휴양소에서 근무하고 있던 군예대 요원들은 비단 휴양소 내에서의 연예봉사활동 뿐 아니라 다낭에 진출해 있던 항국흥행주식회사(쇼-단)의 협조를 얻어 다낭지구의 미군부대와 야전병원에 대한 위문공연과 대민위안공연도 했고, 때에 따라서는 그 쇼-단의 일부 연예인을 대동하여 청룡부대를 방문하기도 했다.
끝으로 군예대 요원들로서 활약했던 주요맴버를 소개하면 제1진 요원들은 뺀드마스터인 피피 김(김안영)을 리더로 하는 5~6명의 가수와 13명의 뺀드맨들이었고, 제2진에선 홍신윤씨(작곡가)를 리더로 하는 7~8명의 가수와 10여 명의 뺀드맨이, 제3진에선 오승일 하사관(뺀드맨)을 리더로 하는 7~8명의 가수와 10여 명의 뺀드맨이, 그리고 김훈과 임태순. 김선웅 등의 트리터스 보우컬팀을 주축으로 하는 10여 명의 가수와 뺀드맨으로 구성된 제4진의 뒤를 이어 파월이 된 마지막 5진에는 남진, 진송남, 태원, 이병진 등의 유명가수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4진과 5진의 리더는 제3진을 이끌고 갔던 오승일 하사관이 계속 그 자리를 지켰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傳統과 秘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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