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병영 일기 / 제12화 : 험난한 "연평부대" 입성기
약 3개여월간의 기갑학교 후반기 특과병 교육을 수료한 336기 기갑병 2진 7명의 해병들은 자대 배치를 위한 전출 인사명령을 받기 위하여 기갑학교 입학시 둘렀던 행정 지원 부서인 상무대 해병 파견대에 다시 둘러서 각자 임지를 통고 받았다.
5명의 해병은 '연평 부대'로 나머지 2명은 포항 1사단으로 전출 인사발령을 받았다.
5명의 해병들에 비해 달랑 2명의 해병들은 포항으로 가게 되어 무척 긴장을 하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숨가쁘게 달려서 각자 연고가 있는 고향이나 연고지에서 하룻밤을 쉴 수 있는 배려를 받았다.
나는 형님이 계신 구로동에서 군 입대후 5개여월만에 달콤한 잠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1977년 11월 20일 연평부대로 전출 명령을 받은 5명의 해병들은 약속 장소인 하인천역에서 만나 연평부대 전출을 위해 행정적인 지원과 수속을 관할 하는 월미도 해병 파견대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파견대 찾는 일이 또한 수월치 않았다.
우리들은 순간적인 판단 미수로 '해군 5해역사령부' 정문으로 잘못 찾아가 헌병들한테 기합이 빠졌다는 말도
되지 않는 헛소리를 들어가며 앉았다, 일어났다, 오리 걸음 등 각종 기합을 받고 '너의 선임 해병들은 이렇게 고생 하는데 너희들 아무것도 없냐'하면서 내심 금품을 요구하는 내색을 비쳐 우리끼리 의논해서 얼마간을 건네 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범죄를 단속해야할 헌병들이 금품을 갈취한 모습이니 참으로 아이러니컬 하여서 혼란스러움을 감출수 없었다.
그곳에서 통과의례를 마친 우리들은 그들의 친절한 안내로 해병 파견대로 제대로 찾아 가게 되었다.
해병파견대에서 신고를 마친 우리들은 그곳에서 또 몇일을 대기하게 되었다.
연평도나 백령도등 서해 도서 부대로 갈때는 기상 여하에 따라 뱃길이 열리므로 몇일에서 길게는 1주일 정도는 대기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우리가 대기하던 파견대는 연평도를 비롯하여 백령도 등 기타 도서부대 파견대도 같은 막사에 주둔하고 있어서 6여단의 대기자들과도 함께 생활을 했다.
나의 초, 중학교 동기 동창들 중에는 대부분이 해병 302기생들이 많다.
그때도 동네 친구이자 동창인 친구가 302기인데 휴가를 마치고 소속부대인 6여단 귀대를 앞두고 같이 대기대 생활을 했는데 동기 해병중 한 명이 그 친구에게 휴가는 언제 갈 수 있냐고 물었다가 졸병이 기합이 빠졌다고 혼줄이 난 경우도 있었다.
대기대 생활은 언제나 지루하기만 했다.
몇일을 대기 하다 드디어 우리는 그 유명한 '송도(개성)의 3절' 로 일컫는 절세가인 '황진이'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황진호'라는 여객선을 타고 '조미미'라는 여가수가 불렀던가 '눈물의 연평도'라는 노랫말에 나오는 연평도를 향하여 뱃길을 달렸다.
태어나서 3시간 이상 항해하는 첫 경험을 통해서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파도가 심하게 몰아쳐서 롤링은 너무 심해 갑판에서 바다를 향해 포효했던 그 기상은 간데 없고 배의 아랫층으로 내려가 다다미 방에서 파도와 싸우면서 때로는 오바이트를 하면서 그때 기분은 휴가를 보내 주어도 가지 못할 것 같은 심정을 가누며 험난한 '연평부대'의 생활을 예고나 하듯이 연평도에 그래도 무사히 입성 했다.
우리들은 헌병대의 간단한 검색을 필하고 마중 나온 작전 산하의 인솔병들의 안내를 받으며 역시 대기대 생활로 접어들어 해병대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여년의 연평부대 생활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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