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병영 일기 / 제11화 : "완벽한 해병 전차병" 만들기
기갑 학교 에서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는 보기 보다 쉽지가 않았다.
육군 논산 훈련소를 수료한 육군의 교육생들은 해병 훈련소를 수료한 우리보다는 훈련환경이 훨씬 자유스러웠다고 한다.
우리는 두발도 완전히 삭발인데 비해 스포츠 형태를 유지 하고 있는 등 생각도 자유로왔다.
그러므로 그들과 참 군인상의 논란이 애증이 갈등으로 심화 되었다.
60여명의 그들과 7명의 대결은 6.25 한국전에서 인해 전술로 임한 중공군과 U.N군과의 대결 양상과 비슷할 정도로 숫적으로 우리가 열세를 면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들에게 만만한 상대는 아니어서 그들도 우리를 마음대로 할수는 없었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물병' 이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구사할 때도 있는데 우리는 '땅개' 라고 맞 받아 치면서
기갑 학교에서 더 강한 '전차병'으로 만들어 지고 있었다.
가갑 학교 교육 중에는 '전차병의 밤' 이라는 행사도 갖었다.
인근 광주시내의 여고생들이 출연하여 합창, 중창, 독창, 피아노 연주, 악기 연주 등으로 고된 교육생들에게 위문 공연도 보여 주었고 재치있는 교육생들의 만담, 그리고 훈련생들이 모두 참여하여 벌이는 디스코 댄스의 시간을 보내는 등 흥겨운 여흥의 시간도 허락이 되었다.
기갑 학교에서의 이론 교육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고 우리는 실습 교육을 받기 위하여 광주 기갑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인근 장성군 담양 부근의 '비아 야외 교육 중대'로 이동 했다.
해병 신병훈련소에서 상남 야외 교육대로 이동 할때와 마찬가지로 교육 경은 열악 했다.
그때가 11월 초순경으로 한참 월동준비가 진행되던 기간이라 이동하자마자 야외 중대장은 우리를 집합시켜 놓고 기합이 빠졌느니 등 말도 되지 않는 엉뚱한 트집을 잡고 한참 얼차려 교육을 시켜 교육생들을 긴장시켜 놓고 난 후 월동에 필요한 물품을 마을에 가서 가져 오라고 명령했다.
우리는 대나무를 베어 오는 명령을 받고 마을로 진입해 대나무를 잘라오는데 개가 짖어서 혼줄이 났다.
교육생들에게 맡겨진 명령이 종료되고 중대장은 소주를 사다 교육생들에게 먹이고 등화관재등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밤새 몸을 흔들게 하여 스트레스를 해소케 하며 야외교장 이동 첫날을 광란의 밤으로 보내게 했다.
야외교장에서는 전차포 사격 훈련과 전차 조종 훈련을 병행하여 실시했다.
그 당시 전차 포탄 한 발 값은 쌀 한가마니 값이라며 사격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며 명중하는데 집중할 것을 교관들은 교육생들에게 주문했다.
전차포 훈련은 일반 사격 훈련에서 예비사격술 훈련이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 하는것 처럼 마찬가지로 승차 훈련과 사격명령 훈련, 장진 훈련, 조준 훈련 등이 지루하리 만큼 진행되었다.
전차포 사격시 나는 소음은 포병의 105mm포나 155mm포의 굉음과 비견되리 만큼 커서 귓가가 윙하는 소리가 나는것 같은 느낌이 오래 지속되었다.
사격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석별 점호를 마치고 취침에 들었다.
어쩌다 큰 소리가 나서 깨어 보니 교육생 중에 한명이 잠꼬대로 사격 명령을 '포수 철갑탄' 하니 이를 받아 다른 교육생이 '장진 끝'하니 이번에는 다른 교육생이 '쏴' 하니 또 다른 교육생이 '명중' 하고 외쳤다.
그야말로 잠꼬대 사격 훈련이 진행된 것이니 교육생들의 긴장감의 척도가 어느정도인가 상상이 되리라 여겨 지며 이는 실제 상황을 묘사한 것인데 선, 후임 해병님들은 이해가 쉽게 되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전차 조종 교육장에 당도하니 50t의 전차 무게를 감당못한 교육장 트랙은 거짓말 약간 보태서 거의 1m의 흑먼지로 뒤덮혀 있었다.
우리들은 이론 교육에서 거의 딸딸 외운 시동 순서 '조,주,마,마,가,시'즉 조종간을 중간에, 주차 브레이크를
풀고, 마그네틱 스위치를 on에, 마스타 스위치를 on에, 가속 페달을 충분히 밟고, 시동키를 on으로 놓고 전차를 움직여서 조교들의 구박을 받으며 몇일을 조종 교육을 반복했다.
전차 1대의 값이 당시 1억원을 홋가 해서 '주택복권 한장 일세'라는 노래까지 읊조리며 교육에 매진했다.
조종 시험까지 마친 후에 합격을 하므로 조종교육은 모두 종료됐다.
돌아 오는 길에 고속도로 주변의 육교위에서 광주 고속 고속버스 안내양들의 해말간 웃음을 보면서 교육대의 하루는 지나갔다.
1977년 11월 19일 광주로간 7명의 해병들은 3개월간의 육군 기갑학교 생활을 수료식을 마치므로 종료했다.
이제 기갑학교를 떠나 상무대 해병 파견대로 가서 기나긴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위한 전출 명령을 받고 각자 임지로 향할 것이다.
'★해병일기 > 해병336기 고상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록 병영 일기 / 제13화 : 중화기 부대 "해안포대' 적응기 (0) | 2017.08.19 |
---|---|
실록 병영 일기 / 제12화 : 험난한 "연평부대" 입성기 (0) | 2017.08.19 |
실록 병영 일기 / 제10화 : "광주"로 달려간 해병들(기갑 병과 후반기 교육 일기) (0) | 2017.08.18 |
실록 병영 일기 / 제9화 : "만남" 그리고 "이별" (수료식 그리고 그 이후 이야기) (0) | 2017.08.18 |
실록 병영 일기 / 제8화 : "왕의 귀환" 그리고 "천자봉" 정복 (0) | 2017.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