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병영 일기 / 제15화 : 이등병에게도 봄은 오는가?
그렇게도 훈련소에서는 선망의 대상이었던 작대기 하나 이등병이었지만 훈반기 교육등을 포함하여 모든 교육훈련을 종료하고 자대배치를 받은 이등병은 조국광복의 꿈을 꾸며 역설적 의구심을 드러낸 강조어법을 사용하며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고 절규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노래하던 시인 [이상화]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과연 이등병에게도 봄은 오는가? 라는 의구심은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은 선임 해병을 보면서 더욱 절망감으로 다시 찾아 올 찬란한 봄에 대한 회의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름은 기억할 수 없지만 기갑 병과를 받긴 했어도 전차부대에서 근무하지 못하고 보안대 서 보조대원으로 근무하다 전역 할 즈음에 모병과 부대로 다시 전입하여 제대하는 관례를 따라 우리 부대에 배치받아 최고 선임 해병으로 있던 병장이 한 분 계셨다.
그는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병영 생활을 통달해서 그런지 이병 계급을 달고 있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해 주셨다.
그러나 때로는 신임 하사관들과 마찰을 빚어서 그로 인하여 선임하사관이 대노하여 훈련소에 버금가는 단체 기합을 받게 하는 실수를 하여 후임들을 힘들게도 했다.
선임중에 상병 계급을 단 상병 오장 중에 한 해병은 군대 생활을 능수능란하게 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도서부대 특성상 육지로 외출 외박은 꿈도 꾸지 못하고 휴가는 정기휴가 2번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그는 집안의 어른들 상을 군대 생활하는 중에 거의 다 치룰 정도로 군 생활 중 특별 휴가를 많이 갔다 오는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자대배치 받은 신병은 선임들이 보기 좋지 않다고 선임들 직권으로 1계급 특진을 시켜 주었다.
일명 마이가리 일병이 되는 것이다.
병들 사이에서는 마이가리 일병은 묵시적 관행이었다.
병뿐만 아니라 하사관들도 마찬가지다.
하사관들 중에는 기수가 후임이 먼저 승진을 해서 중사 계급을 달고 있으나 기수가 선임인 만년하사들을 선임으로 예우해 주는 것도 관행이었다.
1978년 그 해 겨울은 혹독스럽게 추웠다.
눈은 엄청나게 많이 내렸다.
우리 부대는 고지대에 위치하여 부대 본부로 식수및 주,부식을 수령하러 갈려면 무릎 정도로 바람에 날라와 쌓여 있는 눈 청소를 해야만 했다.
담당 도로와 눈 청소는 봄을 기다리는 신병들을 진짜 해병대로 단련 시키기에 충분한 과업이었다.
1978년 2월 1일 드디어 이병에서 6개월 만에 마이가리 일병을 마감하고 정식으로 일병으로 진급했다.
계절은 그렇게도 요원하기만 했던 봄바람이 불고 산야마다 나무에 꽃이 피고 나뭇잎이 움을 트고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봄을 맞이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가득찼던 겨울을 이겨내고 강한 바다 사나이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그해 5월 전차진지마다 아카시아 꽃이 만발했다.
진한 아카시아 향에 취했고, 어니언스라는 그룹에서 솔로로 독립한 가수 이수영의 "창 밖에 낙엽 지고 그대 떠나가면 허전한 이마음을 달랠길 없다오...."로 시작되는 [하얀 면사포] 인가라는 노래에 취하여 이등병에게도 좀처럼 올 것 같지 않은 봄은 여지없이 돌아와 첫번째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찬란한 봄을 통하여 전역의 그 날에 대한 희망의 꿈을 꾸며 실록의 계절, 정열의 계절 여름은 어느새 병사의 문턱까지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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