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336기 고상호

실록 병영 일기 / 제17화 : 상병 시대

머린코341(mc341) 2017. 8. 20. 13:44

실록 병영 일기 / 제17화 : 상병 시대

상병 시대

 

뜨거운 여름날 해병대에 입대하여 혹독한 첫 겨울을 거치면서, 하늘 같은 선임 해병들을 통하여 청동조각같이 단련된 초보 해병도 찬란한 봄을 거쳐, 한 치의 쨤도 없이 시간은 흘렀다.

 

거꾸로 매달려도 국방부의 시계는 돈다는 훈련소 시절부터의 잠재의식 속에 내재해 있던 만고불변의 진리는 첫 휴가를 다녀오고 나서부터 더 가속도가 붙었다.

 

1978년 10월 1일 일병 계급을 단지 8개월 만에 드디어 상병으로 진급했다.

 

상병, 작대기 3개,  별것 아닌것 같이 보이지만, 실무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의 계급이다.

 

밑으로 갓 전입한 신병으로부터 몇 기수 차이가 나지 않은 일병 마루봉까지 상병의 임무는 그들을 유효 적절하게 통솔하여 부대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막중한 임무가 쥐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위로 왕고참 선임들과 병장들에게 지적 당하지 않게 처신 해야 할 참으로 어려운 위치에 서 있으므로 군대 생활 중 가장 어려운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다행히 내 밑으로 338기 후임이 4명이 있어 그들의 지원을 받아 무난히 상병 시대의 서막을 열게 되었다.

 

[군대는 작업으로 시작하여 작업으로 끝난다.]

 

연평부대는 도서부대라는 특수성이 있어 계속되는 훈련과 경계근무와 더불어 작업이 많은 부대였다.

 

선임 해병들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각종 교통호의 유지 관리 차원에서의 작업은 물론 신규교통호 구축을

비롯하여, 전차부대의 특성상 전차진지 작업도 끝이 없이 진행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 부대는 고지대에 위치해 물이 귀했다.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저지대에 위치한 우물에서 후임 해병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5 갈론 통으로 물을 길어 나르는 것이 조, 석별 과업으로 큰 과업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선임들이 머리 감고, 세수하고 나면 물은 어느새 고갈 되었다.

 

그래서 식수의 원활한  확보를 위하여 부대 중간 지대에 우물을 파기로 했다.

 

주로 정상 과업이 없는 주말 오후부터 일요일까지에 걸쳐서 집중적으로 진행되었다.

 

다행히 물이 잘 나와서 힘든 만큼  보람을 느꼈다.

 

주위의 돌을 주워서 둑을 쌓고 그럴듯한 우물을 완성하여 식수로는 사용 할 수 없지만 세수물, 청소 용도 등으로 유용하게 사용했다.

 

물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후임 해병들의 노력도 그만큼 줄어 들었다.

 

상병 이하의 해병들은 운동 삼아 새로 판 우물로 뛰어가 세면을 하고 오기도 했다.

 

억새풀 꽃이 해풍에 휘날리던 가을 날이라 여겨지는데 1978년 그해 가을에 MBC 문화방송에서 방영했던 대학 가요제는 기존 가요에서 느낄수 없는 신선함과 풋풋함이 오롯이 녹아 있는 주옥같은 노래들이 경연을 벌여 당시 인기 사회자였던 이수만의 사회로 진행 되었는데 썰물의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가 대상, 노사연의 "돌고 돌아 오는 길"이 금상을, 배철수가 기타와 보칼로 참여한 활주로의 "탈춤"이 은상을, 명지대생 심민경(심수봉) 의 "그 때 그사람"이 동상을 차지 했는데, 그해 라디오와 티비는 심수봉의 그 때 그사람이 도배를 하듯이 방송이 되었다.

 

힘들고 고된 작업을 하는 중에서도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때로는 새로 전입한 후임들의 청아한 노래 소리를 들으며 심신을 달랬다.

 

그 때 전입 한지 얼마 안된 김원기 후임 해병의 노랫소리는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나는 돌아 갈테야 나는 갈테야 내 어릴적 놀던 내고향 뒷동산에 뻐꾸기 노래 부르며 잊을 수 없는 내고향......."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나는 아직도 그 노래 제목을 알 수 없다.

 

그렇게 그 해 나의 상병 시대는 무심히 흘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