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가는 최강해병대(4-4. 도전 극복-적응력)
제 4장
挑 戰
제 4절-----도전 극복
지휘관은 모든 부하들에게 확실하게 업무수행 절차를 숙지시키고 부하들이 자유롭게 찾아와서 충고와 건의를 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어야 한다.
1. 적응력(Adaptablility)
적응력은 제반 마찰의 요소와 마찰이 미치는 영향을 극복하는데 핵심이 되어 왔다.
융통성이란 단어와 동의어로 쓰이기도 하는 적응력이란 단어에는 혁신정신이 내포되어 있다.
해병대는 장차전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전술, 부대구조를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해오고 있다.
실제 미흡한 분야는 계속해서 보완되어 왔고, 부대구조는 발전적으로 개편되어 왔으며 조직의 기능과 유용성 유지를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적응력은 해병대원들이 마찰로 점철될 미지의 어떠한 환경에서도 대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해병대 지휘관들은 타군의 어느 지휘관보다 적응력이 뛰어나다.
그들이 가진 원정지향성은 단순히 현 주둔지를 떠나 다른 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하거나 사전에 준비된 계획과 절차에 따른 단순한 임무수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해병대 지휘관들은 그들이 배치된 그 어느 곳에서라도 주어진 환경과 임무에 따라 적절히 적응하면서 작전을 실시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다.
어느 한 지휘관은 전투에서 승리를 위한 필수 요소는 "주도권(Initiative), 창의성(Resourcefulness), 정교함(Adroitness), 그리고 임기응변(Improvisation)"이라고 하였다.
이는 적응력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표현이며 해병대원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이미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왔다.
어떠한 기상이나 지형에서도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 해병대가 가지고 있는 적응력의 전통은 "어떤 것이든 해내고야 만다(Getting things done)"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해병대는 경우에 따라서는 예규, 전투시행규칙 또는 교리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응력이란 평상시에 산과 강과 바다, 절벽 그리고 하늘에서 열심히 훈련을 실시하는 것도 "자연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한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즉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서 훈련을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자연에 대해 그리고 자신을 낮추고 적응시키는 것이야 말로 이기기 위한 적응력의 기본적인 철학적 기조임을 이해해야 한다.
김일성고지 전투에서 제1전투단 3대대 9중대 1소대 선임하사관 김복현 이등병조(현계급 : 중사)는 난공불락의 적요새지를 공격할 방법을 모색하던 끝에 임기응변으로 탁월한 기지를 발휘하여 적의 고지를 향하여 진두에 서서 "저 놈들 도망간다. 돌격 앞으로!"라는 함성으로 지칠대로 지쳐있는 소대원들에게 최후의 돌격정신을 발휘케하여 백병전 끝에 김일성고지를 재탈환함으로써 펀치볼 장악에 결정적인 역활을 하였다.
사막의 방패 작전시 미해병대가 숙영시설을 확장해감에 따라 중대한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는데 그것은 제반 군수 보급품을 내륙 깊숙한 곳까지 수송하는 것이었다.
교리에 의하면 양륙항으로부터 50~80km 이상 이격된 곳으로의 수송지원은 곤란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교리상의 거리보다 2~3배나 먼 곳에 숙영지가 위치한 상태에서 미해병대 군수 지원본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다소 비정상적이기는 하나 매우 실용적인 조치들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차량의 형태에 관계없이 가능한 한 많은 수의 민간트럭을 임대하여 수송작전에 투입하기로 한 것이었다.
'Saudi Motors'라고 명명된 이 수송전대는 1,400여대가 넘는 차량을 보유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50여대의 10톤 로리, 200대 이상의 버스, 100여대의 렌탈 승용차 그리고 연합국에서 기증한 승용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차량이 동원되었다.
미해병대 군수교리에 명시된 거리를 훨씬 넘어 원거리에 군수기지를 설치할 수 있었던 것은 지휘관들의 정교한 사고력에 의해 고안된 이 수송전대의 능력이었다.
지상기동부대의 전술 변화에 부응하여 전투근무지원지역을 새로운 보급로를 따라 이동시킴으로서 군수지원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부상자 후송이나 공중수송을 위한 비행장 시설도 없던 곳이었으나 Mishap 항과 Jubayl 항으로부터 각각 170km와 35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Al Khanjar'(아랍어로 '단도')군수기지가 작전개시 14일 후 사막 한 가운데에 설치되었다.
기지 설치작업이 끝났을 때 이기지 주위에는 총 38km에 달하는 방벽이 구축되었고, 이기지 안에는 미해병대 역사상 가장 큰 탄약 보급소가 설치되었으며 총 부지 면적은 768에이커로 151개의 작은 구획으로 나뉘어져 사용되었으며 5백만 갤런의 유류를 저장할 수 있었고 14개의 수술실을 갖춘 야전병원도 설치되었다.
또한 5,700피트 길이의 흙으로된 활주로 두개를 설치하여 C-130 항공기의 이착륙도 가능하게 하였다.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은 해병대가 지닌 중요한 특징의 하나이다.
위의 경우에서와 같이 각기 종류가 다른 수백대의 차량 장비를 조화있게 통합하여 도저히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거리까지 이동시켜 사막 한가운데에 하나의 도시를 건설한 것은 말 그대로 꿈을 현실로 실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육동욱 소위는 제1연대 3대대 11중대 소대장으로 1951년 4월 12일부터 28일까지 실시한 화천지구 전투에 참가하였다.
중공군의 대규모 춘계 공세 감행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철수작전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제1연대가 철수를 개시하자 3대대가 연대를 안전하게 철수를 시킨뒤, 11중대는 3대대와 미해병대 대대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엄호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 당시 11중대장은 부상을 당해 후송됨으로서 선임장교인 육동욱 소위가 중대장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육동욱 소위가 지휘하는 11중대는 인해전술로 파상공격을 해오는 중공군을 저지하면서, 대대와 통신두절상태의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자 중대에 파견중인 미 해병대 관측하사관 라이스 상사에게 지시하여 곡사포 사격지원을 받아 접근신관(VT탄)으로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조명탄 사격지원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적과 교전하여 격퇴시켰다.
이 전투결과 아군의 피해는 소수인 반면 중공군의 피해는 실로 엄청났으며 제1연대와 미해병대 대대는 북한강 지역으로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었다.
가능한 방법을 찾아내어 임무를 완수해내는 능력은 해병대의 표상이다.
모든 해병대원들은 이 표상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더욱 발전시키며 우리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해병대 사령관 글 > 22대사령관 전도봉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앞서가는 최강해병대(4-4. 도전 극복-분권화) (0) | 2017.08.31 |
---|---|
앞서가는 최강해병대(4-4. 도전 극복-혁신) (0) | 2017.08.31 |
앞서가는 최강해병대(4-3. 신체적 도전) (0) | 2017.08.31 |
앞서가는 최강해병대(4-2. 도덕적 도전) (0) | 2017.08.25 |
앞서가는 최강해병대(4-1. 도전-마찰) (0) | 2017.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