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들의 이야기

대민지원 가서 장가갈 뻔

머린코341(mc341) 2017. 10. 2. 08:02

대민지원 가서 장가갈 뻔


이OO님 (대구 수성구)


1986년 3월 26일 대청마루에서 파자마바람에 빨리 군대 가라고 손을 휘저으시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포항 해병대 훈련소에 입대를 하고 전반기, 후반기 2군 사령부에서 운전교육 12주를 수료하고 포항에 해안 공병 운전병으로 자대를 배치 받고 얼마 있으니 추석이라 각 소대에서 이때까지 나온 맥주쿠폰을 모아 관상용으로 맥주를 갖다놓고 선임해병님들의 소주는 뒤에서 컵에 따라져 나오고 있었고, 본인의 아버지 517기 예대철 해병님께서


예해병

     “야. 막내야 노래 한곡 해봐.”

    “예.”


그때만 해도 주현미씨 메들리가 온 나라에 울려 퍼지고 있었고 분위기와 때를 맞추어 ‘0시의 이별’ 을 한곡 부르니


예해병

    “야. 인마 이거. 노래 죽이는데? 막내 니는 지금부터 노래만 부르면 된다.”


그날 파티가 끝날 때까지 노래를 불러야했습니다.


얼마 뒤, 팀스프리트 훈련이 되어 근무인원만 제외하고 전부 상륙 훈련에 참가했고 하루 종일 밥 먹는 시간 외에는 말뚝근무를 서야만했습니다.


근무서면서 할께 딱히 없고 해서 아침부터 점심 전까지 메들리를 연습했고 점심 먹고 저녁까지 메들리를 연마했습니다.


TS가 끝나고 모심기 대민지원이 있었는데 그때 예대철 해병님이


예해병

    “야! 이성우! 니는 대면지원 나가면 논 주인을 어떤 사람을 따라 나가야하는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예해병

    “자슥아, 논 주인이 몇 명필요하다고 데리러 나올 때 논주인 얼굴을 잘 봐라. 코가 빨간 사람을 따라 나가야 술을 많이 얻어먹고 오는거다. 알겠나?”


대민지원 당일 논바닥에 200명 정도가 쭉 앉아 있으니 논 주인이 나오셔서 우리는 열 명 두 번 째 논주인, 세 번 째 논 주인이 인원을 데리고나가고 네 번 째 논 주인이 나오셨는데 바로. 그분이 코가 빨간 그분이 나오셔서


논주인

    “우리 논은 쬐매해서 4명이면 된다.”


그러자. 여러 해병님들이 서로 가겟다고 일어나니 예대철 해병님이 병으로서는 최고선임이라 벌떡 일어나더니


예해병

    “다들 제자리에 앉아!” 고함을 치시더니 “내가 직접 뽑는다!”


저하고 2명 더 지명을 해서 4명이 논 주인아저씨를 따라가니 벌써 논에 막걸리 한말에 지지미에 진수성찬이 있었습니다.


주인께서

논주인

    “우리 논은 1시간만 하면 되니까, 지금 막걸리 다 먹고 모심기 하자. 알긋나?”


우리들이야 좋아서 한말 다 먹고 고향이 의성인 해병님이 이정도 논은 혼자심어도 1시간이면 다 심으니까 다 놀고 계십시오.


먼저 논에 들어가서 모심기를 시작하니


“야 .이성우 니는 밖에서 노래만 부르면 된다. 노래 일발 장전!”


그때부터 메들리를 쉴새없이 불렀고 한 시간 정도 부르고 있으니 모심기가 끝나고 아주머니께서 또 막걸리를 가져오셔서 밖에서 한잔하고 있으니 논 주인께서


논주인

    “이해병~ 노래 잘하네~ 얼굴도 그만하면 됐고 키도 그만하면 됐고 자네 고향이 어디고?”

    “예. 대구입니다.”

논주인

    “글나? 내 딸이 대구서 대학을 댕기는데, 자네를 꼭 소개시켜 주고 싶다.”


저의 모교 대구공고 바로 옆에 경북대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논주인

    “점심 먹으러 집에 가서 우리 딸래미 사진 보여주꾸마.”

    “근데 어르신 따님이 저를 만나주겠습니까?”

논주인

    “아이다. 우리 딸은 엄마 아부지 말은 한번도 어긴 적이 없는기라.”


야~ 군대에서 대민지원 나와서 장인장모님도 만나고 장가도 가고 기분이 좋아서 노래 한곡 더 뽑고 집으로 점심 먹으러 대문을 들어가는데, 아무리 한문을 몰라도 본인 성 李짜는 알아 보겠데요.


쫌 찝찝하데요. 마음이요. 촉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집에 가서 멍석을 깔아놓고 딸내미 앨범을 다가져 나와서 사진을 보여주는데 진짜 예쁜 겁니다. 옆에 선임들이


선임

    “짜슥 복이 터졌구나~ 장인장모님한테 큰절 한번 드려라~”


해서 큰절도 한번 드리고 했습니다.


논주인

    “근데 자네, 어디 이씨고?”

    “예. 경주 이씨입니다.”

논주인

    “아 그래? 본은 어디고?”

    “익제파 입니다.”


장인께서 갑자기 장모님을 부르시더니


논주인

    “보소, 이 사람이 우리하고 동성동본이네. 이거 안되겠제?”

카니 장모님께서도


아주머니

    “아이고 안 되지요!”


그때부터 그 친절하신 두 분께서는 여러 해병들과 술 드시고 계셨고 혼자서 술을 먹고 있으니 논 주인께서 옆에 오시더니


논주인

    “진짜로 자네하고 잘해 볼라캤는데, 이래돼서 미안타. 그래도 외출나오거든 집에 놀러 온나. 술과 밥은 줄게.“


하시데요. 그날 얼마나 괴롭고 서글프던지 술을 많이 마셔서 우째 귀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음날 쫄병이 선임들 모시고가서 취해서 들어왔다고 얼마나 깨지고 기압 받고 했는지 모릅니다.


다 지나간 일이지만 기억한편에 소중이 남아있네요.


그때 그 아가씨랑 잘했으면 지금 집사람 행동이 좀 느려 터져서 그렇지, 예쁘고 이해심 많은 박인숙씨를 만나지 못했겠지요

'★해병일기 > 해병들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이름은 맹아더  (0) 2017.10.02
막걸리 총력전   (0) 2017.10.02
열외는 아무나 하나!   (0) 2017.10.02
추석날 도끼만행사건   (0) 2017.09.30
철부지(돈키호테) 소대장   (0) 2017.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