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들의 이야기

열외는 아무나 하나!

머린코341(mc341) 2017. 10. 2. 07:28

열외는 아무나 하나!


경기도 오산시 오산동 / 김주영


“빰~♪ 빰~♪ 빰~♪ 월남소식~”


극장 뉴스 시작 전 월남 전쟁 파월 한국군들의 활약상을 소개하던 그 프로.


1970년대 초 혈기왕성했던 본인은 남산 후암동 해병대 사령부에 지원, 한 번 불합격을 거쳐 1972년 6월 해병 제 251기로 입대합니다.


1972년 여름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국내 최초 발병된 ‘아폴로눈병’을 아실 겁니다. 예외 없이 우리 훈련병들도 자고나면 대 여섯 명씩 환자가 발생하였기에 조별과업시작 전에 조교 및 소대장들이 병사들을 점검하였죠.

 

환자들은 야전천막 속 야전침대에 누워 쉬면서 모든 훈련이 열외 되고, 하는 일이라고는 식사하고 약 먹고 흐르는 계곡물로 식염수에 눈 씻는 게 전부더군요. 전염이 심해서 격리시킨 거죠.


‘그래 바로 저거다! 나도 아폴로눈병에 걸리면 열외다!’


저는 동료 환자훈련병에게 몰래 접근했습니다.


나 - “야~ 김수병, 오늘 밤 화장실에서 눈곱 좀 다오. 내가 덕산 밀빵 다섯 개 사다줄게. (밀가루에 소다를 넣어서 부풀리고 콩 몇 개 얹어 넣은 찐빵으로 요즘도 국도 지,정체 시에 도로에서 판매들을 합니다.

당시 1개에 10원으로 야외훈련소 주변 아주머니들이 밤이면 철조망 근처에서 몰래 판매했으며 이 아주머니들을 일명 ‘오키나와특공대’ 라 고도 했습니다)

전우 - “야! 임마~ 눈알이 빠질 듯이 무척 아파! 쓸데없는 짓 말아!”

나 - “아파도 내가 아플테니 신경 쓰지 말고 눈곱이나 큼지막한 걸로 아꼈 다가 순검 끝나고 취침 전에 만나서 주기나 해 임마!”


덕산 밀빵 다섯 개를 사서 해병창고(상의 옷 속)에 구겨 넣고 김수병을 화장실에서 만나 건네주고 그 귀한 눈곱을 받았습니다.


영락없이 자연산 생굴만한 큼직한 눈곱을 조심스럽게 가지고 잠자리에 들어 눈 속에 김장김치 속 넣듯이 집어넣고 취침.


설레는 마음으로 기상, 계곡으로 집단이동, 세면을 하는데 야외훈련장이라 거울도 없어 손으로 눈을 더듬으니 그 귀한 눈곱이 없어졌습니다.


급하게 찾아보니 뒷목덜미에 말라서 달라 붙어있고, 눈도 아프지가 않았습니다. 눈이 붓고 빨개지고 아파야 하는데 해당되는 증상이 전혀 없는 겁니다.


여하튼 저는 그 눈곱을 조심해서 주머니에 넣고는 조식 후 오전 과업 정렬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소대장 왈,


소대장 - “야! 눈병 걸린 놈 있으면 나와!”


저는 잽싸게 그 눈곱을 얼른 눈에 비벼 넣고는 손을 들었습니다.


소대장 - “야! 저 자식 데려와!”


조교안내에 따라 소대장 앞에서 오만상을 찌푸리며 눈이 아픈 척을 하고 있는데,


소대장 - “뭐야~ 이 자식, 유난히 인상을 쓰고 그래? 어느 쪽 눈이야 임마? 어디 좀 봐?”


하며 소대장이 이마를 툭 치시는데 그 귀한 눈곱이 그만 발 아래로 툭 떨어지는 게 아닙니까!


얼른 주으려고 하는데 소대장의 호령이 떨어집니다.


소대장 - “아주 대단한 요령꾼 탄생하셨군! 야! 임마! 환자 눈곱 얻어다 비 빈다고 아폴로가 되냐? 조교! 이 자식 특별훈련 시켜!”


결국 저는 그날 죽도록 얻어터지고, 보너스로 특훈까지 받았습니다.


아니 눈만 마주쳐도 전염된다는데, 세상에 자연산 굴만한 그 세균덩어리를 눈에 넣고 잠을 잤는데도 멀쩡한 건 뭡니까?


또 한 번은, 신병훈련을 마치고 노란 작대기 하나로 진급, 훈련병이 아닌 ‘이등병’이 되어 포병으로 병과를 받아 포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훈련소는 양반이었습니다. 훈련은 고돼도 동기들과 부비며 생활하니 심적으로는 위로가 되었죠.


포항에서의 105mm 곡사포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훈련은 요령도 피울 수 없이 정말 실무에 필요한 알찬 훈련인 덕에 선임수병들과 같이 내무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1개월 훈련이 끝나면 발령을 받아 소속부대로 배치되는 거죠.


우리들 약 30여명을 앉혀놓고 병장 고참이 말했습니다.


선임 - “사회에서 구두 닦아 본 놈 있으면 나와! 잘 닦으면 기본교육 이외 에는 전부 열외다. 내무실에서 수병들 구두나 닦고 잔심부름이나 하 면 된다.”


기본교육은 곡사포 기능, 재원 등으로 꼭 필요한 교육이니 받아야 하지만, 조별 석별과업, 집합, 순검준비 등 정말 고된 일과를 열외 시켜 준다는데 어찌 이 기회를 놓칠 수 있겠습니까?


“저요!” “저요!”


영등포에서 닦았다는 놈, 전주에서 닦았다는 놈, 그리고 청량리 역 앞 대왕코너에서 닦았다는 나. 이렇게 전부 세 놈이 경쟁에 나섰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촌스러운 신사화같이 생긴 장교화 한 켤레씩과 까만 구두약과 입고 버린 러닝셔츠 한 장, 그리고 구둣솔이 주어지고, 비법이 공개되면 안 된다고 각각 격리 되서 닦았습니다.


사회에서 쳐다 본 경험은 있어서 솔로 닦고 약을 바르고 러닝셔츠를 두 손가락에 말아 끼고 침을 적당히 뱉어가며 천천히 문질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문질러도 광택은 절대 나지 않고 그나마 있던 광택도 없어지고 때 일어나듯이 일어나 구두코가 엉망이 되었습니다.


“세 놈 집합!” 심사 결과 제일 못 닦았다고 판정. 거짓말한 벌로 연병장 완전군장 10바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열외는 아무나 하나?


실무에서도 이런저런 추억을 새기며 32개월 15일 무사히 마치고 해병병장 전역했습니다.


제 251기 동기라야 250명이 전부인데 배치된 후, 하도 귀한 기수라서 그런지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백발이 성성한 초로의 신사들이 되었을 모습이 그립습니다.


두 아들도 제 뒤를 이어 큰아들은 해병대, 막내아들은 공군으로 만기 전역하여 사회일꾼으로 성실하게 잘 살고들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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