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들의 이야기

개미 해병의 날아간 꿈

머린코341(mc341) 2017. 9. 29. 15:07

개미 해병의 날아간 꿈


유경렬


학창시절부터 ‘대한민국에는 단 2개의 군대만이 존재하니 하나는 해병대요, 하나는 나머지 군대라.’ 라고 생각할 만큼 해병대에 대한 나의 사랑은 확고했었고 대학입학 후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내 운명처럼 해병대에 지원하였다.


10대1에 가까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드디어 1992년 3월18일, 내 머리는 매서운 상륙돌격형 머리가 되어있었으며 내 눈에는 레이저가 나오기 직전이었다.


아기 호랑이가 처음으로 사냥을 배우며 고기 맛을 알듯 어느덧 내 눈과 두 주먹에도 해병대의 포스와 전투력이 무르익을 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위로휴가 4박5일이 찾아왔다.


‘으흐흐... 다 죽었어!’


보여주리라 내 모든 친척과 친구들 그리도 대한민국 수도 서울 시민들에게 거친 포항바다를 누비던 해병687기의 용맹함을.


짧은 시간동안 명동, 대학로, 신촌 등. 서울곳곳에 나의 흔적들을 남기며 지내니 어느덧 복귀 날 아침이었다.

내 몸은 어느덧 천근만근 무거웠고 왠지 모를 공포와 두려움에 그 맛있던 어머니의 밥상은 모래알과 잡초로 느껴졌다.


6시까지 복귀였으니 늦어도 11시에는 버스를 타야지만 포항에 도착해서 선임들의 심부름을 하고 마지막으로 사회의 하얀 쌀밥을 한 그릇 먹고 부대 앞 다방의 오리지날 다방 커피 맛도 보고.


아! 그러나 한번 먹어본 고기 맛은 못 잊는 법, 밤낮을 가리지 않고 느꼈던 사람들의 향기와 음주가무. 세상의 달콤함은 조금이라도 서울 하늘에 나를 머무르게 하고 싶은 욕심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욕망이 그 엄청난 결과를 불러올 줄은 상상도 못하면서.


난 결국 개미 해병(해병대에선 쫄따구를 개미에 비유함)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큰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바로 비행기를 타고 복귀하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병장 4호봉 이상이나 탈 수 있다는 김포와 포항을 오가는 비행기를.


과감히 전화로 예약하고 어머니의 걱정스러움을 잊은 채 느긋하게 밥을 먹고 대학로로 향하고 있었다.


뭇 여성들의 향기를 느끼며 친구들과 느긋한 점심을 먹고 간단히 맥주한잔을 한 후, 무슨 전쟁이라도 나가는 것처럼 비장한 각오와 눈빛으로 친구들을 제압하며 공항가는 리무진에 몸을 실었다.


그때가 오후 3시, 4시30분 비행기니까 시간은 충분하리라.


난 연이은 음주가무에 지친 몸을 잠시 안락한 리무진 버스에 맡기고 잠이 들었다. 기사님의 소리에 눈을 뜬 곳은 김포공항 정거장.


이제 다시 개미해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긴장감에 옷을 다듬고 눈빛을 살리며 버스에서 내리는 그 순간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이건 무슨 분위기? 그 순간 하늘에서 내 코로 떨어지는 작은 빗방울. 아뿔사! 하는 순간 ‘설마 요즘 비행기가 얼마나 성능이 좋은데 이정도 날씨로.’


해병대 특유의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예약창구로 가는데, 오 마이 갓!


내 눈에 보이는 선명한 안내판 <포항지역 악천후로 포항공항 결항입니다.>


내 다리는 이미 후들후들거려 서있을 수가 없었고 내 눈은 초점을 잃어버려 사물을 볼 수가 없었다.


‘이건 꿈이야. 그래 꿈일거야? 자, 다시한번 눈을 감고 꿈 깨라’ 하면서

‘눈을 떠보자 시작!’ 역시 여기는 공항이었다.


비는 어느새 폭우로 바뀌어 이제는 김포공항 착륙도 어렵다는 안내 공고가 떠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누군가가 내 목숨을 고통 없이 가져가 주시기를 기도할 뿐.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그래, 난 신병이야. 첫 휴가인데 중대장님 이하 많은 고참들도 이해해 주실거야. 그럼!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막내들은 항상 열외잖아 해병대 선임들이 얼마나 정이 많은데 그래 나는 귀염둥이 막내잖아’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가며 공중전화로 다가간 후 아주 맑고 순진한 목소리로 당직사관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 “필승! 해병687기 OOO 입니다!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뜨지 못해 좀 늦 을 것 같습니다. 버스를 타고 새벽이라도 가겠습니다.”


‘으흐흐. 이 날씨에 새벽이라도 가겠다고 했으니 나를 대견하게 생각하실거야. 아니다. 이 날씨에 위험하니 1박 하고 내일복귀해라 라고 하겠지? 그러면 “아닙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꼭 오늘 중 복귀하겠습니다.” 라고 해야지’ 하며 치밀한 답변을 준비하던 중,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짧고 나지막한 목소리


간부 - “죽고 싶니 XXX, 1초라도 늦으면 바다에 묻는다. XXX!

나머지는 알아서 생각해!”


난 여기가 지옥인가 인간세계인가 도저히 구분이 되지 않았다.


‘오~! 하느님 왜 이러시나요? 저 이제라도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이것이 꿈이라고 해주세요.’

난 그냥 바닥에 앉아버렸다. 이미 내 운명은 내 손을 떠났다.


바로 그때 멀리서 보이는 해병위장복의 4명의 군인들. 우리부대 옆에 있는 공병대 병장 선임들이었다.

선임 - “야! 개미! 너도 비행기 타려고 했냐? 야~ 세상 좋아졌다.


이병이 비행기를 타고. 이 사실을 북한군이 알면 바로 내려오겠다.”


이미 내 머리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에 별 느낌도 없었다.


선임 - “야! 우리 택시 타고 갈건데 합류해라.”

‘택시라고? 포항까지?’


역시 해병선임은 화끈했다. 최초 요금의 반값으로 협상을 마치고 2대에 나눠서 우리는 그렇게 폭우가 쏟아지는 김포공항을 출발해서 포항까지의 긴 여정을 시작했다.


‘택시기사님도 해병대 출신인가?’ 그 운선솜씨는 가히 F1 드라이버를 능가하는 현란한 솜씨였다. 그것도 이 폭우 속에.


‘그래 어차피 난 이미 죽은 거야. 포항바다에 빠져죽느니 차라리 교통사고로 죽자. 그래야 보상금도 나와서 부모님께 마지막으로 효도도 할 수 있지.’


바로 그때, 역시 해병대의 화통함을 보여주시는 선임의 한마디


선임 - “형님 이 택시에 노래방시설 없어요?”

헉!


선임 - “너무 지루한데 노래나 하면서 가죠?”

하면서 가방에서 꺼내놓은 건 수많은 맥주 캔들.


그 후로 우린 장장 3시간을 그 빗속에서 노래와 술을 벗 삼아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느덧 내 손에도 아까의 떨림은 없어지고 꽉 쥔 마이크가 잡혀있었다.


현란한 음주가무 후 얼마나 잤을까?


어느덧 캄캄한 밤길을 뚫고 도착한 부대정문 우리 부대는 가장 큰 사단이어서 정문이 유난히 큰데 그날은 평상시의 10배는 더 커보였다.


아마 사람이 죽어서 지옥에 가면 지옥문이 저리도 크고 무섭겠지?


이제 내 목표는 부대 가서 죽더라도 헌병초소는 통과하자 1차 목표였다.


‘그래도 중대 문제니까 영창까지는 안 보낼거야.’


아무리 헌병이라도 해병은 기수니까 선임들만 따라가면 정문은 통과하겠지?


바로 그때 들려오는 굵은 목소리,


선임 - “야! 개미! 너는 어떻게 들어갈래?”


‘어떻게 라니?’


나 - “정문통과한 후에는 알아서 가겠습니다!”


정문통과는 당연히 선임들 몫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남기며 대답한 후 들려온 한마디.


선임 - “야! 개미가 겁도 없이 비행기 타려고 한 게.

오늘 같이 왔으니까 그나마 여기서 봐준거야 아니었으면...”


오 마이 갓!


그렇게 선임들은 그 무시무시한 헌병들의 아무런 제지 없이 오히려 깍듯한 경례를 받으며 그 무서운 지옥문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냥 탈영해버릴까? 차라리 탈영해서 평생 숨어살자.’


난 이미 해병이 아니었다. 그저 호랑이 앞에 당장 죽음을 기다리는 한 마리 토끼였을뿐. 바로 그때 내 옆에서는 헌병 순찰차!


선임하사 - “야! 이병 뛰어와!” 우렁찬 헌병 선임하사님의 목소리.


나 - “네! 이병 OOO!” 난 부리나케 달려갔다.

선임하사 - “지금 복귀한거야?”

나 - “네 비행기가.....,”


사정얘기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난 차디찬 헌병초소에서 당직사관님은 숨도 못 쉬고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당직사관님과 동기인 헌병선임하사님의 배려로 영창은 면하고 초소를 나왔다.


초소에서 우리부대까지는 약 1km 아무 말이 없다. 조명도 없는 부대 연병장과 숲길을 지나며 들려오는 소리는 오로지 당직사관님의 자전거소리와 터지기 직전의 내 심장소리뿐.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 이 늦은 밤중에 저 건물만 왜 이리 하얗게 불이 켜있을까? 아 훈련소에서 야간 훈련하는구만. 쯔쯔쯔, 불쌍한놈들~’ 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그 건물은 훈련소가 아닌 다름 아닌 우리 부대건물이었다. 부대 안에 들어선 순간 모든 선임들이 전부 완전무장에 각 잡힌 자세로 기립순검을 하고 있었다.

 

‘그 힘든 기립순검을 완전무장하고 있다니? 신이시여 저를 죽여주소서~!’


그런데 바로 그때 당직사관님의 나지막한 목소리,


당직사관 - “내일 얘기하자. 조용히 자라.”

‘아닙니다. 지금 얘기해주세요. 제발. 저를 저 호랑이와 사자가 우글대는 우리로 넣지 말아주세요. 그냥 안락사 시켜주세요.’


저의 속마음을 들었는지 당직사관님의 한마디


당직사관 - “오늘밤 많이 피곤할텐데 내일 아침구보는 열외해라.”


잠시 후 나를 데리러온 군산돌주먹 김 상병님


김상병 - “야! 나와라!”


‘지난주 김 상병님은 극기훈련 간다고 했는데... 왜 이 자리에?


차라리 서천불곰 박상병님이 낫다. 박상병님은 중간 중간에 담배라도 한대씩 주는데......,’


질질 끌려서 들어온 내무반 조용한 공기 속에 거친 숨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온다.


그때 들려오는 최고참 박 병장님 목소리


“야 군대 좋아졌다. 개미가 비행기 타고. 창고에 물 빠따 다 불었겠다? 2개 더 집어넣어라!”


그 후의 얘기는 더 이상 방송으로 나갈 수가 없기에 상상에 맡깁니다.


참고로 그 후 저는 일주일동안 모든 야외활동을 제 신체여건상 자의반 타의반으로 열외 받았습니다.


아!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괴롭히는 비오는 하늘.


지금도 대한민국을 위해 후임들의 군기잡기에 고생하시는 대한민국해병 선임여러분들.

이제 저가항공사도 많으니까 비행기도 대중교통에 포함해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