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들의 이야기

막걸리 총력전

머린코341(mc341) 2017. 10. 2. 15:16

막걸리 총력전


경기 광주시 오포읍 / 안치몽


제대한지가 벌써 25년이나 되었네요!


저는 김포에 있는 해병 2사단에서 통신 일반하사로 30개월을 근무했습니다.


해병대에는 타 부대와 달리 일반하사라는 직위가 있는데 의무복무기간이 4년 6개월인 단기하사와 달리 30개월만 복무하는 해병대만의 직위입니다.


아무튼 저는 통신병과인 덕에 일반 보병들 보단 좀 편한 군 생활을 하였습니다. 애인도 그립고, 친구들도 그립고, 모든 게 그리운 군 복무였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하여 해병대 역사상 사단장 상을 처음 받은 병사로 기록될 만큼 군 생활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제가 근무한 해병2사단에는 가을에 하는 사단전체 체육대회가 매년 열렸는데 축구, 족구, 구보, 씨름 등등. 여러가지 종목으로 종합우승부대를 가리는 그런 대회였는데, 그중에 ‘총력전’ 이라는 종목이 있었습니다.


총력전은 사회에서 부르자면 줄다리기였습니다. 줄다리기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여러 종목들이 개인의 능력이나, 우수성으로 승패가 가려지는데 반해


이 총력전은 그야말로 군대의 핵심인 단결과 전우들 간의 호흡이 완벽해야 이길 수 있는 종목으로, 우리 사단에선 이 총력전의 승리가 다른 모든 종목의 승리보다 값진 승리로 여겨지는 중요한 종목이었습니다.


총력전 우승 부대에는 돼지 한마리가 더 부상으로 주어질 만큼 사단 전체의 관심종목이었습니다.


우리 대대에서는 총력전 선발 인원을 뽑을 때 대대원 전체에서 키와 몸무게 순으로 가장 크고 무거운 병사 백 명을 뽑고, 그 병사들은 약 한달 가량 총력전 훈련을 하였습니다.


구보도 하고 편을 나눠 총력전 시합을 하기도 하고, 당길 때 박자를 맞추기 위해 “의쌰! 의쌰!”를 외쳐가며 백 명의 선수들이 한 호흡이 되기 위해 열심히 한달 여간 훈련을 했습니다.


드디어 사단 체육대회가 열리고 우리 총력전 병사 백 명은 상대방의 기를 죽이기 위해 머리에 붉은 띠를 감고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르고 총력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근데, 허걱! 우리의 첫 상대가 해병대 중에서도 더 힘든 특수부대, 해병수색대라는 겁니다.


이 수색대의 빡셈은 우리 해병대들도 두려워 할 정도고, 특히 이 수색대의 자부심과 용기는 하늘을 찔러서 타 부대에게 어떤 것이던 져서는 안 된다는 부대의 각오가 대단하여 모두가 꺼려하는 상대인데, 하필 우리가 처음 상대라니?


우리 모두는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기에서 밀렸고, 이기면 다행이지만 져도 본전이라는 말들로 서로를 위로하며 웅성거렸습니다.


저는 한 달 동안의 훈련도 아깝고, ‘지들이 수색대면 수색대지, 힘은 다 똑같지 않냐?’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우리를 훈련시킨 작전장교님이 “야~~짜식들아! 쫄지마! 똑같은 인원에 같은 해병인데 뭘 쫄아? 수색대 애들이 쎄긴 쎄지만, 얘들만 이기면 우리가 우승할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이 악물고 하고, 수색대 애들 이기면 내가 막걸리 파티 해주께! 꼭 이겨라!” 하시며 기를 돋워 주셨습니다.


‘막걸리 좋다~! 얘들 이기면 막걸리도 먹고 어쩌면 포상휴가도 나가겠지?’


하면서 꿈을 꾸고 있는데 슬며시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술 먹으면 힘도 더 나고, 아픈 줄도 잘 모르는데, 막걸리 한잔하고 총력전 하면 더 쎄지지 않을까?’ 혼자 생각 하다가 ‘에~이, 안 되면 말고~’


하는 생각으로 작전 장교님에게 가서 얘기를 했습니다.


작전 장교님은 해사출신엘리트로 평소에도 우리 병사들과 장난도 잘치고, 우리얘기도 잘 들어주시고 하는 분이라 별 부담 없이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나 - “작전 장교님, 우리 총력전 하기 전에 막걸리 한잔씩 하고 하면 어떻겠 습니까?”


그랬더니 “뭐?” 하십니다.


나 - “아니~ 술 한잔하면 힘도 더 나고, 아픈 것도 덜 느끼니까 줄도 더 쎄 게 당길거고요, 그럼 수색대도 이길 수 있을 거 같은데 말입니다!”

장교 - “야~ 그거 좋다. 나도 질까봐 좀 켕기긴 했는데, 너 지금 빨리 운전 병한테 가서 막걸리 두말 받아오라고 해!”


운전병은 총알같이 막걸리 두말을 받아왔고, 의기소침해 있던 우리 해병들은 막걸리 한 사발씩을 들이키고, 막걸리 먹은 황소처럼 콧구멍이 커지면서 넘쳐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사단 연병장 구석에서 눈을 번득이면서 결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수색대와의 총력전.


아침을 6시에 먹고 현재 시간이 열시, 한참 출출할 때 막걸리 한 사발을 먹었으니 술이 확 올라 왔습니다.


술이 췌니까 그 무섭다는 수색대 짜식들도 만만해 보이고, ‘에이! 질라면 져라!’ 하는 배짱도 생겼습니다.


드디어 시합이 시작되고 술에 취해서 얼굴도 붉어지고 콧구멍도 커지고 줄 당길 때 손이 아픈 줄도 모르는 우리 대대는 너무도 간단하게 2연승으로 수색대 애들을 이겨 버렸습니다.


작전장교님은 우리와 같이 좋아서 날뛰고, 그야말로 우승이라도 한 것 같았습니다. 우리 백 명은 은근한 취기와 승리의 기쁨으로 낄낄 거리며 다음 상대와의 준결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번 상대는 강화도를 지키며 마니산을 오르내리며 힘을 길렀다는 강화 5연대에서 젤 쎄다는 1대대였습니다.


얘들만 이기면 우승이라고 우리끼리 자신감에 차서 시합준비를 하는데 작전장교님이 우리를 모아놓고

장교 - “야~ 이번에 우승하면 대대장님이 3박4일 휴가 보내 주신단다.


니들은 휴가 나가고 나는 점수 따고, 꼭 우승해서 같이 좋아지자!”


하는 겁니다. 그때 뒤에서 한 병사가


병사 - “막걸리 한잔 더하면 이길 것 같습니다!”


하고 소릴 지르고 우리 전부도 “와~!” 하면서 함성으로 동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작전장교님이


장교 - “그래~? 야! 막걸리 두통 더 받아와!”


우리는 또 막걸리 한 사발씩을 더 먹고 아까보다 더 사기 충만해서 총력전을 기다리고 있는데, 대대장님이 특별히 우리 총력전 선수들을 격려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간단한 격려사가 끝나고 대대장님이 우리 모두와 악수를 하시는데, 이게 병사들이 이상하다 느끼셨는지 고개를 갸웃거리시더니, 작전장교님께


대대장 - “애들이 왜 이래?”


하는 눈으로 쳐다보시니까


장교 - “힘내라고 막걸리 한잔씩 먹였습니다.”


작전장교님이 부동자세로 보고를 하고 순간 대대장님의 한쪽 눈이 꿈틀 하는걸 술 취한 상태에서도 보았습니다.


어쨌든 총력전이 시작되고, 연병장에서 줄을 중심으로 머리를 줄 방향으로 놓고 엎드려, 시작 총성을 기다리고 있는데, 술이 점점 더 올라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시간은 벌써 11시고, 고픈 배에 막걸리를 두 사발이나 먹었고, 9월이지만 그늘 하나 없는 연병장은 뜨겁기만 하고, 모든 병사들이 술이 취할 대로 취한 겁니다.


총력전 시작 총성이 울리면 엎드려 있다가 일어서면서 줄을 잡아야 하는데, 술 들이 취해서 엎드리기도 전에 비틀거리는 병사들이 제대로 하겠습니까?


드디어 시작 총성과 함께 총력전이 시작되고 술이 잔뜩 취한 우리는 그야말로 엉망이었습니다.


한번에 줄을 못 잡은 병사, 잡았어도 몸을 못 가누는 병사, 줄을 잡고 자빠지는 병사 등등. 당연히 내리 두 판을 지고, 술 취해서 비틀거리며 연병장 구석으로 갈지자를 그리며 갔습니다.


연병장 구석에선 더 난리가 났습니다. 땡볕에서 술에 잔뜩 취해 죽을힘을 썼으니 토하는 병사, 거의 실신상태의 병사,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습니다.


부대 창피하다고 대대장님이 빨리 귀대시키라고 해서 육공 트럭으로 먼저 부대로 보내진 우리는 막걸리파티, 휴가는 고사하고 군기교육 안 간 게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그 후 작전 장교님은 대대장님께 어떤 조치를 당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때를 생각해도 우습기만 합니다.


지금은 동기회가 있어서 우리 하사관들의 소식은 거의 알 수 있지만 우리 때문에 고생하신 작전 장교님은 한번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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