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들의 이야기

두꺼비를 잡아라!

머린코341(mc341) 2017. 10. 22. 01:06

두꺼비를 잡아라! 


백경인.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이름은 밝히지 말아주세요^ ^)


필승!


저는 약 20년 전, 전역한 해병 예비역 병장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군 생활 중 있었던 황당한 사건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전문대학 합격 후, 다시 4년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남산 밑에 있는 D재수학원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재수생 생활을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강의시간에 한참 졸다가, 문득 졸고 있는 제 모습에 회의가 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무작정 책가방을 싸들고 남산 중턱에 있는 병무청에 가서 무슨 배짱이었는지 해병대 지원서를 덜컥 내버렸습니다.


참고로 저는 그 전에 이미 육본에서 실시한 신검을 받았었는데 가정 형편으로 인하여 SS판정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공교롭게도 같은 날 해병대와 SS의 입영통지서가 동시에 오고 말았습니다.


집에서는 완전 난리가 났지요. 해병대에 입대하면 큰일 난다고 어머니는 머리를 싸매고 자리에 누우셨습니다.


가족들의 반대와 염려 속에서 저는 입대를 앞두고 무척 갈등을 겪었습니다. 저라고 왜 해병대가 무섭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결론은 ‘그래, 남자라면... 한 번 도전해보자!’


입대 당일 날 집에서 출발하면 가족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에 입대 하루 전, 친구를 만나러 가겠다고 하고 가방 하나만 간단히 챙겨 집을 나왔습니다.


그날 밤새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최백호씨가 부른 ‘입영전야’를 목이 터져라 불러댔습니다.


다음날, 터미널까지 배웅하겠다며 진한 우정을 과시하던 친구들은 어디 갔는지... 술에 곯아떨어져 깊은 잠에 빠진 친구들을 뒤로 하고 저는 쓸쓸히 새벽공기를 가르며 마산행 첫차에 올랐습니다.


가는 내내 작별인사도 못하고 온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 했습니다.


마산까지 가서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진해에 도착. 부대 앞 이발관에서 머리를 박박 밀고 훈련소 정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용씨도 아시겠지요. 진해 6정문 천자봉이 아련히 보이는 그 곳.


시간이 되자 드디어 문이 열리고 하얀 빽 바가지를 콧잔등까지 눌러쓴 교관들이 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간 등골이 오싹하더군요. 교관들이 예상외의 차분한 목소리로 “여러분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환영합니다!” 하며 인사를 하길래 잠시 긴장을 풀었지만 그것이 역시나 큰 오해였음을 깨닫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줄을 서서 6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그때부터 거칠어진 말투와 구호.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좌우로 소이동!” “오리걸음...” 나의 암울한 군 생활을 예고하는 듯 했습니다.


그 당시 해병은 진해 6주, 포항 4주, 총 10주의 신병훈련을 받았습니다.


신병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포항에 자대배치를 받은 후 저의 파란만장한 군 생활이 시작되었지요.


그렇게 실무생활을 조금씩 배워가던 중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휴일이었습니다.


모두 내무실에 모여앉아 편지를 쓰거나 바느질을 하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


이때 왕고가 저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 “예! 이병 ***!” 하며 관직성명을 외쳤습니다.


왕고 - “너 PX 가서 닭발 하나하고 두꺼비 한 마리 잡아와”


곳곳에 세워진 빨간 바탕에 노란 글씨 ‘안 되면 되게 하라! 해병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라는 구호를 보면서 “네! 알겠습니다!” 저는 빛의 속도로 PX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진공 포장된 닭발하나를 사고 나서 속으로 ‘근데 두꺼비는 왜 잡아오라는 거야?’ 의아해하고 있는데 순간 머릿속에 부대 호가 퍼뜩 떠올랐습니다.


‘그렇구나, 왕고가 나를 테스트하려고 하는구나!’ 싶더군요.


두꺼비를 어디서 잡을지 한참 생각하다 연병장 끝 화생방교장이 떠올랐습니다.


전에 그곳에서 개구리 비슷한 것을 본 것 같기도 하더군요.


연병장을 가로질러 빗속을 뚫고 화생방교장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내려 아무도 없는 연병장은 정말 괴괴하고 적막한 분위기였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저는 정신없이 두꺼비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지요.


여기서 잠깐! 화생방교장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연병장 외진 곳에 낮은 참호가 여러 개 있고, 그 옆에 쓰레기 소각장이 있는 그런 장소입니다. 거의 사용을 하지 않아 풀들이 웃자라있고, 덤불 넝쿨들이 있는 조금 음산한 곳이지요.


한 30분이 지났을까 아무리 찾아도 두꺼비는커녕 그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두꺼비, 맹꽁이, 개구리를 잘 분간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마음은 초조해져 가는데 순간 풀 속에 움직이는 무엇! 그렇습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개구리였습니다.


‘저거라도 잡아야지’ 처음엔 살금살금 다가가서 잡으려고 하였는데 그놈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잘도 제 손을 빠져나갔습니다.


비에 젖은 풀숲에서 놈을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더구나 졸병들이 매설해 놓은 수많은 대인 지뢰(대변)들을 피해가며 하려니...


 (잠깐 왜? 쫄병들이 화생방교장에서 대인지뢰 매설을 하는지 간단히 보충 설명하겠습니다. 고참들이 식사후 양치질 하는데 “냄새가 나니 안 좋더라” 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 세면장(화장실)사용을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쫄병들은 거기 숨어서 급한 일을 해결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자! 다시 본론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오기가 생겨 오로지 개구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뿐이였습니다.


점점 더 굵어진 빗줄기에 대인 지뢰, 형태는 흐트러져 진흙과 뒤섞여 분간이 되지 않았고 그곳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고 뒹굴길 수차례 제 몸은 마치 보령 머드축제 참가자 같은 모습으로 변했지요.


얼굴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닦으려고 똥이 잔뜩 묻은 소매로 얼굴을 훔쳐내다 빗물과 섞여 입으로 약간의 잔여물이 들어가기도... 우엑!! (품격 있는 방송을 위해 자세한 묘사는 삼가 하겠습니다)


그 맛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투를 벌인지 오랜 시간이 지나 마침내 개구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놈도 지쳤는지 나중엔 포기하고 도망가지도 않더군요. 제 손에 잡힌 개구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징한 놈!”


놈을 잡아서 뿌듯한 기분도 잠시,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왔습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내무실을 나온 지 2시간이 훌쩍 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아뿔싸! 이거 큰일 났구나... ’


정신없이 내무실로 달려가 문을 열어젖히고 자랑스럽게 “이병*** P.X에 다녀왔습니다!” 하고 크게 외쳤습니다.


순간 모든 소대원들이 저를 바라보는 그 황당한 눈빛들... 잠시 적막이 흘렀고  누군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순간 모든 소대원이 저를 피해 문밖으로 튀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그 자리에 굳은 채로 한참을 혼자 서 있었습니다.


상황 파악은 안 되고 머릿속은 하얀 백지처럼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잠시 후 문밖에서 수군수군 아련히 들려오는 선임들에 말소리


선임 - “저 자식 훈련이 빡세서 미친 거 아냐. 온 몸이 똥 범벅에다 저 개구리는 또 뭐냐? 이거 소대 제대로 고문관 하나 온 거 아냐? 야! 일단 씻겨!”


순간 감각을 잃었던 오감 중에 하나 후각이 조금씩 제 기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된장... 나 오늘 완존히 똥 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졸병을 P.X에 보냈는데 두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길래, 군 생활이 힘들어 탈영한 줄 알고 소대에 비상이 걸렸었답니다.


그날 밤 저는 탄약고로 조용히 불려나갔습니다. 비오는 밤 빛나는 별과 함께 먼지가 심하게 날리는 것을 보았지요. 한참 먼지를 털어낸, 선임이 휙 던져주고 간 것은 바로 닭발이었습니다.


“왕고가 내린 하사품이다”


그날 고생한 대가치곤 너무 미약했지만 저는 그것에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모두 잠든 시간 저는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흘리며 차가운 닭발을 뜯었습니다.


 “눈물 젖은 닭발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군 생활을 논하지 말라!”


이쯤 되면 두꺼비가 무엇을 말하는지 눈치 채셨겠지요? 바로 **소주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무실에서 술 마시는 것은 금지사항이라 술 사오라는 말 대신 그렇게 표현한 것이었지요.


그땐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아마도 쫄병이라 기합이 바짝 들어 단순히 생각할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아무튼 그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참 힘든 군 생활이었고 웃지 못할 사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국방부 시계는 쉬지 않고 돌아 무사히 전역을 하게 되었지요.


지금 생각하니 그래도 그때가 참 그립습니다.


팔각모, 얼룩무늬, 빨간 명찰, 세무워커, 전우들... 요즘처럼 어려운 세상에 제가 버티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군 생활 중 겪었던 고생, 힘들었던 시간들이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군대가 좋으니 두 번 가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꼭 한 번은 가볼만한 곳이라구요.


감사합니다.  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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