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들의 이야기

과유불급1

머린코341(mc341) 2017. 10. 22. 01:13

과유불급1 


신연교.  서울 마포구 합정동.


안녕하세요?


매년 꽃가루가 날리는 봄이면 엉덩이가 애려 오는 아픈 기억으로 빠져 들곤 합니다.


참모병장 장용씨도 진해 6정문을 통해 해군에 입대 했듯이 저도 1982년 10월 6일 6정문 통해 해병대에 입대를 하였습니다.


장용씨! 6번 사무실이 어딘지 아시죠? 육군은 1번 짚차가 부대장 짚차지만, 해병대는 6번 차가 부대장 짚차이고 부대장의 사무실도 6번이라고 하죠?


그 6번에서 일어났던 엉덩이가 아픈 사연은……


때는 1983년 4월 봄.


여러 가지 교육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되는 날, 그 날은 하늘은 맑고 따뜻한 봄날이었습니다.


강화도에서 보병교육을 마치고 체신병(사회에서는 우체부)을 따라 김포 마송의 한 다방에서 인신매매를 하듯이 전 자대의 체신병에게 인계되었습니다.


입대하고 약 7개월을 교육받으면서 하루빨리 자대에 배치 받는 것을 희망으로 군 생활을 하였는데 막상 자대의 위병소 앞에서는 걱정이 앞서더군요.


위병소를 지나서 연병장을 걸어서 대대 행정반 사무실로 가는데 하늘에서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봄날에 웬 눈이오나 이상하여 자세히 보니 그것은 눈이 아니라 꽃가루가 눈처럼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전 눈 오는 것을 좋아해서 이것이 나에게 군생활의 좋은 징조로 생각하면서 행정반에 도착하여 전입신고를 하고 또 대대장님께 전입신고를 하기 위해 6번 사무실로 올라가는데 언덕위에 있는 6번 사무실은 꽃가루로 인하여 눈이 쌓여 있는 것처럼 온통 하얀 세상이었습니다.


대대장님께 전입신고를 마치고 내무실에서 대기하면서 선임하사님께서 부대 상황을 설명하여 주시고 또한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 주셨습니다.


여러가지 주의사항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대대장님의 성격이 특이하니 조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대대에서 대기하면서 부대 적응기간에 들어갔습니다. 적응기간이라는 것이 부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면서 부대내을 익히는 아주 단조롭고 따분한 일이었죠.


그러던 중 대대 인사계님이 사무실로 오라고 해서 총알처럼 뛰어 갔더니 6번 사무실 주위에 꽃가루가 많이 쌓여있으니 빨리 가서 청소를 하라고 해서 6번 사무실로 갔더니 진짜 많이도 쌓여 있더군요.


전 빗자루로 쓸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쓸리지는 않고 빗질을 하면서 생기는 바람으로 꽃가루는 이리저리 날리기만 하더군요.


한참을 그렇게 빗질을 해도 청소를 한 흔적도 없어서 바닥에 주저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고서 멍하니 꽃가루를 쳐다보다가 장난을 삼아서 라이터로 꽃가루에 불을 붙이니 도폭선이(도화선은 1초에 1cm타는데 도폭선은 1초에 약 5000m를 타는 폭약) 터지는 것처럼 확 타서 꽃가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이제 청소 다 했구나 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빗자루를 던져 버리고 6번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진 진입로부터 깨끗이 청소하려고 라이터로 위험한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건조한 날씨라 바짝 긴장과 걱정을 하면서 조심조심 불을 붙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도 있고 깨끗이 청소가 되는 것을 보면서 간땡이가 자꾸 커져만 갔습니다.


그래서 성격이 특이한 대대장님의 사무실 근처까지 라이터로 청소를 하면서 자꾸자꾸 8부 능선을 넘어 넘어서는 안 되는 곳까지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대장님의 사무실은 언덕 위에 있었고 사무실 문 앞은 족구장 크기의 운동장에 6번 짚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봐서 대대장님께서 부대 내에 계시는 것이 확실했는데, 그 때는 갓 전입 온 신병이라 그런 생각도 없이 오로지 인사계님의 명령인 꽃가루 소탕작전만 생각났습니다.


전 앞뒤 생각도 없이 그 언덕에 있는 꽃가루에 라이터 불을 당겼습니다.


“확!” 하고 도폭선이 터지는 것처럼 언덕위의 꽃가루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그 불길이 대대장님의 사무실 앞 공터로 도폭선이 터지듯 날아갔습니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것이라 전 “어어어어....”  하면서 몸이 딱 굳어 버렸고 불길은 언덕에 쌓여있는 바짝 마른 낙엽을 덮쳐버렸습니다.


“불이야! 불이야!” 하면서 소리를 쳐야하는데 갓 전입 온 신병이라 쫄아서 소리도 못치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대대장님의 사무실 문을 발로 차면서 소리쳤습니다. “불! 불! 불~!” 이라고 소리치니까 대대장님께서 나오시면서 “뭐야?” 하시더니  제가 가리키는 손끝을 보시더니 이렇게 소리치시더군요.


 “불이야! 불이야!”


그 소리에 근처 보급창고에서 작업을 하던 보급하사와 보급병이 달려왔고 탄약고에서 근무를 서고 있던 두병의 선임들이 처음부터 내 행동을 보고 있다가 불이 난 것을 보고 상황실에 보고를 하고 탄약고에 있는 대형 소화기를 끌고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부대는 발깍 뒤집혔고 대부분 훈련과 작업으로 영외로 나가서 부대내에는 행정병과 주계병과 장비소대의 정비병 등 10여명 정도가 순식간에 출동해서 불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난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린 정신병자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멍하니 불을 끄는 모습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만에 진입로와 언덕 위 그리고 6번 사무실 문 앞까지 하얗게 쌓여있던 꽃가루는 봄눈 녹듯이 사라졌고 흰색이던 언덕은 낙엽이 타면서 검정색으로 변해져 있었습니다.


화재는 진압이 되었고 인사계님과 저는 대대장님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이 서 있었는데 기가 막혔는지 아님 전입 온지 며칠 안 된 신병을 보호하려는지, 약간 미소를 지으시면서 괜찮고 이 일로 기죽지 말고 열심히 부대생활을 하라고 하면서 내무실로 혼자 가 있으라고 하시더군요.


내무실에서 불안에 떨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참을 있으니까 인사계님이 들어오시더군요. 그러면서 잘 됐으니까 걱정 말고 쉬라고 하시면서 나가시는데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내무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원래 갓 전입 온 신병은 해병의 역사과정에 눈으로 참여만 하고 온몸으로 느끼지는 않는 것이 관례였으나 그날 밤은 열외 1명 없이 모두가 돌아가면서 온몸으로 해병의 역사를 공부했지요. 새벽까지 말입니다.


요즘은 구타와 괴롭힘으로 자살하는 사람을 가끔 뉴스에서 보면 그 때의 역사공부는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역사공부를 했던지 며칠간은 앉지도 못하고 걷는 것도 오리걸음처럼 뒤뚱거리면 걸었습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성격이 특이한 대대장님께서 갓 전입 온 신병을 직접 교육시키기가 뭐해서 인사계님를 강하게 교육시키시고 그 인사계님은 행정병중 최고참 선임을 무지무지 강하게 교육을 하시는 바람에 그 선임해병께서는 열외 1명 없이 밤새도록 온몸으로 느끼는 교육을 시켜주셨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엉덩이가 쑤셔오고 지금과 같이 꽃가루가 날리는 봄날은 특히나 더 아프고 쑤셔옵니다.


그래도 해병대에 지원 입대한 것은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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