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 군벌과 군조직 -3-
앰뷸런스를 부르짖던 전화는 곧 끊겼다. 장태완 소장은 급히 돌아가 이 사실을 요정에 있던 정병주 특전사령관, 우국일 보안사 참모장 그리고 조홍 수경사 헌병단장에게 알렸다.
이들은 급히 자리를 벗어나 각자의 위치로 출발했다. 필동 수경사령부로 달리는 차 안에서,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수경사 상황실에 ‘즉시 장갑차 한 대와 헌병 1개 소대를 끌고 가서 총장님을 구출‘할 것을 지시하였다
복귀하는 차 안에서 장태완 사령관은 총장공관에서의 사태를 벌인 주체가 도대체 누군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먼저 가장 유력한 가능성은 김재규를 지지하는 군내 세력들이 군사 쿠데타를 위해 총장을 납치했을 수 있다. 최규하 대통령 직무대리는 군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고, 아직 완전히 군을 장악했다고는 볼 수 없었다.
한편 그날 오전에 있었던 대령 진급심사에서 떨어진 자들이 총장의 인사조치에 불만을 품고 분개하여 총장을 납치해버리는 짓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같은 차를 타고 있던 조홍 헌병단장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요. 대통령 시해 이후의 혼란을 틈탄 무장공비의 소행이 아니겠습니까.”
조홍 단장의 답은 장 사령관의 예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새 수경사령관의 차는 필동 수경사령부에 도착해있었다.
총장공관 총격전 이후로부터 비상이 걸려있던 수경사 상황실에는 김기택 수경사 참모장과 황동환 수경사 방공포병단장만이 도착해있었다. 장세동 30경비단장, 김진영 33경비단장 그리고 수경사 야포단장 구명회 대령은 아직 출두하지 않은 상태였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즉시 신윤희 부단장에게 헌병 1개소대, 전차 1대, 경장갑차 1대, 2.5톤트럭 1대, 사이드카 2대, 앰뷸런스 1대로 특수임무조를 꾸려 총장공관으로 출동할 것을 지시했다. 장태완 사령관과 같이 차를 타고 온 조홍 헌병단장은 그새 어디론가 사라졌다.
3군단장 재직 도중 10.26 이후 이희성 육군참모차장이 군에 복귀한다는 것을 전제로 중앙정보부장 서리로 자리를 옮겨 공석이 되어버린 육군참모차장석에 임명된 윤성민 육군참모차장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도중이었다. 전화가 걸려와 받으니 정승화 육참총장의 부인 신유경이었다.
“차장님, 지금 여기서 총격전이 벌어졌어요. 총장님이 괴한들에게 납치되어갔어요. 살려주세요.”
“뭐라고요, 어떤 놈들입니까?”
전화는 뭐라 할 새 없이 끊겨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윤 차장은 즉시 군복을 갈아입고 공관을 박차고 나가 가까이에 있는 헌병감실로 향했다. 하지만 뭔가 정보를 얻어보려 했으나 헌병감 김진기 준장은 저녁식사를 하러 가(연희동 요정 유인작전) 자리에 없었고 특별한 정보를 얻지도 못했다. 결국 윤성민 차장은 육군본부의 B-2 벙커로 향해 수도권 일원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육본 참모들을 소집했다.
소식을 들은 육본의 참모들이 속속 집결하고 있었다. 육본 작전참모부장 하소곤 소장, 육본 인사참모부장 천주원 소장, 육본 정보참모부장 황의철 소장, 육본 군수참모부장 안종훈 소장, 민사군정감 신정수 소장 등이 차례차례 육군본부에 도착하였다. 김종환 합참의장과 유병현 한미연합사부사령관, 문홍구 합참본부장등 국방부나 연합사 장성들도 육군본부로 향했다.
육군본부 5분대기조를 한남동 총장공관으로 출동시킨 육본 수뇌부는 우선 이 사태가 북괴군 무장공비들의 소작인지 혹은 군 내부의 소행인지에 대한 판단 수립을 해야 했다.
먼저 무장공비일 가능성을 찾아보기 위해 각 전방부대와 한미연합사에 북괴군의 동태를 알아보았으나 북괴군이 갑작스러운 남침준비 혹은 남침을 했다는 징후는 없었다. 내부 소행이 확실해보였다.
7시 50분 경 육군본부에 전화가 걸려왔다. 총장공관에서 복부에 1발을 맞은 육참총장 전속부관 이재천 소령의 전화였다. 윤성민 차장은 그 통화에서 총장을 납치한 자들이 권정달 보안사 정보처장과 우경윤 대령이라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정보를 얻게 되었다.
허삼수 보안사 인사처장이 자신을 보안사 정보처장으로 위장한 채로 총장공관으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사복 차림의 김진기 헌병감이 도착한 것은 그때였다.
“김 장군, 대체 우경윤이란 자가 누구요?”
“그사람 헌병 아닙니까. 육본 범죄수사단장인데 지금은 합수부에 파견근무를 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전두환이 장난이야.”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필동 수경사령부에 도착, 상황을 파악한 후 한남동 총장공관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정보참모 박웅 대령과 전속부관 천연우 대위를 대동한 채로 지프를 타고 한남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직 정승화 총장이 연행되어갔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육군본부로부터 무전이 들어왔다.
“장 장군, 지금 어딨소?”
“총장 공관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총장님께서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총장님께서는 지금 보안사 권정달 대령과 우경윤 대령에게 납치되어 어딘가로 끌려가셨어요. 그러니 어서 사령부로 돌아와서 해결책을 강구합시다.”
통화를 하던 윤성민 차장과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짓이라는데 동의했다. 그리고 그가 탄 지프는 온갖 병력들로 뒤엉켜버린 한남동 공관촌 입구에 도착했다.
그때 한남동 공관촌은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병력들로 뒤섞여있었다. 현재의 사태를 만든 해병대 경비병력과 33경비대는 물론이요, 수경사령관 장태완 소장이 보낸 수경사 특수임무조와 5분대기조, 육군본부 기동타격대, 해군본부 기동타격대, 공군본부 기동타격대, 국방부 50경비대에 경찰 병력까지 한데 모여 뒤엉켜 있었다.
해군 제2참모차장 김정호 중장의 총장공관 출입 차단 지시로 인해 해병대와 육군 기동타격대 사이에 교전까지 일어났었다. 아군끼리의 사망자는 없었으나 총장 공관에 있던 33경비대와의 교전 도중 33헌병대의 박윤관 일병이 목에 총을 맞아 다음 날 사망했다.
장태완 사령관은 먼저 특수임무조를 이끄는 신윤희 헌병단 부단장과 접촉했다. 왜 밀고 들어가지 않느냐는 그의 질문에 신 부단장이 ‘해병대 경비병들의 사격이 심하여 접근을 못하고 이곳에서 대기중’이라는 보고를 받았고(실제로 해병대 경비병들이 정문을 차단하고 있었음) 육군본부 기동타격대를 이끌고 온 본부사령 황관영 준장과 육군본부 비서실장 최인수 준장과 만나 ‘육본 헌병감실 기획과장 성환옥 대령이 헌병 1개소대로 사건 진압차 총장공관에 진입했으나 총장 납치범이 이미 외부로 탈출한 후였기 때문에 귀대하려는 순간에 해병대 경비병들에게 억류되어 수경사 병력으로 구출작전을 시도했으나 해병대 경비병들에게 저지당했다’라는 요지의 상황설명을 해왔다. 아마 이 설명은 초기의 혼란에서 파생된 잘못된 정보로 야기된 것으로 보인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이후 공관 정문으로 빠져나가려다 김정호 제2참모차장이 이끌던 해병대 병력에게 체포당해 원산폭격등의 기합을 받고 있던 헌병감실 기획과장 성환옥 대령으로부터 자신들을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후 해군본부 기동타격대를 이끌고 출동한 해군 헌병감 박종곤 준장과 만나 ‘왜 우리 병력을 해병대 병력이 억류하고 있나.
어서 풀어달라’고 요구하였으나 박종곤 헌병감이 ‘이유 없이 억류하고 있는게 아니라 저들이 바로 총장 납치 방조자이다’라는 사실을 말해주면서 장태완 사령관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육군본부에선 성환옥 대령이 총장 구출세력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해병대쪽에선 그들이 총장 납치 방조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우선 장태완 사령관은 황관영 준장과 박종곤 준장에게 서로 협조해서 사태를 잘 처리할 것을 당부한 다음 신윤희 중령에게 수경사 병력의 철수를 명하고 필동 수경사령부로 향했다.
문제는 그곳에 출동한 병력들 중에는 30경비단장 장세동 대령이 80명의 병력을 붙여줘 33헌병대 구출작전을 맡긴, 당시 한남동 공관촌 앞에 모여있던 병력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 목적이 달랐던 병력을 지휘하던 33경비단장 김진영 대령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 중령에게 33경비단 병력을 공격하지 말 것을 지시했고. 신윤희가 그에 동조하면서 신윤희 또한 그날의 반란세력에게 동조하기 시작하였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수경사로 돌아온 것은 밤 9시 경이었다. 아직도 30경비단장 장세동, 33경비단장 김진영은 사령부로 출두하지 않은 상태였다.
“경비단장 놈들은 어디 쳐박혀 있길래 나오질 않는건가.”
그때 수경사 참모장 김기택 준장이 그에게 말해왔다.
“사령관님, 현재 30경비단장과 33경비단장은 30경비단에 있는 모양입니다.”
“사령관이 비상소집을 내린게 언젠데 아직도 경비단에 있다는 말인가?”
“현재 30경비단에는 30, 33경비단장뿐만이 아니라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장군, 전두환 보안사령관, 노태우, 박준병 장군, 제1, 3, 5 공수여단장, 제71 방위사단장이 있다고 합니다.”
장태완 사령관은 분을 삭이던 중 30경비단장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것은 장세동 30경비단장이 아닌 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였다.
?“아, 여보세요?”
“선배님, 지금 전군에 비상이 걸려 모든 장병들이 외출 외박이 금지되어 있는데 남의 부대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무슨 작당을 하고 있는겁니까? 그리고 어떻게 총장님을 납치할 수가 있습니까? 선배님! 저보다 그 쪽에 계신 분들이 총장님과 가깝지 않습니까? 이 비상시국에 계엄사령관인 총장님을 납치하다니 뭘 어쩌자는겁니까? 빨리 총장님을 원상적인 위치로 돌려 보내주십시오. 이번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언론에도 나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사령관인 저도 해가 진 이후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 부대에 가지를 않습니다!”
“아, 장 장군!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이리로 와, 이리 와서 우리하고 말좀 하자고.”
“이 반란군놈의 새끼야! 너희놈들 거기 그대로 있거라, 내가 전차를 몰고 가서 싹 깔아 죽여버릴테니!”
잠시 전화가 조용해지더니 이번에 받은 사람은 황영시 1군단장이었다.
“장 장군! 왜 흥분하고 그래? 진정해! 그러지 말고 30경비단으로 와서 우리하고 같이 일 하도록 해요.”
“아니 형님! 제가 정 총장님을 한번이나 제대로 모신 적이 있습니까? 형님이 나보고 정승화 총장을 잘 모시라고까지 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랬으면 형님이 잘 보필해야지 이래서 됩니까? 정 총장님과 가까운 형님이 어떻게 그러실수가 있습니까? 이번 사건은 없던 일로 할테니 총장님을 빨리 원상복귀 시키세요.”
“장 장군! 그럴수는 없어. 이건 박 대통령 시해사건을 위해서 불가피한 일이야.”
“좋아 이놈들, 꼼짝말고 거깄어. 내가 포를 갖고 가서 네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버릴테니!”
“장 장군, 수도군단장이 여기 와 있으니까, 얘기를 들어보고...”
“됐어!”
전화는 끊겼다. 사태는 점점 절정으로 치닫아가고 있었다.
[뻘글 집합소] 201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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