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2. 海兵隊 創設期 (6) 逆境과 强訓

머린코341(mc341) 2014. 7. 2. 19:04

국방의 멍에 - 2. 海兵隊 創設期


(6) 逆境과 强訓


  창설 당시 해병들이 처해 있었던 처지란 한 마디로 간난(艱難) 바로 그것이었다. 비단 뜨네기 나그네들이 임시 숙소같던 허술한 내무실과 강당뿐 아니라 공급받은 군복과 무기 등 모든 형편이 다 그러했다. 신병들과 기간요원들의 내무실로 사용이 된 허술한 콘센트 건물과 강당으로 사용된 격납고는 입대식과 창설기념식이 거행된 후에도 또 한 차례 보수를 하긴 했지만 비가 오기만 하면 새는 곳이 많아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였다.


  무기 면에서도 타군에선 그때 이미 공급이 돼 있던 칼빈 소총이나 Ml소총은 단 한 자루도 가진 것이 없었고, 고작 일본군이 남겨 두고 간 낡아빠진 99식 소총과 훈련용 목총 뿐이었다.


  그러기에 바로 그 무렵에 출처 불명의 Ml 소총 한 자루가 등장이 되자 "우리들도 언젠가는 이런 신무기를 갖게 될 날이 있겠지" 하며 그것을 신주(神主) 모시듯이 분대별로 소중히 돌려가며 조작법을 익히곤 했었는데, 안타까웠던 일은 그 Ml 소총에는 8발의 실탄을 끼워서 장진하게 돼 있는 크리크라는 것도 없었고, 또 실탄도 전혀 없어 실탄사격 같은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할 실정이었다.


  또한 신병들에게 지급된 훈련복도 국산 광목천으로 만든 후줄근한 국방색 훈련복 단 한 벌씩만 지급이 되고 보니 불과 10여 일도 채 못되어 누더기같은 몰골로 변모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형편과 처지가 그러했는데도 불구하고 창설기의 해병들은 오로지 국방의 최강부대가 되기 위한 강훈에 정진함으로써 그 역경을 극복했다. 제1기 신병들의 훈련을 담당했던 소대장과 분대장들은 대부분이 일본해군 출신의 하사관들이었다. 따라서 무서운 경력의 소유자들이었던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소임에 대한 사명감에 충만해 있었다. 해병대의 주춧돌이 될 1기 신병들을 일기당천의 강병이 되지 않고서는 해병대를 국방의 최강부대로 육성할 수가 없다는 것이 곧 그들 자신의 신념이었고, 또 각오였었다.


  따라서 그러한 사명감에 투철했던 그들은 마치 사나운 맹수를 훈련시키는 조련사와도 같은 무서운 집착력을 가지고 훈련을 지도했고, 또한 그들의 열성과 집념을 진작시키기 위해 신 사령관은 조례시 훈시를 통해 "전시에 피를 적게 흘리기 위해서는 평시의 훈련 때에 땀을 많이 흘려야 한다" 는 평범한 진리를 되풀이 강조했었다.


  스파트타식으로 실시된 강훈의 주요 내용은 활주로의 시멘트 바닥을 선혈로 물들이게 했던 무서운 포복훈련과 삼복더위 속에서 가진 옷가지들을 죄다 껴입고 실시한 이른바 '북해도 곰잡이 훈련'으로 통칭된 극한상항 극복훈련, 그리고 비행장 기지내에 있는 동네산(△ 43)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내리면서 실시한 기합훈련과 각개전투훈련, 기진맥진해서 쓰러질 때까지 실시한 기합용 특별총검술훈련, 패자(敗者)팀 전체에 대한 고통스런 기합을 전제로 한 중대 대항 기마전 등이었다.


  그리고 창설기의 신병들은 훈련 그 자체를 전투행위로 여기고 있던 그 무서운 조교들과 분대장 또는 소대장들에 의해 '빳다'라는 이름의 특종기합도 받았다.


  오로지 무쇠같은 심신을 단련시킨다는 소신에 투철해 있던 그들은 일당량(日當量)으로 정해져 있던 다섯 대의 빳다 외에 내무생활 또는 기강면에서 하자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하루 평균 30대 이상의 빳다를 안겨주었고, 또 빳다질을 할 때는 맞는 것도 서러운데 우렁찬 목소리로 "충무공 하나“ ”충무공 둘, 셋·.·" 하며 그 대수를 세도록 했고, 만약에 대수를 세는 목소리가 우렁차지 못할 때는 그만큼 대수가 가산이 되었다.


  그런데 빳다에 의한 그 특종 기합은 훈련병들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상처투성이가 되게 했던 것이지만 그 빳다에는 사사로운 감정이 전적으로 배제되어 있었고, 또 빳다를 맞은 훈련병들 역시 그러한 기합 자체를 훈련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로 병영을 이탈하거나 불평불만을 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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