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3. 海兵隊의 晋州駐屯 (3) 追擊戰과 위령제

머린코341(mc341) 2014. 7. 5. 14:43

 

국방의 멍에 - 3. 海兵隊의 晋州駐屯

 

(3) 追擊戰과 위령제

 

  공비들이 자취를 감춘 시각은 4시 30분경이었다. 그들이 자취를 감춘 사실을 확인하게 된 나는 적개심에 불탄 나머지 즉각 추격전을 벌이자는 부하장교들의 의견도 있었으나 섣불리 나섰다가 어떤 변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으므르 동이 트기를 기다렸다가 트럭을 이용해서 추격전을 벌였다.

 

진주시에서 빠져나간 공비들 중 주력은 하동 방면으로 향하고 일부 세력은 합천 방면으로 향하던 중 미천(美川)지서를 습격했는데,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 나와 신 사령관은 4~5대의 트럭에 약 3개 소대의 병력을 분승시켜 산청 방면으로 향하다가 아무래도 허탕을 칠 것 같아 도중에 추격을 중지하고 오전 11시경 귀대하고 말았다.

 

  그날 새벽녘의 공비 내습사건으로 인해 발생했던 우리측의 피해는 전사자 3명(해병2, 한청원1), 부상자 3명(해병)을 낸 것 외에 수 명의 시민이 학살당했고, 우리는 8명의 공비를 사살한 것 외에 3정의 소총과 소량의 실탄과 문서 등을 노획했다. 그런데 문제는 일요일 새벽녘의 허를 찌른 공비들의 대대적인 습격사건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희생자와 손실을 내지 않고 그들의 기도를 분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 중 다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한편 악몽같기만 했던 그 사태가 일단 수습되자 부대에서는 29일 오후 2명의 전사자에 대한 위령제를 엄숙히 거행했는데, 그때 나는 난생처음 부하대원을 잃은데 대한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슬픔을 느꼈다.

 

  오늘 새벽 만약에 내가 부대에 있었더라면..., 허를 찔리지 않게 조금만 더 경계를 강화했더라면 이런 변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엄습하는 바람에 나의 가슴은 미여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분신같이 여겨지기도 했고, 나의 막내동생이나 친조카들같이 여겨지기도 했던 전사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왜 말이 없느냐, 정녕코 네가 죽어야만 했단 말인가?“ 너희들을 내가 왜 죽여야만 했단 말인가?" 하며 통탄을 했는데 그 두 사람의 전사자들 중 "병기고를 사수하자!" 고 외치며 달려나오다가 전사한 김희선 해병의 이름과 보초근무 중에 전사한 김추 해병의 이름은 지금도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기억 속에 깊이 간직된 또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곧 내가 만년필 글씨로 또박또박 적어놓은 조사 음지에 얼룩져 있던 눈물의 흔적과 관런된 것인데 그 눈물의 주인공은 그 조사를 사전에 읽어 보며  눈시울을 적시다가 눈물방울을 떨어뜨렸던 신현준 사령관이었다. 그 당시 신 사령관께서는 덕산비행장에 있는 사령부에 상주하지 않고 한 주일에 3~4일 간은 진주부대에 와서 나와 함께 근무를 했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