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7. 統營上陸作戰
(2) 作命의 變更要請
진해항을 출항한 후 나는 참모 및 중대장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지휘관으로서의 작전구상에 골몰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는 내가 타고 있던 함정(FS 평택호)에 비치되어 있는 통영지구의 해도(海圖)를 살피 보며 다음과 같은 구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즉 약 400명밖에 되지 않는 병력으로 거제도의 긴 서해안을 지키려는 소극적이고 불안한 방어를 하느니 차라리 통영에 기습적인 상륙작전을 감행함과 동시에 일부 병력으로 통영의 관문인 원문고개(轄門)를 차단한다면 통영읍에 침입해 있는 적을 독 안에 든 쥐를 때려잡듯 섬멸할 수 있을 것이고, 또 통영으로 진입할 적 후속부대도 그 원문고개의 유리한 진형에서 격퇴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나의 그러한 작전구상은 해군본부의 승인과 지원이 없이는 실행될 수 없는 일이었고, 또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거제도에 적정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통영읍에 침입한 적의 상황이 어떤지를 알아본 다음 작명(作命)의 변경을 요청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와 같은 복안을 세우게 된 나는 그 다음 날 17일 새벽 3시경 2척의 수송선을 통영반도 동북단 약 1킬로 해상에 있는 지도에 기착시켰다. 해발 139미터의 고지가 남북으로 능선을 이루고 있는 그 섬은 차패가 잘 되어 육지에서는 관측이 잘 안되는 곳이었다.
배를 기착시킨 다음 나는 그 섬에서 구한 2척의 작은 어선에 2개조의 정찰대를 분승시켜 거제도 서해안과 육지(장평리) 쪽으로 보내어 적정을 탐색해 오도록 했는데, 수색소대장 김종식 대위가 지휘하는 정찰대는 통영반도 동북단 쪽으로 향하고 계병도(桂炳道) 분대장의 정찰조를 거제도 서해안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3시간을 전후해서 귀대한 정찰대장들의 보고에 따르면 통영 시가지는 분명히 적에 의해 점령을 당해 있는 상태라고 했고, 거제도 서해안에는 경찰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들의 말에 따르면 거제도에는 아무런 적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계병도 분대장은 고성에서부터 적에게 쫓겨 통영으로 왔다가 헤엄을 쳐서 거제도로 건너왔다는 육군첩보대 소속 이(李)모 상사를 정보수집을 위해 데리고 왔다고 했는데, 그를 만나본 나는 그의 간청을 받아들여 해병대에 현지입대시켰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편 정찰대장들로부터 그와 같은 보고를 받은 나는 FS 평택호의 무전시설을 이용해서 해군본부에 다음과 같은 전문을 발송했다.
"통영에 침입한 적은 완전 1개 대대로 추산되오며 통영반도로부터 거제도에 상륙할 기도가 농후함. 당대(當隊)는 거제도 서안을 방어하는 것보다 통영에 상륙하여 적을 섬별하고 원문고개에서 적의 남진을 저지함이 양책(良策)으로 사료되오니 통영 공격을 허가하여 주시기 앙망하나이다."
그 전문을 기안할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즉 통영 동북단과 거제도 서안간(견내량 해협)의 거리가 워낙 좁고, 거제도 서안이 워낙 길기 때문에 통영을 점령한 적이 마음만 먹으면 하시든지 상륙을 할 수 있을것이고, 또 그렇게 될 경우 약 400명밖에 되지 않는 아군 병력으로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큰 섬인 거제도를 지켜낸다는 것은 극히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군본부로부터 보내올 회신을 안타까이 기다리고 있던 나는 정오경에 이르러 통영 해상을 초계중 지도로 접근해온 PC-703함 함장 이성호(李成浩) 중령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적정을 청취했다. 내가 703함으로 건너가서 전해들은 적정이란 적이 해안선 일대와 시가지 북쪽 고지에 배치되어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성호 함장에게 나 자신의 작전복안을 설명하고는 협조를 요청했더니 그는 쾌히 응락해 주었다.
해군본부로부터 답신이 도착한 시각은 그날 오후 1시경이었다. 그런데 FS 평택호에서 수신한 그 답신을 받아본 나는 실망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통영 시가지의 적은 미 공군에 요청하여 폭격을 할테니 명령대로 거제도에 상륙하라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해군본부에서 나의 의중(意中)을 제대로 읽어 주지 못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한번 전문을 발송하고 회신을 기다렸더니 두 번째로 수신된 답신 역시 같은 내용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내 자신의 작전복안에 집착하고 있던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또 한 차례 전문을 치게 했더니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오후 5시경 드디어 작명의 변경을 승인하니 통영 부근에 있는 PC-703함을 비롯하여 소해정 901·302·307·504호 및 해병들이 타고 있는 소해정 512호와 FS평택호 등 모든 함정을 통합 지휘하여 기필코 작전에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답신이 도착함으로써 나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게 했다.
그 마지막 답신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703함에 머물고 있던 나는 전문을 받아보는 즉시 중대장들에게 전투에 임할 태세를 갖추도록 지시하곤 703함 함장에게 양동작전(陽動作戰)을 수행하기 위한 작전협의를 하며 해군 함정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런 다음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위스키 병을 꺼내어 유리컵에 한잔씩 따라 얼음까지 곁들여 미리 승전을 축하하는 기분으로 회심의 미소를 띠우며 건배를 했는데, 그 자리에는 그날 낮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된 703함 부장(副長) 현시학(玄時學) 소령과 현봉학(玄鳳學)씨도 같이 있었고, 또 그들도 유리컵을 찰칵 부딛치며 함께 건배를 했다.
한편 건배를 하고 FS평택호로 돌아올 때 나는 이성호 함장과 이런 약조를 했다. 즉 다음 날(18일) 이른 아침 망일봉(望日峰) 꼭대기에서 누군가가 태극기를 흔들어대고 있거든 해병들이 망일봉(△148)을 점령한 줄 알고 그 쪽으로 포탄을 날려 보내지 말아달라는 것과 귀신도 속아 넘어갈 만큼 양동작전을 잘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약조를 한 뒤 나는 통영을 점령하게 되면 이성호 함장과 소해정 정장들을 통영읍내 술집으로 초치하여 통영에 있는 예쁜 기생들을 다 불러모아 놓고 코가 비뚤어지도록 한 턱 내겠다고 했더니 이 함장은, 기분이 째지도록 좋았던지 파안대소하며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겠노라고 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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