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12. 재출동(再出動) (4) 영월지구(寧越地區)의 위기(危機)

머린코341(mc341) 2014. 8. 7. 09:13

국방의 멍에 - 12. 재출동(再出動)

 

(4) 영월지구(寧越地區)의 위기(危機)

 

  배속이 군단 직할로 변경이 되었던 것은 영월지구의 정세가 급변한 때문이었다. 바로 그 시기에 평창(平昌)·정선(旌善)지구에 배치되어 있던 3군단 예하의 7사단과 9사단의 전투지경선 사이를 뚫고 침투한 적의 대부대가 7사단의 우측방과 영월에 위협을 가하고 있는 그러한 상황이었다.

  그날 아침 전문을 통해 접수된 군단의 작명에는 연대를 영월로 이동시키라는 명령외에 1개 대대를 7사단에 배속시켜 7사단을 증원하라는 명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부대이동 계획을 세웠다. 즉 이동경로를 삼척-울진-춘양(春陽-경북 봉화군)-영월로 정하고 7사단에 배속시킬 대대를 1대대로 정하고 그 1대대에 수도사단에서 지원해 준 35대의 차량을 모두 배차하여 먼저 영월로 출발시킨 다음 연대본부와 2·3대대는 도보로 행군해 가다가 1대대를 영월까지 수송해 주고 돌아오게 될 차량들을 도중에 만나 그 차들을 이용해서 연대본부와 2대대 및 3대대 순으로 영월로 오도록 했다.

 

  그리고 연대장을 비롯한 소수의 전방지휘소 요원들은 지프차 등 별도의 차량을 이용해서 1대대가 삼척을 출발하기 직전에 떠나기로 했다.

  CP요원들과 1대대가 삼척을 떠난 시각은 그날 밤 11시 30분경이었다. 삼척에서 울진을 거쳐 영월에 이르는 우회도로는 어림잡아 400~5OO리길은 되리라고 생각되는데 포장이 돼 있지 않던 일차선 지방도로 더구나 강설이 잦던 엄동설한에 눈덮힌 태백산 준령을 넘어서 가야할 멀고도 험한 길을 바퀴에 체인도 감지 않은 일산 도요다차에 병력과 장비를 잔뜩 싣고 간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가장 위험했던 곳은 춘양에서 영월로 가는 도중에 있던 한 쪽에 강을 낀 굴곡이 심한 높은 고지를 넘어가는 아슬아슬한 고갯길이었다. 비행기고개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던 것 같은 양장(洋腸)과도 같은 고개를 넘어갈 때는 차체가 천길 낭떠러지 쪽으로 기우는 바람에 대원들이 차에서 내려 기울어진 그 차체를 어깨와 두 손으로 바쳐 가까스로 지나가곤 했고, 또 그 고갯길을 칠흑 같은 밤중에 도보로 넘어 왔던 2대대 장병들은 그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그 반대쪽 구부능선 산 허리에 바짝 붙어 앞사람의 허리띠를 뒤에서 움켜 잡고 꾸벅 꾸벅 졸면서 가다 보니 그 산허리에서 얼마나 얼굴을 부딪쳤던지 얼굴 성한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연대본부의 지휘소 요원들과 1대대 장병들은 울진과 영월 어간에 있는 춘양에저 일박을 하고 영월로 떠났다. 그리하여 19일 오후 1시경 영월에 도착했던 나와 1대대장 공정식 소령은 신 사령관을 모시고 도착신고를 하기 위해 3군단 본부가 있는 영월국민학교를 방문했는데, 학교 교정에 빨간별 세 개와 두 개의 별판에 붙어 있는 지프차를 본 나는 육군참모총장 정일권(丁一權) 중장이 군단본부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영월지구의 정세가 얼마나 위급해 졌기에 정 총장이 군단본부를 방문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학교 운동장에는 책상과 의자 등의 사무실 기자재와 오바레이(상황판)가 붙어 있는 큰 베니아판 등을 실은 여러 대의 트럭이 그 위에 승차해 있는 사무실 요원들로 보이는 소수의 장병들과 함께 목격이 되었는데, 그 차량들을 보며 나는 군단본부가 어디로 이동을 하는구나 하는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군단장실에 들렀더니 과연 정일권 총장이 와 있었고, 군단장 류재흥(劉載興) 소장과 부군단장 임선하(林善河) 준장이 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다.

  그들은 신 사령관과 나를 보더니만 반갑다느니 잘왔다느니 하는 따위의 인삿말을 건네기가 바쁘게 중요한 일을 주문했다.

 

  정 총장이 ‘김 대령, 해병대가 왔으니 도와 줘야겠다'고 말을 꺼냈고, 이어서 류재흥 군단장이 영월 북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서투른 우리말로 7사단이 빼앗긴 저 고지를 역습을 해서 탈환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내 옆에 서 있던 덩치가 크고 용맹스럽게 생긴 공정식 소령이 '아 걱정 마십시요, 우리가 해 보겠습니다.'하고 거침없이 대답함으로써 그때까지 잔뜩 위축되어 있는 듯했던 군단장의 마음을 순간적이나마 속 시원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이럴 때 우리 해병대가 본때를 한번 보여줘야지 하는 생각을 했고, 또 거침없이 걱정말라고 한 공 소령이 나로서는 얼마나 믿음직스럽게 여겨졌던지 나는 새삼 원문고개(통영) 북쪽 만에 있는이도(理島)에 용감하게 상륙을 하던 그날 밤의 704함 부장 공정식 대위를 머리속에 떠올리며 그를 해병제1연대의 대대장으로 끌어 온 데 대한 뿌듯한 긍지를 느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