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12. 재출동(再出動) (7) 독주(毒酒)와 육군장교(陸軍將校)

머린코341(mc341) 2014. 8. 7. 09:17

국방의 멍에 - 12. 재출동(再出動)

 

(7) 독주(毒酒)와 육군장교(陸軍將校)

 

  해병1연대는 2월 26일부터 3월 1일까지 창리 북방 산악지대에 대한 위력수색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1대대와 2대대가 투입이 된 창리지구 수색전에서는 이렇다할 적과의 교전은 없었고, 다만 3월 1일 노론리(老論里)에서는 민가에서 독주(毒酒)를 마시고 쓰러져 있는 육군장교 5명을 발견하여 그들을 인근에 있는 육군 8연대(7사단) 본부로 운반해 주는 한편 가해자들을 색출해 내기 위해 부락민 전원을 8연대 본부로 인치하여 조사를 받게 했다.

 

  한편 창리지구의 위협이 제거되자 7사단은 3월 1일 상대화리(上大和里·평창군 대화면)까지 북상하게 되었다. 따라서 군단본부에선 해병대에 정선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나는 그 다음날(3월 2일) 정오경을 전후해서 2대대와 1대대를 정선으로 출발시키고 녹전리와 석항에 배치되어 있는 3대대도 창리로 이동시킨 다음 3월 3일 연대본부와 함께 정선으로 향했다.

 

  그런데 유난히도 하천이나 강이 많던 영월지구 전투시 해병들은 바야흐로 녹아 내리기 시작한 계곡의 눈·얼음이 하천이나 강을 범람시키는 바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물론 교량이 없는 하천지대에서 겪었던 일이지만 하천의 폭이 좁고 수심이 과히 깊지 않은 곳에서는 돌무더기로 징검다리를 놓아 건너기도 했고, 목재를 걸쳐 그 위를 밟고 지나갈 수가 있었지만, 하천의 폭이 넓은 곳에서는 그러한 방도를 강구하기가 어려웠으므로 폭이 좁은 곳을 찾아가곤 했다.

 

  그리고 보병들이 아니고 탄약이나 보급물자를 수송하는 차량의 경우도 수심이 깊어 건널 수 없는 하천에서는 그 물 밑바닥에 무수한 돈을 집어넣어 하상을 높이는 작업을 하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고, 또 그렇게 해도 차량이 건너가지 못할 경우에는 부득불 대원들이 얼음같이 찬 물속으로 들어가 그 차체의 양쪽 옆과 뒷쪽에 개미떼처럼 달라붙어 1단 기어로 운전병과 합세하여 결사적인 시도를 해볼 수밖에 없는 일이었으므로 그런 고역을 치뤄야만 했던 대원들로서는 그야말로 죽을 고생을 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닐 것이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