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역사/해병대와 6·25사변

귀신을 잡았던 용사들의 전설 [ 9 ] 전과 속에 담긴 희생

머린코341(mc341) 2014. 8. 10. 07:38

귀신을 잡았던 용사들의 전설 [ 9 ]


전과 속에 담긴 희생

하지만 이번에도 선공은 제41중대의 몫이어서 대동강 입구까지 침투하여 적의 수송선을 격침시켜 북괴군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8월초에 50여명의 적군을 사살하고 2개 교량을 파괴하는 전과를 올렸고 9월에도 후방교량 작전은 계속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공산군 측에게 뻔히 바라다 보이는 해안가 바로 앞의 섬에 웅거하며 신출귀몰하게 활약하는 해병대는 눈에 가시 같은 너무나 얄미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 고군분투하는 석도 해병대의 전과를 보도한 기사 ]

물론 이런 성과는 아군의 고귀한 희생이 없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적 후방에서의 작전은 항상 위험을 수반하였고 특히 첩보대원들의 희생이 컸습니다.  비록 유엔군이 바다를 장악하고 있었지만 날씨라도 나빠지면 보급이 차단되어 곤혹을 치루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희생으로 아군이 얻었던 성과는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전선이 굳어지고 시간이 갈수록 전략도서의 확보에 좀 더 주력할 필요성이 증대되어 갔습니다.

 


[ 초도에서 작전 중 부상당한 해병대원을 후송하는 모습 ]

더불어 북괴군이 서해안 도서 탈환에 집중하려는 태세가 감지되자 해병대는 기존 독립중대를 확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52년 1월 15일 내륙에서 격전을 치르던 기존 해병 제1연대와 별도로 김두찬 대령을 지휘관으로 하는 연대 급 규모의 도서 방어부대가 새롭게 창설되었는데, 제7, 8, 9대대와 지원부대로 구성되었습니다.  참고로 이 부대의 일부가 휴전 후 진해로 철수하여 해병 제2연대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 해병 제2연대의 모체가 되는 도서 방어부대기 ]

이렇게 새롭게 옷을 갈아입은 해병 도서 방어부대는 제7대대가 석도와 초도 일대를, 제9대대가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 5도 일대 그리고 제8대대가 독립 제42, 43중대가 담당하던 동해안 요충 도서를 담당하였습니다.  그리고 규모가 커진 만큼 적에 대한 공격도 더욱 강력하고 대담하게 변화하였고 당연히 적의 대응도 더욱 거세어졌습니다.  오히려 정체된 최전선보다 후방의 작전은 변화도 많고 대담무쌍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전선의 정체가 장기화 될 수록 도서지역의 격전은 커져갔습니다 ]

예를 들어 제7대대가 담당한 3월 말에 호도 상륙전투는 적을 격퇴시켰지만 4배나 많은 적을 상대로 펼친 격전이어서 전술적인 피해는 제7대대가 더 많았습니다.  이처럼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해상보급에만 의존하며 적진 한가운데 펼치는 도서작전은 시간이 갈수록 고비에 고비를 넘겨야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휴전 때까지 해병대의 도서부대는 거점을 충실히 사수하였고 그만큼 적에게 많은 부담을 안겨주었습니다.

 


[ 도서작전은 당연히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하였습니다(스틸 컷) ]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휴전협정은 지난 3년간 한반도에서 울려 퍼진 포성을 멎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해병대 도서부대가 점령한 동서해안의 섬들에 대한 처리여부는 휴전협정에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북한 측에서 도서부대의 존재를 공식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정은 우리 측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오랜 줄다리기 끝에 휴전협정이 이루어졌습니다 ]

물론 보급문제 등으로 휴전 후 계속 점령하기는 곤란하지만 만일 지리산 등에서 준동하는 공비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면 자칫 북한이 휴전과 동시에 북한이 남한 후방을 자신들의 점령지라고 주장하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북한 입장에서는 북한 중심부 인근 해안가에서 배후 차단 작전을 펼치던 해병대 도서부대를 인정하면 더 큰 곤란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북한 해안이 완전히 봉쇄되는 형국이었습니다.

 


[ 휴전이 이루어졌지만 바다 위의 경계는 애매모호하였습니다 ]

결국 묵시적으로 상대가 알아서 처리하는 방향으로 공식 언급이 없이 휴전이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의사에 따라 섬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던 상황이었는데, 이때 내린 결론이 DMZ과 연하는 해상의 북쪽에 있는 섬들은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만일 휴전이 일시적이고 전쟁이 곧바로 재개될 가능성이 컸다면 당연히 해당 도서들을 포기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계속 )

 


출처 : august 의 軍史世界
         http://blog.chosun.com/xqon/7326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