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話題) - 보은의 예물을 수수한 구연호 대령과 김우근 중령
중공군의 2차 추기공세가 있었던 날(52. 10. 31)로부터 꼭 10일째가 되던 날(11. 10) 해병 제1전투단의 좌일선(사천강 전초대)에 배치되어 있던 2대대 6중대에서는 중공군의 1차 추기공세 때(52. 10. 2) 빼앗긴 87고지를 되찾지 못한 상태에서 중공군의 2차 추기공세 때 2대대 7중대가 사수한 87고지 후방에 구축된 2대대의 유일한 전초진지인 50고지를 확보하는 가운데 주저항선 전방에 구축된 적진지에 대한 탐색과 포로의 획득을 위한 야간(후반야) 기습전을 수행했다.
그런데 2소대를 공격소대, 1소대를 지원소대로 한 이 야간기습전은 결과적으로 실행관계에서 아군의 기도가 탄로나 위기에 직면한 공격소대 뿐 아니라 지원소대까지 적지 않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부득불 대대본부 상황실에서는 대대장(서정남 소령)의 명령에 따라 여명을 기해 기습대에 철수 명령을 하달하게 되었는데, 이때 지원소대장 구연호 소위(해간8기)는 예고도 없이 그곳에 나타난 선임장교 김우근 소위(해간 527기)와 함께 칼빈 M-2 소총의 탄창을 갈아 끼우며 용감하게 기습대의 철수를 엄호하던 중 불운하게도 복부에 중상을 입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 당시 해병 제1전투단에서는 미 해병사단으로부터 공급받은 방탄자켓을 주저항선 대대에서 기습전을 수행할 때나 전투단 수색소대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할 때 보급해 주고 있었는데 이날 아침 구 소위가 적진에서 발사한 76밀리 직사포탄의 작렬한 파편에 맞아 중상을 입게 된 것은 그 전날 밤 출진을 할 때 친동생 같이 여기고 있던 나이어린 소대 전령(이언문)의 방탄자켓을 착용하지 않은 것을 보는 순간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가 착용한 자켓을 그 전령에게 벗어 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구 소위가 쓰러지자 선임장교 김우근 소위는 마치 부상을 당한 구 소위를 구출하기 위해 그 곳에 나타난 사람같이 즉시 위생병을 불러 압박붕대로 환부를 감싸게 한 다음 자신이 들고 있는 총기를 자기 전령에게 건네주기가 무섭게 주위에 있는 소대원들(소대장 전령 등 2~3명)의 도움을 받아 자기보다 훨씬 덩치가 큰 구 소위를 등에 업고 숨을 헐떡이며 달려갔고, 힘이 다 빠져 더 이상 걸음을 떼놓을 수가 없게 되자 소대원들과 번갈아 업고 2대대 전방구호소가 있는 곳까지(1.5키로 정도의 거리) 후송함으로써 그곳으로 비래한 미 해병대의 구급용 헬기에 실려 인천항에 정박하고 있던 덴마크 병원선에 입원하게 되었고, 그 병원선에서 복부 및 척추 등 여덟 군데에 박혀 있는 적 직사포탄의 크고 작은 파편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끝에 그 때 이미 죽은 몸이나 다를 바가 없던 자신의 목숨을 되찾을 수가 있었으니 6중대 선임장교 김우근 소위의 헌신적인 전우애가 엮어낸 한 편의 감동적인 구명드라마가 아니겠는가.
전해지고 있는 바로는 구 소위가 2대대의 전방 구호소로 후송되었을 때 대대 군의관(한 모 대위)과 함께 그 곳에 나와 있던 2대대장 서정남 소령이 군의관에게 안타까운 심정으로 “한 대위 가망 있겠소?”하고 묻자 한 대위는 대답 대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기습전이 수행된 날 밤 선임장교 김우근 소위가 위험을 무릅쓰고 기습대를 지휘하기 위해 부대대장 강용 대위에게 그 뜻밖의 사실을 보고하고 뒤늦게 지원소대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된 것은 기습대를 지휘해야할 중대장이 행방을 감췄기 때문이었으며 진지를 이탈했던 그 중대장은 결국 헌병대 영창에 수감이 되었다고 한다. 이 지면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실화는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후일담으로 이어진다.
즉 그로부터 50여 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2005년 11월 21일 왕년의 2대대 6중대 선임장교 김우근 씨(예. 중령)는 전혀 뜻밖의 휴전 이후 오랜 세월 소식이 단절되어 있던 구연호(예. 대령)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약속 장소인 서울시청 앞 프레지덴트호텔로 갔더니 오찬도 예약해 놓은 그 감개무량한 해후의 자리에서 구연호씨는 그가 정성껏 장만해 온 조그마한 선물 곽 하나를 김우근씨 앞에 내밀며 “김 선배, 작은 선물이긴 하지만 전쟁터에서 내 생명을 구해 준 보은의 정표로 드리는 것이니 사양 마시고 받아 주세요”라고 했고, “구형, 이게 뭡니까”하며 그 곽 속에 든 선물의 실체를 확인한 김우근씨는 그 금지환의 면에 「혜존 김우근 증 보은인 구연호 불망 1952. 11. 11 장단지구전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문득 그 날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 뇌리를 스쳐 가슴이 뭉클해지는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데 과문의 소치인진 알 수가 없지만 휴전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보은비화가 전해졌다는 얘기는 필자로선 아직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덧붙여 구연호 씨가 증언하는 인천행에 정박해 있던 1척의 덴마크 병원선(주더판디아호)과 2척의 미군병원선(콘소레이션호와 레포츠호)을 함께 남겨 두고자 한다.
구연호씨의 증언에 따르면 입원을 한 병원선은 덴마크 병원선이었지만 그 병원선들이 20일 간격으로 보급품을 수령하기 위해 일본(사세보)으로 가게 됨에 따라 중환자로서 입원해 있던 자기와 같은 환자는 덴마크 병원선이 일본으로 가기 전 미군병원선(콘소레이션호)에 인계되었고, 콘소레이션호가 일본으로 갈 때는 레포츠호에 인계되는 가운데 완쾌가 될 때까지 약 6개월간을 천국과도 같은 병원선에서 보낼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 기습전에서 세운 전공으로 금성충무훈장을 탄 구연호씨는 사령부 작전교육국 교육국장 보직을 끝으로 72년 9월 대령의 계급으로 전역했다. 이 글을 쓰면서 필자는 구연호씨가 방탄자켓을 입혀 준 그 6중대 1소대 전령 이언문씨(제주 출신)를 찾아 그의 증언을 그의 사진과 함께 이 지면에 남기려 했으나 백방으로 수소문 해 보았으나 이미 고인이 되고 말았는지 허사였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 3 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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