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역사/해병대 명인·기인

화제(話題) - 전 이라크 대사관 경비대장 김영국 중위의 증언

머린코341(mc341) 2014. 8. 21. 22:02

화제(話題) - 전 이라크 대사관 경비대장 김영국 중위의 증언

 

2004년 10월 해병대 사령부에서는 상부의 방침에 따라 자이툰부대(이라크 평화재건 지원단)에 대한 경비 임무와 바그다드 주재 한국대사관의 경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1개 중대의 경비병력을 파견했었는데, 여기에 소개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자이툰부대에 배속이 된 해병대의 경비중대가 자이툰부대의 주둔지인 아르빌에 도착한 후 두 번째로 대사관 경비대장으로 임명이 된 제2소대장 김영국 중위(해간 88기)의 미공개 체험담이다.

 

출사표와 방벽구축

 

자이툰부대에 배속이 되어 자이툰부대와 주 바그다드 한국대사관에 대한 경비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경비중대장 강 소령은 1, 2, 3 소대장을 교대로 대사관 경비대장으로 임명하여 1개 분대의 병력(12명)을 이끌고 대사관 경비에 임하게 됐는데 제1소대장과 교체되어 12명의 대원을 이끌고 대사관 경비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던 김영국 중위(한국체육대학 출신)는 철저한 완벽주의를 강조했던 중대장의 훈시와 2004년 6월 하순경 미군 주둔지역에서 피살되어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이 됨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소름을 끼치게 했던 김선일씨(선교사) 사건 등으로 인해 조성된 긴장감을 의식했던 나머지 다음과 같은 요지의 출사표를 작성하여 대사관의 게시판에 붙이는 한편 그 내용을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 12명의 대원들에게 훈시로 시달함으로서 비장한 각오를 다지게 했다고 하는데, 그 핵심적인 요지란 ‘우리는 이 대사관을 사수해야 한다. 만약에 우리 분대원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적에게 납치가 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 해병대의 명예를 욕되게 하고 자이툰부대나 이라크 대사관에 누가 되니 전원 자결 하고야 말 것이다’라는 것이었는데 이와 같은 출사표를 대하게 된 임홍재 주 바그다드 한국 대사는 크게 고무되어 격찬을 해 마지 않았다고 한다.

 

김영국씨의 말에 따르면 원래 육군 특전사 요원들(공수부대)이 맡고 있던 이라크 대사관에 대한 경비를 해병대가 맡도록 상부에 건의 했던 사람은 당시의 임홍재 주 바그다드 한국 대사였다고 하며, 따라서 김영국 중위가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해 출사표를 써 붙임과 동시에 대원들의 전투배치 시간을 1분 이내로 단축시키기 위해 매일 새벽 2~3시를 기해 비상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허술하고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대사관 건물의 방탄을 위해 건물 외벽과 옥상(2층 건물)에 사낭으로 방벽을 구축할 것을 대사관에 건의 하는 등 대사를 포함한 8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대사관의 경비를 위해 지성을 다하자 임홍재 대사는 그 정성에 감동했던 나머지 약 3,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건물 외벽과 옥상에 사낭을 쌓아 방벽을 구축토록 했고, 또한 김영국 중위가 수시로 그 일대를 순찰하는 미군 순찰대원들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을 것을 건의하자 선뜻 그 건의를 받아들이는 등 김영국 대장에 대한 임홍재 대사의 신임은 임 대사 자신이 대사관의 경비를 해병대에 맡기도록 한 것이 정말 잘했구나 하고 여겼을 정도로 컸다고 한다.

 

그리고 김영국 중위가 대사관 경비대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대사관에서는 이라크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유일신을 신봉하는 저항세력에 쫓겨 위험스러운 상황 하에서 대사관 근처까지 피신해 온 5명의 개신교 선교사들(남4, 여1)을 대사관에서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가 귀국시킨 일도 있었다고 김영국씨는 말한다.

 

표창장과 무교동에서의 만남

 

2004년 10월부터 2005년 3월까지 6개월 간 자이툰부대가 한국대사관 경비(각 3개월간씩) 임무를 수행했던 김영국 중위는 바그다드 주재 한국대사관을 떠날 때 12명의 분대원들과 함께 임홍재 대사로부터 개별적인 표창장을 받은 것 외에 임홍재 대사가 특별히 당시의 외교통상부장관 반기문 장관(현 유엔사무총장)에게 내신함으로써 받게 된 반기문 장관의 표창도 함께 받는 영예를 누렸다고 하는데 이라크대사관 경비대장을 역임한 해병대 장교들 중 임홍재 대사 재임기간 중 반기문 장관의 표창을 받은 장교는 오직 한 사람 김영국 중위 뿐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2005년 3월 이라크로부터 귀국했던 김영국 중위는 그 해 7월 3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예편한 후 모 대학원에서 심리치료에 관한 특이한 분야의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러던 어느 날(그 해 11월 하순경) 뜻밖에도 이라크에서 대사직 근무를 마치고 귀국해 있는 전 임홍재 이라크 대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언제쯤 저녁식사에 초청하고 싶으니 대사관의 경비를 위해 고생한 대원들과 함께 참석해 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하기에 이미 제대를 한 10명의 대원들에게 김영국씨가 직접 전화를 걸어 날짜와 시간과 장소를 전해주며 통지를 하고 포항에서 근무 중인 2명의 현역병에 대한 연락은 자이툰부대에서 경비중대장으로 근무하다가 갓 귀국한 강 소령의 각별한 도움으로 그들이 그 날짜에 맞추어 서울까지 외박증을 떼어 참석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 12명의 대원 전원이 김영국씨와 함께 무교동(서울시 중구)의 모 음식점에서 베풀어지 임 대사의 저녁 식사 초대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임홍재 전 이라크 대사는 지난날의 노고에 대한 극진한 치사와 함께 금일봉(100만원)을 김영국씨 앞에 내 놓으며 옛 대원들에게 맛있는 것 사 주라고 했고, 또 취직할 곳이 있으면 추천서를 써 주겠다는 말도 했다고 하니 모두가 감동적인 화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 3 券" 중에서

         본 내용의 저작권은 정채호 대선배님께 있습니다. 저작권관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