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20. 國防部長官 時節 (1) 入閣秘話

머린코341(mc341) 2014. 9. 14. 06:19

국방의 멍에 - 20. 國防部長官 時節

 

(1) 入閣秘話

 

  1963년 3월 15일이었다. 그 날 오후 2시경 나는 김현철 내각수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장충동에 있는 최고회의의장 공관으로 갔더니 소파에 혼자 외롭게 앉아 있던 박정희 의장이 나의 손을 덥석 잡으며 "김 장군, 나를 좀 도와 줘야겠소" 하며 매달리듯 간청을 하는 것이었다.

 

  초췌하고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 의장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나는 안쓰러운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해 드리면 도움이 되겠는가"고 했더니 박병권(朴炳權) 장관이 사표를 냈으니 후임 장관이 돼 달라고 했다.

 

  나로서는 너무나 뜻밖의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따라서 선뜻 답변을 할 수가 없어 잠시 망설이고 있던 나는 "육군에 인재가 많은데 적격자를 육군에서 물색하지 않고 육군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찌 막중한 직무를 감당해 낼 수가 있겠는가" 고 하면서 극구사양을 했더니 박 의장은 다음과 같은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면서 나에게 꼭 그 자리를 맡아 달라고 했다.

 

  그날 박 의장이 나에게 토로한 바에 따르면 아무게와 아무게(실명생략) 등 자기를 노리고 있는 자들이 장충동 공관에서 서울운동장을 거쳐 최고회의 청사로 가는 길목에 빠쥬카포를 배치해 놓고서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고 했고, 또 측근자들이 많이 있으나 누가 누군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 자신이 짐작하기로도 그 무렵의 박정희 의장은 말할 수 없는 괴로움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조카사위이며 혁명정부의 제2인자 격인 김종필 씨가 이른바 자의반(自意半) 타의반(他意半)의 외유를 떠난지 불과 이틀 후(2월 27일) 박 의장은 국내외적인 압력에 못 이겨 이른바 2·27선거를 통해 자신과 혁명주체세력의 민정불참(원대복귀)을 선서했고, 3월 7일에는 혁명정부의 전복과 자신에 대한 암살을 기도한 쿠데타 음모사건이 적발되어 박엄항, 김동하, 박창암, 이규광 등 육군과 공군의 영관급을 포함한 관련자 19명을 검거한데 이어 13일에는 그러한 목적을 위해 서울 근교의 부대동원을 기도했다는 이유로 김윤근, 최주종 소장 등을 검거하는 사태가 빚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3월 14일 아침에는 누구의 사주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나 최고회의 뜰에서 수십 명의 군인들이 "박병권 물러가라" 며 데모를 하자 박정희 의장과 혁명주체들의 원대복귀를 강력히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진 박병권 국방장관이 그러한 데모가 곧 자신에 대한 치사한 공격행위로 간주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에선지 그날로 장관직을 사퇴하고 말았다.

 

  따라서 그와 같은 일들을 직접 겪고 치러야만 했던 박정희 장군으로서는 잠시도 마음이 편할리가 없었고, 또 생명에 대한 위험성과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박 의장의 2·27선서가 있었던 그날 박병권 장관은 혁명에 가담한 군인들의 원대복귀를 환영한다고 언명한 바가 있다.

 

  그런데 박 의장으로부터 재차 그러한 요청을 받은 나는 그 자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인 줄 알면서도 박 의장의 간청을 뿌리칠 수도 없었고, 또 그러한 기회가 나로 하여금 정국의 안정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하게 하는 기회라고 판단했던 나머지 그 청을 받아 들이기로 결심을 했다.

 

  그리하여 나는 박 의장의 지시에 따라 그 길로 김정열(金貞烈) 민주공화당 의장서리를 방문하여 내 자신의 당적을 정리하기 위해 탈당계를 제출함으로써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당적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그 다음날인 3월 16일부로 제15대 국방부장관으로 입각하게 되었고, 발령을 받은 바로 그날 취임을 했다.

 

  한데 박정희 의장이 굳이 해병대사령관 출신인 나를 그 어려운 시기에 국방장관으로 기용하려 했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박 장관이 사퇴를 한 날 동경에 머물고 있던 김종필 씨가 박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후임장관을 기용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깊이 있는 의견교환을 했다는 얘기를 후일 김종필 씨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적이 있었으나 나를 기용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에 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