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20. 國防部長官 時節
(16) 春川 第一中·高와 中京高
국방부장관으로 취임한 후 나는 춘천과 서울에 군인들의 자제들이 다닐 수 있는 특별한 사립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애당초 학교의 설립을 구상하고 계획했던 기관은 가장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었던 육군이었고, 해·공군 및 해병대에서도 적극 동참을 하게 됨으로써 그 뜻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한 학교를 설립하게 된 목적은 전속이 잦은 군인들이 전속발령을 받을 때마다 자녀들의 전학문제가 수반되어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고민을 하게 되고 전학을 해야 하는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환경의 면화로 인한 학업의 부진으로 진학에 어려움을 겪는 등 결과적으로 군인 가족들의 생활안정과 군인들의 사기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아 그러한 어려움을 덜어 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승낙을 받아 설립을 추진했던 이들 학교의 설립이념은 이들 학교에 입교하게 되는 군인들의 자제들에게 제복을 착용시켜 준(準) 군사교육을 실시하여 건전한 호국정신을 함양하고 국가 민족을 위해 유위유능한 모범적 인재를 양성하려는 것이었고, 고등학교 졸업생들에게 주어진 특전은 그들이 각 군 사관학교 등에 입교를 희망할 경우 별다른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우선적으로 합격을 시켜 그들로 하여금 국가간성의 동량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일 외에 재학생들에게는 공납금을 상당액 감면해 주는 혜택도 주어졌었다.
그런데 이러한 설립이념과 혜택을 줄 수 있는 학교를 설립, 운영하는데 있어서는 우수한 교사들을 확보하는 문제도 특별히 고려되어야 할 일이었지만 학교건물과 도서관, 체육관, 운동장 등의 주요 시설물 외에 특히 춘천지구의 경우 취사장이나 목욕탕 등의 시설이 갖추어진 기숙사 등을 건립해야 했으므로 많은 예산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 일단 시작을 해 놓으면 밀고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국방부에서는 박 대통령의 내락을 받아 그 당시 체신부에 위탁 관리케 하고 있던 군인들의 단체보험을 일반 시중 보험회사로 이관하여 그 보험을 수탁 관리하는 당해 보험회사(대학교육보험)로부터 받은 3억 5천만원의 사례금을 확보한 다음 춘천 제일중·고등학교와 중경고등학교의 설립을 위한 학교법인 인가를 차례로 득한 후에 제일 먼저 춘천 제일중학교의 기공식을 거행했다.
국방부에서 대한교육보험회사와 계약을 맺게 된 것은 그러한 목적을 위해 초청했던 5~6개의 보험회사 가운데 유독 대한교육보험 만이 사장(신용호씨)이 직접 나와 즉석에서 책임있는 답변을 했고, 또 제시한 액수가 예상했던 금액(약 3억원) 보다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확실한 날짜는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기공식에는 육군 군사고문단장과 각 군 총장 및 해병대사령관도 나와 함께 참석을 했었다.
그런데 일단 기공식은 거행을 했지만 확보된 기금만으로는 자금이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에 나는 부족한 자금 염출을 위한 한 가지 묘안을 궁리하여 박 대통령의 내락을 받아 실천에 옮겼다.
그 묘안이란 월남전에서 한국군이 사용한 포탄의 탄피를 회수하여 정글 속에서 몰래 녹여가지고 그것을 일정한 크기의 덩어리로 만들 다음 국내로 반입하여 장항(長項)제련소에 매각하려는 것이었는데, 나한테서 그러한 아이디어를 전해들은 박 대통령은 "김 장관, 해적두목이 되겠군 그래" 하며 껄껄 웃었다.
그러나 방침을 세우게 되었던 나는 주월 한국군사령관으로 대장이 된 맹호사단장 채명신 소장이 월남으로 떠날 때 그러한 지시를 했더니 그 후 주월 한국군사령관으로 취임한 채 장군은 그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여 여러 차례 나에게 은밀한 연락방법을 통해 중간보고를 해 온데 이어 탄피를 녹여서 만든 약 400톤의 동괴가 장만되었다는 보고와 함께 그 동괴를 언제쯤 무슨 배편으로 보내야 할지 하회를 기다린다는 비밀연락을 취해 왔기에 해군 LST편으로 지체없이, 그리고 은밀하게 진해 군항부도로 보내라고 했더니 그로부터 10여일 후 마침내 그 물건이 수일 내에 진해군항에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이 나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 내가 짐작하기로는 그 물건을 실은 LST가 금명간 진해 군항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던 바로 그날 오후 나는, 해군참모총장 김영관 제독으로부터 전해진 뜻밖의 불길한 소식을 전해 듣고 한껏 부풀어 있던 희망이 졸지에 쓸모없는 물거품으로 화해 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김 총장의 보고에 따르면 그날 그 물건을 실은 해군 LST가 진해 군항에 도착했을 때 군항부두에는 10명의 해군장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상부의 명령이라면서 막무가내로 승선을 하여 그 배 속에 실린 물건을 찾아내어 사진까지 찍고서는 상부의 명령이니 그 물건을 딴 곳으로 옮기지 말고 그대로 놔 두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김 총장이 부연해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 들은 나는 미국 사람들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김 총장이 LST의 함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그 동괴를 실은 LST가 사이공항을 출항한 직후부터 그 상공에는 미군 초계기 한 대가 뜨더니 마치 그 LST를 호송하듯 일몰시까지 비행하다가 자취를 감추고, 그 다음날 날이 밝으니 또 다시 한 대가 나타나 해가 질 때까지 떠 있더라는 것이었고, 그런 식으로 그 LST가 오끼나와를 거쳐 진해군항에 도착할 때까지 매일 매일 추적을 해 온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주월 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장군으로부터 비밀리에 보고받을 바에 따르면 귀신도 모르게 탄피를 녹여 덩어리를 만드는 작업을 했고, 또 쥐도 새로 눈치 채지 못하게 실어 보낼테니 안심하라고 했었는데, 그 비밀이 여지없이 탄로가 나 버렸다는 것은 그만큼 미군 정보기관원들의 정보탐지능력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었지만 보다 더 무섭게 여겨졌던 것은 그런 비밀을 사전에 탐지해 놓고서도 그것을 제지하려 들지 않고 몰래 지켜보고 있다가 그것을 어디로 가져 가는지를 끝까지 추적확인한 연후에 문제를 제기하는 미군 정보기관의 철저한 추적과 확인작업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김 총장으로부터 그러한 보고를 받게 된 나는 필시 주한 유엔군사령부로부터 조만간 반갑지 않은 기별이 있으려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2~3일 후인 토요일 오후 친구와 함께 미 8군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있었더니 그 골프장으로 유엔군 사령관 비치대장이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부관의 전갈을 받고 골프장의 클럽하우스로 간 나는 여느 때와는 달리 다소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비치 대장이 나에게 내민 '톱 씨크리트' 고무인이 찍힌 흰 봉투를 들어 그 속에 들어 있는 한 장의 문서를 훑어 보곤 바로 그 문제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발신인이 유엔군사령관, 수신인이 국방부장관으로 되어 있는 그 문서의 내용은 대충 이러한 것이었다.
즉, 주월 한국군이 월남에저 사용한 포탄의 탄피는 미국 정부의 재산이고 전략물자로 분류되고 있는데, 원칙적으로 미국에 있는 탄악고로 운반되어 새로운 탄약과 교환하게 되어 있는 탄피를 누군가가 현지에서 동괴로 만들어 한국으로 밀반입하여 진해 군항으로 운송을 해 놓았으니 국방장관께서 탄피의 형질변경과 밀반입한 자들을 색출하여 엄벌에 처해줄 것과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문서를 읽어 본 나는 싸고 싼(包裝) 사향도 냄새가 난다는 속담이 있듯이 과연 비밀이란 새기 마련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우정 껄껄웃으며 "비치 사령관, 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 라고 했더니 그는 깜짝 놀라며 어안이 병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나는 탄피를 동괴로 만들어 가져오게 한 목적을 솔직하게 설명한 다음 탄피가 미국 정부의 재산이란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전투사단이 파월되기 전 주월 미군사령부 당무자와 국방부에서 파견한 실무단장 사이에 체결한 군사협정문에도 탄피에 관한 사항은 명문화된 것이 있어 우리 한국군이 사용한 탄피는 한국군이 회수하여 유익한 공익사업을 위해 써도 무방한 줄 알았다고 말하고, 만약에 미국 정부에서 동괴를 회수하기를 원한다면 월남이든 미국 본토이든 장소만 지정해주면 하시라도 그 곳으로 운반해 드리겠지마는 기왕지사 그러한 목적을 위해 한국까지 운반되어 온 것이니 군인들의 사기진작과 군인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동괴를 희사해 주면 대단히 고맙겠다는 뜻을 피력했더니 그제서야 비치 사령관은 이해가 갔던지 "아 그랬었군요" "잘 알겠다"고 말하면서 주한 미국대사관과 국무성에 보고하여 김 장관의 뜻이 잘 반영이 되도록 노력해 보겠으니 며칠간만 여유를 달라고 했다.
비치 대장이 재차 나를 찾아왔던 것은 그로부터 3일 후였다. 그데 비치 대장이 나에게 건네 준 한 통의 새로운 문서를 읽어본 즉, "기왕에 가져 온 동괴는 기꺼이 국방부에서 추진중인 학교설립기금으로 희사하되 앞으로는 그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 달라" 는 내용의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그리하여 국방부에서는 400톤의 동괴를 톤당 30만원으로 매각하여 1억 2천만원의 기금을 조성할 수가 있었다.
춘천 제일중·고등학교의 법인(제일학원) 인가가 난 시기는 1966년 11월 중순경이었고, 제일중학교의 개학시기는 1967년 3월 초순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편 제일중학교의 설립이 실현되자 국방부에서는 제일고등학교와 중경고등학교의 설립을 계속 추진했으나 어려운 문제는 역시 자금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월남의 정글속에서 탄피를 녹여서 만든 동괴만이라도 제대로 운반해 올 수 있었더라면 별 문제가 아니었을 텐데 그 일이 그렇게 좌절이 되고 보니 자금난이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월남전선으로부터 고무적인 승전소식이 연일 전해져 대한민국 국군의 위상에 만방에 떨쳐지고 있을 때 적당한 날을 택해 그러한 긍지를 공감하고 있던 여야 국방위원들을 춘천 제일중학교로 모시고 가서 학교 운영현황을 직접 살펴보게 하고 기숙사에서 저녁식사를 대접하면서 국방부에서 설립을 추진중인 제일고등학교와 중경고등학교의 설립계획을 상세하게 설명한 다음 국방예산 가운데 절약이 가능한 부분을 떼어 약 5~6억원의 예산을 이들 학교의 설립과 운영을 위해 전용할 수 있도록 협력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모든 국방위원들이 선뜻 나의 뜻을 받아들여 주었다.
그리하여 국방부에서는 내가 장관직을 물러난 해인 1968년 11월에는 춘천 제일고등학교를 설립하고, 1967년 12월에 법인인가를 받은 중경고등학교는 1970년 3월에 설립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이들 학교는 주월 한국군의 철수 후에 초래된 국방부의 지원능력 약화로 결국에는 서울 중경고등학교는 1981년 3월 1일부로 일반 고등학교로 전환이 되어 일반계 학생들을 모집하게 되고 춘천 제일중·고등학교는 1982년 3월에 이르러 제일중학교는 없어지고 제일고등학교는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로 개명이 되어 일반계열 학생을 모집하되 그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3개 학급에 한해 군인가족들의 자녀를 모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국방부 학교니 군인학교니 하는 말들을 낳게 했던 이들 학교가운데 1군사령부에서 학교 경영에 참여했던 춘천 제일중·고등학교의 경우는 개학 후 다음과 같은 흐뭇한 화제를 전해주고 있었다.
즉, 일선지구에서 근무하고 있는 학생들의 부형(父兄)들은 부대 내에서 영농을 해서 수확한 야채들을 단위부대별로 모아 아들과 동생들이 다니는 그 학교의 기숙사로 보내어 반찬을 만들게 하거나 김장김치를 담게 했다는 그러한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었고, 일선지구의 학부형들이 싸리나무를 베어서 손수 만들 빗자루와 폐품을 가지고 만들 걸레를 학교로 보내는 등 그들의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에 그토록 깊은 애정과 관심을 쏟고 있다는 그러한 이야기들이었다.
이밖에 덧붙어둘 이야기가 있다. 1981년 3월 1일 일반계 학생들을 모집하는 공립학교로 전환될 때까지 11회 졸업생을 낸 중경고등학교는 약 5천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82년 3월 강원사대부고로 개명되어 일반계열학생들을 모집할 때까지 13회 졸업생을 낸 춘천 제일고등학교는 약 1만 5백명의 졸업생을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지난 해 연말 현재 제일고등학교 졸업생 중에는 소령의 계급까지, 중경고등학교 졸업생들 중에는 대위의 계급까지 진급한 현역장교들이 있다고 한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해병대 사령관 글 > 4대사령관 김성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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